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국면이 불길한 전조를 외친다. 깜박거리는 주홍빛 가로등, 불규칙하게 울려퍼지는 경적 소리들, 반틈으로 썰려나간 달- 모든 것이 내일에 대한 하나의 묵시적 전보로 작용한다. 광인의 망상이건 신경쇠약이건, 무언가 잘못돼있다는 사실은 피부로 느껴지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긋난 것인지는 도통 알 길이 없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갑갑한 고요와 손목시계의 눈치 없는 째깍 소리, 그리고 감각을 부여잡을수록 희미해지는 사물의 윤곽들이 시야의 여백에 어지럽게 혼재한다. 나는 영혼 없는 밤의 정적이야말로 나를 혼란 속으로 서서히 옭아매는 동인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시끄러운 고요의 지속은 나를 나에서 분리시킨다. 감각에서 감각이, 정신에서 정신이 뜯어지면, 이내 의식의 표면위로 아득한 괴리감이 떠오른다. 그것은 죽음의 심연보다도 깊고 목적불명의 꿈으로 인도되는 망자의 몸부림보다도 나른한 무無의 느낌이다. 진정, 나는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한다. 나는 느낌을 느끼는 느낌을 공감각적으로 시청하는 관조자다. 괴리감은 무형의 위화감을 낳고 그것은 이내 보이지도 않는 손동작으로 나를 몽상 속에 밀어 넣는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감정의 재를 부여잡고 막연한 괴리의 흔적을 뒤적여보곤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심적 현상들은 허상에 불과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으로─
... 그래도 책장의 셰익스피어는 생기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햄릿도 티볼트도 저런 눈으로 죽었겠지. 어제도 그제도 셰익스피어는 허공을 떠돌아다니는 먼지들을 보고 있었다, 루브르를 방문한 중년의 평론가를 연상시키는 엄숙한 표정으로. 나는 그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가 없다. 회한도, 격정도, 타질 듯한 분노도, 심지어 지루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감옥같은 책표지 속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그 눈은, 그러니까 내 망막을 거친 이미지가 셰익스피어의 시각기관이게끔 지각하게 만드는 저 대머리 신사의 얼굴에 위엄있게 박혀있는 그 자그마한 두 점은, 사실상 눈이라 부를 수 없는 그런 눈이다. 그것은 이미 눈이 아니다. 그렇다. 그 눈은 열려있지만 그의 눈은 사실 닫혀있다. 그 눈은 모든 것을 보고있지만 그의 눈은 사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두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꼭 그것과 같지 않을까, 아침잠을 설친듯한 죽은 눈으로의 생활이 영원처럼 지속된 결과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의 간극은 마치 유년시절의 희미한 악몽처럼 잊혀져버리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몰두하다, 딸깍이며 떨어지는 연필소리에 나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저주받을 일상으로의 회귀. 책장의 두 눈은 아직도 그대로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