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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용 Jan 05. 2021

에트나(Mt. Etna)에 있드나

에트나(Mt. Etna)에 있드나

나도 그렇다. 제목을 걸고 나니 ‘저런 걸 제목이라고’ 스스로 나지막이 혀를 차게 된다. 그러니까 8년이 조금 지난 것 같다. 그 해 여름 나는 에트나에 있었다. 2020년 12월 13일, 지난 달에도 화산재를 5km 상공으로 뿜어 내며 건재를 과시했던 이 산은 현존하는 가장 활발한 활화산, 유럽 대륙 활화산 중 가장 높은 에트나(3,350m)다. 에트나는 이탈리아 반도 엄지 발가락에 면한 시칠리아 섬 동부에 있다. 


시칠리아(Sicilia)는, 로베르토 바지오가 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어이없는 똥볼을 차며 브라질에게 우승을 헌사 하듯(이해하시라, 지금 기억나는 이탈리아 축구 선수가 이 분밖에 없다) 이탈리아 반도가 미친 척 살아나 시칠리아 섬을 툭 차 한 바퀴 구르면 튀니지에 얼싸 안기는 위치에 있다. 이 섬은 영화 시네마 천국의 배경이었고 이탈리아 마피아의 본산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왜 시칠리와 부산의 영도를 겹쳤는가. 마피아와 칠성파의 한바탕 싸움은 조오련과 물개처럼 세기의 대결이 될 것인가) 그렇다. 여기가 아니면 어딘가, 마치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처럼 에트나는 시칠리아에 있었다. 영어로 시실리(Sicily)다. 어딘가 아득히 멀리 왔다는 느낌이 들 때 꼭 만나게 되는 식당 이름처럼 멀고 먼, 지하세계까지 여행하는 듯 이 산으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들어보시라. 8년 전 얘기다. 


그때 나는 과장이었다. 시황과 함께 꺾여버린 사세(社勢)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회복이 더딘 만큼 임직원의 스트레스는 위험수위를 넘나들었다. 더딘 실적에 회사의 자금은 씨가 말라가고 있었다. 모두가 조급해지고 조급해 할수록 늪에 빠진 발은 더욱 깊이 빨려 들어갔다. 사무실은 전쟁터가 된지 오래였고 동료들은 예민해져 간다. 자금난으로 10년 만에 처음으로 협력업체에 기성이 지급되지 않았다. A4 종이 한 장 쓰기가 눈치 보이는 분위기에 급기야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어렵지 않게 들리는 분위기다. 


‘저… 올 여름… 시칠리아…’ 


미치지 않고서야 이 판국에 시칠리아라니. 시칠리아, 그 무슨 듣보잡의 이름인가. 애완견의 유전학적 종의 이름과도 같기도 한 그곳을 팀장님이 물었다. 


‘거가 도대체 어데고?’ 


맞다, 거기가 어디란 말인가. 몇몇의 생각의 조각들이 깨어지고 튕기고 하며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주어진 여름 휴가 5일을 쉬는 것도 죄악이 되는 시기에 보름을 더 보탠 19일의 ‘외유’라. 그러나 어쩌겠는가, 팀장님아 당신의 운명, 문제 직원을 둔 그대 운명의 죄도 크겠다.


‘그라고 어디라고 했노? 시칠리아? 시이치일리이이아아아?’


가성과 두성을 활용해 공기 반, 소리 반을 섞어 ‘너를 회사에서 자를지 역적으로 분류할지’를 고민하는 팀장님의 감탄사다. 그러나 나는 운이 좋은 놈이다.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고 가끔 에트나처럼 분출하기도 하지만 마음씨 좋은 팀장님의 허락을 받아냈다. 분에 넘치게 이번 휴가는 19일 동안 보내게 되었다. 휴가가 시작되던 날, 여전히 불안함은 감출 수가 없어서 할 수만 있다면 내 책상에 못을 박고 가야만 할 것 같다고 무던히 팀장님 속을 긁었더니 ‘일단 갔다 와서 말하자.’는 안심 법문을 듣고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라뺐더랬다. 그래도 언제가 나 같은 팀원이 팀장이 된 나와 맞짱을 뜰 것 같은 불안함 1그램을 느끼는 염치는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나는 두 아이의 아빠였다. 8개월 된 두 살배기 딸과 5살 된 남자 아이를 두고 19일 동안 집을 비운다는 말은 아내에게 아이들과 씨름하다 기절해버려라 얘기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이들은 아직 ‘사람’이 아니어서 부모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게다가 천지로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두 살배기와 미운 5살에서 ‘미친 5살’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큰 아들은 아무리 내 자식이라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하루라도 ‘부모 아니야~’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게 만들었다. 마음씨 착한 아내가 백 번 양보해서 내가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19일 동안 아이들을 잘 커버한다 치자. 그러나, 기둥을 뽑아버릴 만큼 큰 돈 450만원, 시칠리아 간답시고 갖다 버릴 450만원은 어찌할 거냐 말이다. 


그래,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운이 좋은 놈이고 행복한 놈이다. 천사 같은 아내를 곁에 두고 있다. 그러나 다짐한다. 아내에게 한번만 더 ‘내 팔자야’ 소리 나오게 만들면 내 스스로 나를 기절시킬 방도를 찾아야만 할 테다. 아침에 일어나 통근버스만 탈 줄 알았던 9년 차 소심한 직장인이 개미 소리를 해가며 얻어낸 2012년 여름 휴가, 항상 어깨에 걸려 있는 피곤을 어쩌지 못하는 34세 남자가 보냈던 이탈리아, 못난 남편, 변변치 못한 아빠 노릇만 하다가 곡절 끝에 가게 된 시칠리아, 왼쪽으로 가면 부딪히고 오른쪽으로 가면 자빠질 그러나 뒷일 앞일 생각하지 않는 자칭 터프가이의 마음은 이미 에트나 남쪽 사면을 오르고 있었다. 

(Mt. Etna, 에트나 이야기는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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