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과 배움의 어원을 알면, 교육이 보인다

매일 아침 다시 피어오르기 2화

by 허두영

"선생님, 이 문제 답이 뭐예요?" 요즘 교실에서 가장 흔히 들리는 질문이다. 그런데 ChatGPT에 묻는다면 0.3초 만에 답이 돌아온다. 그렇다면 이제 선생님은 필요 없는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AI가 등장한 지금이야말로 ‘가르치다’와 ‘배우다’라는 말의 진짜 뜻을 되새겨야 한다.


‘가르치다’의 어원을 보자. ‘가르~’는 ‘가르다’에서 왔다. ‘나누다, 분별하다, 옳고 그름을 가려내다’라는 뜻이다. 여기에 ‘~치다’라는 사동 접미사가 붙어 “분별하게 하다, 길을 보여주다”가 된다. 따라서 ‘가르치다’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세상의 옳고 그름을 가르고, 삶의 방향을 분별하도록 돕는 행위다.


‘배우다’의 뿌리는 더욱 흥미롭다. ‘배다’에서 비롯된 이 말은 냄새가 옷에 밴 것처럼, 습관이 몸에 스며든 것처럼, 가르침이 삶 속에 배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머리로 지식을 쌓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생활에 스며들어 삶 자체를 바꾸는 과정이 곧 배움이다.


이 두 단어가 만나면 ‘교육(敎育)’이 된다. ‘敎’는 위에서 아래로 스승이 알려주는 행위, ‘育’은 아래에서 위로 제자가 자라나는 과정이다. 교육이란 가르침과 배움이 만나 완성되는 상호작용이다.


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은 어떤가? ChatGPT는 수학 공식을 완벽하게 풀어내지만, 왜 공부해야 하는지는 가르치지 못한다. 유튜브는 영어 회화를 무료로 제공하지만,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는 전해주지 않는다. AI는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게 해주지만, 어느 방향으로 헤엄쳐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역설이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오히려 분별력은 떨어진다. 딥페이크 영상에 속고,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편향된 알고리즘에 갇혀 확증편향을 강화한다. 유튜브가 특정 정치 성향 영상만 추천하거나, 인스타그램이 런닝 같은 특정 운동 콘텐츠만 보여주는 식으로, 알고리즘이 만든 정보 거품인 ‘필터 버블’ 속에서 자신과 비슷한 의견만 듣다 보니, 다른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이 퇴화한다.


그럴수록 진짜 ‘가르침’의 가치가 빛난다. AI가 답을 알려주는 시대에, 인간은 질문을 가르쳐야 한다. “이 정보가 맞나?”보다 “왜 이런 정보가 필요한가?”를 묻게 해야 한다. 검색 기술이 아니라 검색 철학을, '데이터 분석'이 아니라 '데이터 윤리'를 가르쳐야 한다.


핀란드는 2016년부터 ‘가짜 뉴스 판별법’을 정규 교육과정에 넣었다. 학생들은 뉴스의 출처를 확인하고, 편향성을 분석하며, 다양한 관점을 대조해 사실을 검증한다. 단순히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보를 가려내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 시대의 교육이다.


‘배움’의 본질도 재조명해야 한다. AI는 1만 시간이면 체스 마스터가 되지만, 인간은 평생을 배워도 여전히 인생 앞에 서툴다. AI의 학습이 패턴 인식이라면, 인간의 배움은 의미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AI는 영어 표현 100가지를 알려줄 수 있지만, 외국인 앞에서 실제로 말하고, 실수하고, 몸으로 체득하는 과정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AI는 지식을 머리에 얹어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몸과 삶에 배게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배움은 여전히 인간의 특권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 교실에는 진짜 스승도, 진짜 제자도 없다는 자조 섞인 한탄을 한다는 점이다. 교사는 콘텐츠 전달자로 축소되고, 학생은 정보 소비자로 전락했다. 수업은 상호작용의 드라마가 아니라 일방향 스트리밍이 되었다.


그러나 희망의 조짐도 있다. ‘에듀테크’에서 ‘휴먼테크’로의 전환이다. AI가 개인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면서, 오히려 교사는 학생과 더 깊이 소통할 시간을 갖게 됐다. 반복 학습은 AI에게 맡기고, 창의적 토론과 윤리적 성찰은 인간이 담당하는 식의 역할 분담이 가능해진 것이다.


싱가포르의 한 학교에서는 AI 튜터가 수학 문제를 가르치는 동안, 교사는 학생들과 “수학이 사회 정의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를 토론한다. 미국의 어떤 고등학교는 ChatGPT로 에세이를 쓰게 한 뒤, 그 글의 논리적 허점과 윤리적 문제를 찾아내는 수업을 진행한다.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물음을 던지며 분별의 길을 가르쳤고, 공자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 삶이 기쁘다(學而時習之)”라며 배움이 삶에 스며드는 것을 강조했다. 교육의 본질은 시대와 도구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서 그 본질은 더 선명해지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교육의 본질은 더 분명해진다. 스승은 지식이 아니라 분별을 가르치고 비전을 찾도록 도와야 하고, 제자는 지식을 넘어 삶 속에 배움이 스며들게 해야 한다. 이것이 회복될 때, 교육은 다시 인간을 길러내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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