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논문.
시간이 부족한데다 건강까지 악화된 탓에 스무 살 이전까지 최소한 논문 다섯 편은 쓰자는 목표는 이루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얼떨결에ㅡ아직 공개하지 않은 논문까지 포함해서ㅡ논문을 총 다섯 편이나 썼다. 루시드 상태에서의 드리머와 현실 세계의 실험자가 송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한 <드리머의 루시드 상태 돌입과 꿈의 세계에서의 송신 방법 구축에 대한 논문>(http://blog.naver.com/davide95/220040925280)과 IDS-LD의 유효성을 검증하는 <IDS바이노럴 비트를 통한 인위적인 뇌파 공명과 측두엽 각성을 통한 루시드 상태 돌입에 관한 논문; 제 1차 IDS-LD 노출 실험.>(http://blog.naver.com/davide95/220287793659) 그리고 나의 존재론을 다루는 <시간성이 유물론적 존재자와 관념론적 존재자의 현존성에 미치는 영향; 존재론적 회의론에 관한 인식론적 논문>(http://blog.naver.com/davide95/220264409684)이 현재 블로그에 게시돼 있는 논문이고 차후 게시할 논문인 <일신교적 신정론에 대한 비판적 연구 논문; 라이프니츠의 가능 세계 신정론과 루터의 영혼-조력 신정론이 갖는 정당성에 관하여>는 학교 과제로, 그리고 실험이 종료된 지 일 년이나 지났는데도 건강 때문에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던 <IDS-GOH 바이노럴 비트가 피험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논문; 제 1차 IDS-GOH 노출 실험>을 최근 방학을 하면서 완성하게 되었으므로 스무 살 이전에 논문 다섯 편 이상은 작성하자는 계획은 달성되었다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이제는 내가 논문은커녕 글로도 취급하지 않는 <트리거와 세계선, 그리고 미래 개변에 관한 논문>과 <물체들의 이동(locomotion of objects)에 관한 논문>까지 논문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일곱 편이나 쓴 셈이 되겠지만 이 글들은 내가 아주 어릴 때 썼었던 소설의 주인공인 광기의 매드 싸이언티스트가 작성했다는 설정으로 되어 있는 헛소리로 가득한 논문이라 제외하도록 한다.
많은 참고문헌을 사용하는 제대로 된 연구 논문은 대학에서 처음으로 쓰게 되었는데 꽤나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참고문헌이 논문의 설득력을 어떤 방식으로 강화시키는지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애용하게 될 듯. 건강이 허락하는 한에서 논문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므로 2016년에는 쓰고 싶을 때 논문을 쓰는 걸로 정했다.
2.모르죠.
우울할 것도 없는데 왠지 모르게 우울해서 더 우울했던 크리스마스 날 새로 구한 예티 마이크로 하루 종일 우울하게 제이레빗의 <모르죠> 커버를 만들었는데 예상 외로 반응이 좋았다. 목소리로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제까지 목소리로 칭찬을 받아 본 것은 귀여운 영과 비트 박스만 잘하는 절친 제레미군과 레전드급의 트럼피터인 페이스에게서 밖에는 없었는데. 문득 엉뚱한 면모가 강한 아버지가 의사겸 취미로 성악을 하시는 것이 어쩌면 도움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유전적 동인을 추적하다 무리수를 두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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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노래를 하고 있고 어쿠스틱 기타(아리따운 펜더양)도 나름대로 배워나(알아)가고 있다. 뮤지션을 그만 둔지는 오래지만 더 이상 못하는 건 플룻이다, 음악이 아니라. 트라우마타이즈된 플룻은 다시는 보기도 싫을 정도로 무의식에 강하게 새겨졌지만 내가 작년에 내린 사형 선고는 적어도 음악에 대한 것은 아니다. 1학년이 끝나면 노래를 본격적으로 배워 보려고 생각중.
3.독서
고등학생 때는 책을 적게 읽은 대신 매우 많은 글을 썼던 반면 2015년 도에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서 반대로 글을 적게 쓴 반면 책을 꽤 많이 읽었다. 루터에 관해 어느 정도 심층적인 공부를 했고 세계종교와 역사와 철학 및 언어학과 심리학에 관한 다방면의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며 다음 학기에는 생물학과 미적분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하게될 것이다. 글을 별로 쓰지 못한 것은 분명 애석한 일이지만 읽지 않으면 쓰지도 못하는 법이므로 이번 경험이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칼을 가는 작업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물론, 공부를 할수록 멍청해지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내가 학문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인류가 쌓아온 지식체계의 거대함을 정면으로 맞닥뜨린 후 아르키메데스적 유레카 모멘트나 싯다르타식 목샤나 혹은 기독교적 에피파니 등등 하여간 그런 비슷한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법한 직관적 순간을 가진 이후 나 따위가 뭘 알겠어하는 소크라테스식 자아비판보다는 공부의 양이 많아지면서 글을 조금밖에 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실제로 2014년도에는 약 1433페이지를 썼는데 2015년도에는 950페이지 정도 밖에는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략 34퍼센트 하락이다. 조금 더 분발하자.
4.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또 다른 일 년이 끝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생이 되었으며 스무 살이 되었고 새로운 인연들을 마주했다. 풍랑 속의 돛단배처럼 흔들리는 해였지만 그래서 단련될 수 있었고 셀 수도 없이 많이 넘어졌으나 그 덕분에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스무 살이 된지 몇 주일이나 지났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그 자체로 이미 2015년은 나에게 있어 충분히 의미 있는 해다. 물론 생일 날 당일에 있었던 여러 해프닝 덕분에 그냥 자살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기는 했지만 제레미군이 말해 주었듯 자살은 그저 고통에서 도망가고자 하는 무의식적 바람의 의식적 결과물이라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었으므로 그저 그 정도의 충동에서만 멈추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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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패배는 없다. 그것이 내가 올 한 해를 버텨 나가며 가장 많이 되뇌었던 말이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끊임없이 싸워 나가며 그만큼 끈질기게 버티다 보면 넘지 못할 산은 없다. 조금 더 날카로워 져야 하며 시간에 관한 감각 그 역시 예민하게 정돈되어야 한다. 삶에 관해 진지한 태도를 갖되 유쾌함을 잃어선 안 되며 부지런 하되 휴식을 망각하면 안 된다. 한 번 뿐인 삶이다. 노자가 일장춘몽이라고 외치듯 종국엔 흙 찌꺼기가 될 운명에서 중요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만 그래도 살아갈 수 있기에 버텨낼 수 있기에 거기엔 카뮈의 시지푸스가 찾아냈듯 반짝이는 일말의 가치가 담겨져 있다. 엘리엇이 공포 한 움큼을 건네도 초연할 수 있는 담담함과 매우 강한 상대를 만나도 싸워 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진지해야 하며 초연해져야 한다. 거친 생의 물결 속에서 맞닥뜨리는 상대가 누구건 망설이지 않고 진검 승부를 하기 위해 나는 좀 더 첨예하게 칼을 갈아야 하고 그만큼 단련해야 한다. 버려야 할 신념은 버리고 지켜야 할 신념은 굳건히 지키는 것. 그런 것들이 진정한 나를 발견케 한 2015년이었다.
스무 살이 되었다고 새삼스럽게 환골탈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도 여러 사건 사고들이 있었고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는 시간들을 헤쳐 가면서 나는 나름대로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아직도 멍청하고 아직도 세상에 대해 일할도 모르면서 아는 척은 또 모모씨가 울고갈만큼 잘하는 애송이지만 예전에 썼듯이 애송이라고 해서 성장할 수 없다는 건 아니니깐. 미래에 대한 수사는 의미가 없으므로 2016년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관해 별다른 확언을 하지는 않을란다. 일단은 오늘 하루에 충실하도록 하자.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며 하루에 몸을 맡기자. 언제나 그러했듯이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다 보면 어느새 종착점에 당도해 있는 나를 발견할 것임을 나는 이미 알고 있으므로. 그렇게 20대로서 맞이하는 첫 봄은 오고 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