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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Dec 02. 2020

식탁과 화장실

참을 수가 없다.

병원에서 퇴원 전에 식사가 시작되었다.


 이 식사가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 병원 밥상을 받고 나서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무의식 속에서, 암을 선고 받은 때로부터 가졌던 질문.


내가 다시 식사를 할 수 있을까.


 이 밥상이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이유는 나도 모르게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또 드렸다. 아내도 옆에서 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감사한 마음에 흘리는 아내의 눈물이 또 다시 고마웠다. 그리고 수저를 들었다. 미음과 같이 주어진 반찬을 꼭꼭 씹어서 먹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게 음식을 다시 한번 허락하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수술 후 식사를 하기 전까지는 수액을 맞고있었기 때문에 화장실을 가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식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소변줄은 이미 제거를 한 상태였고, 식사를 하게되자 이내 반가운 화장실 신호가 내 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정말 반가운 신호였다. 수술후 모든 것이 정상이 아닌 상태였기 때문에 변도 정상은 아니었지만, 점점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그러나 이런 기대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음식물이 들어가고 나자, 저녁부터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술 후 처음 식사를 했기때문에 이렇게 자주 화장실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식사가 이어질 수록 화장실을 가는 횟수는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하루에 10차례 이상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는 것은, 아직 수술에서 회복을 다 하지 못한 나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장은 좀처럼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화장실을 가는 횟수도 더 늘어났을 뿐더러, 문제는 신호가 오기 시작하면 이 것을 참기가 매우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참기가 힘들다기보다는 참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장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신호가 오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야했다.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면서 병원에 비치되어있는 화장실 휴지의 질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운데, 뒷처리를 할 때의 아픔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병원에서 시작된 이 화장실과의 전쟁은 퇴원 후 집으로 돌아와서 더욱 심해졌다. 부드러운 음식을 조심스럽게 꼭꼭 씹어서 섭취했지만, 장은 도통 정상으로 돌아올 줄을 몰랐다. 가스가 나오는 느낌과 변을 보는 느낌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신호가 올 때 마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집에서 내가 사용하는 화장실용 휴지를 물티슈형식의 화장지로 모두 교체했지만, 이것도 계속 사용하다보니 안아픈 게 아니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화장실을 다녔다. 잠을 자다가도 신호가 오면 금방 일어나 화장실을 가기가 일쑤였다. 더구나 수술 후, 일어날 때마다 뱃속의 장이 꼬여있다가 풀리는 듯한 느낌은 내 잠을 더욱 완별하게 깨워주었다. 매일매일이 이러한 생활의 반복이었다. 식사를 하다가도 신호가 오면 화장실로. 운동을 하러 나갔다가도 신호가 오면 바로 집으로 달려왔다. 바깥을 나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 생활의 정점을 찍은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날인가, 아침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가스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가스가 매우 뜨거운 듯한 느낌이었고, 냄새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고약했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변을 보면 쥐 꼬리 만큼 변이 나온다. 그리고 정리하고 나오면 조금 후에 또 다시 신호가 온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식사를 하다가도 대여섯번은 화장실에 가야만 한다. 잠을 잘 수도 없다. 새벽에도 이어지는 이 신호는 정신병이 날 정도였다. 헛것이 보이기 시작하고, 지금 내가 꿈을 꾸고있는 것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하루에도 족히 40번 이상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지금까지도 화장실을 족히 많이 갔지만, 이 번은 더욱 심한 것 같다. 문제가 뭐였을까. 비슷한 증상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증상을 겪은 사람이 대장암 환자중에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인터넷을 뒤지고 뒤지다가 찾아낸 원인은 바로


 김치


김치를 분명시 씻어서 먹었다. 하지만, 내 장의 상태는 아직 김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김치를 먹지 않기로 하고 몸의 변화를 살피기로 했다. 하루 이틀 정도는 차이가 크게 없었다. 변화는 사흘 째 되던 날 부터 찾아왔다. 가스의 뜨거운 기운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냄새도 고약한 썩은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아직도 화장실은 20차례 이상 드나들고 있었지만, 확실히 그 횟수는 줄었다. 자극적인 음식이 장에 무리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나중에 장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나면 다시 시도해 보기로 하고 자극없는 식단이 다시 시작되었다.


 화장실을 자주 가는 탓인지, 몸에서 영양소를 잘 흡수하지 못해서이기 때문인지, 병원에서 퇴원 전에 57kg이었던 몸무게가 식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빠졌다. 한달이 채 되기도 전에 52kg까지 살이 빠졌다. 가족들도 많이 걱정을 하고, 나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제 수술 한 지 한달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곧 항암을 시작해야한다. 그런데, 그 전에 체력이 좋지 않으면 항암을 견디기 힘들다는 글들을 많이 봤기때문에 체력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는 살을 찌우고자 많이 먹지도, 자주 먹지도 못한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면서 기도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다.


이제 곧 항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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