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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ER Jun 13. 2017

12:00AM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이었다. 난 그날 병원에 있었다. 응급병원은 아니었으니, 평소 같았다면 문이 닫혔을 시각. 나는 그 오밤중 낯익은 하얀 방에 들어섰다. 밖으로 나있는 창문 두 개는 검정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갈 곳 잃은 커튼은 간신히 벽에 기대고 있었다. 이름 모를 기계들이 난잡하게 얽혀있었고 검정색의 엑스레이 사진들로 가득한 박스 몇 개가 놓여있었다. 얼굴 없는 사람들의 희멀건 골격사진들이 한 무더기로 쌓여있는 것을 보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앙상한 뼈들의 네크로폴리스. 이미 몇몇 사람들이 그 방에 들어서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그 다음이었다.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 야밤의 병원을 찾아온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특수 제작된 침대 위에 누워있는 어떤 노인을 응시하고 있었다. 노인의 거뭇한 피부는 흡사 말라비틀어진 걸레조각이나 구겨진 검정 비닐봉지를 연상시켰다. 광대뼈만 남은 앙상한 얼굴 위에 자리 잡은 주름과 검버섯만이 그가 지나온 세월을 주장하는 듯했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이따금씩 어떤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오물거렸다. 분명한 목소리를 내기엔 근육이 이미 굳어버린 것 같았다.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노인의 가슴에는 여섯 개의 회색 전극이 부착돼 있었다. 유심히 보니 윈도우 98과 비슷해 보이는 컴퓨터와 연결돼 있었다. 스크린은 초록색 그래프를 그리며 노인의 심박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마 심전도 측정을 위한 용도. 그 방에 아버지도 있다는 것은 물론 방에 들어올 때부터 알았다. 흰색 가운을 입은 아버지는 노인을 최대한으로 안정시켜주려는 듯 그의 한쪽 손을 잡고 있었으니깐. 99세라고 했다. 종합병원은 이미 살만큼 사신 분이라는 핑계 아닌 핑계로 노인을 돌려보냈다고.


열한시가 지나자 노인의 심박이 불규칙해지기 시작했다. 날카롭게 스크린을 확인하던 아버지의 표정이 변한 것도 그때였다. 안정적으로 심전도를 측정하던 컴퓨터가 갑작스럽게 0을 기록했다. 쇼크성 심근경색. 그게 무슨 의미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단지 아버지가 입술을 앙다물고 갑작스럽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는 것과 사람들이 동요했다는 것으로 어렴풋이나마 무언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후의 몇 분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갔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아버지는 심전도가 0에 닿는 것을 확인하고 즉각적으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몇 분전 노인의 손을 쥐어주던 그 두 손으로 노인의 흉부를 강하게 반복적으로 눌러 내렸고 노인의 주름진 몸은 그때마다 타이어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를 냈다. 노인의 팔다리가 괴기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모습으로 꿈틀거렸다. 아버지는 곧이어 노인의 코를 막고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눈을 질끈 감고 있었고 나는 아버지가 노인과 입맞춤하는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 폐가 확장되다 줄어드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심장발작으로 굳어가고 있는 노인의 순환계를 붙잡기 위해 아버지는 미친 듯이 심장마사지와 인공호흡을 했다. 긴박감 속에서 들리는 것이란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낡은 컴퓨터 모뎀 쿨러가 회전하며 내는 웅웅거리는 소리, 그리고 환자의 가슴을 눌러 내리는 중년 남성의 절박한 숨소리뿐이었다. 심전도 그래프는 그대로였다. 인간의 목숨이 달려있는 기울기 0의 매정함. 그깟 초록색 선이 무어라고.


일분일초가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산소공급량이 줄어든 노인의 몸은 하나둘씩 꺼져가는 가로등처럼 제 기능을 상실해갔고 그는 꼭 그만큼 죽음의 품에 가까워져갔다. 호흡계, 순환계부터 의식과 눈동자의 초점까지. 아버지는 흡사 신들린 사람처럼 몇 번이고 심장마사지를 했다, 죽음의 천사 앞을 그렇게 가로막고선─


.

공기가 찼다. 새벽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갔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지만 비는 그쳤고 막 세상을 떠난 노인은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구깃구깃한 허물을 벗은 노인은 지금쯤 어떤 꿈을 꾸고 있을지. 시곗바늘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계속해서 원을 그리며 회전했고 종국에 남은 것은 모뎀 쿨러가 돌아가는 소리뿐이었다. 노인은 입을 벌리고 있었지만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항상 장난기 많던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직, 아직-이라고 되뇌면서.


병원을 뒤로하고 나오자 적막한 가로등 불빛 한줌이 나를 반겼다. 깜박이는 불빛 사이로 하루살이 몇 마리가 지나갔다. 어둑한 도로 한 구석에 생긴 물웅덩이는 천천히 하수구로 흘러가고 있었고 텅 빈 새벽주차장은 나른한 습기로 젖어있었다. 비 냄새가 어슴푸레한 밤공기 너머로 사라져갈 때쯤 풀벌레가 울기 시작했다. 구름 너머로 희미하게 반짝이는 무언가를 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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