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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재림 후 펼쳐질 '천년왕국'의 모습은?

[궁금했성경] 84화, 가장 성경적인 주장은 무엇일까? 5가지 견해들

by 허두영

정통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본문


교회는 오랜 세월 동안 한 문장을 붙잡았다. "성도들은 지금 이미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고 있다." 칼빈, <기독교 강요> 3권 25장 5절. 이 문장은 어거스틴이 세운 무천년설의 토대를 더욱 견고하게 굳혔다. 이후 교회의 정통은 이 교리를 확립된 해석으로 여겼고, 요한계시록 20장을 상징으로 뒤덮었다. 하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정통이란 이름으로 성경의 순서를 대신할 수 있을까?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교리의 안정인가? 아니면, 말씀의 질서인가?

이 글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천년왕국 논쟁은 단순한 교리의 선택이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을 언제, 어떻게 믿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든 천년왕국론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준으로 나뉜다. 단순히 '기간'의 문제가 아니다. 재림과 천년왕국, 이 둘의 순서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다. 세대주의·역사적 전천년설은 '재림 후 천년왕국'을, 후천년설은 '재림 전 천년왕국'을, 무천년설은 '지금이 천년왕국'을 말한다.

성경은 이 중 어디에 서 있는가? 바로 그 지점을 찾아가는 것이 핵심이다.


1. 예수님의 재림을 기준으로 본 다섯 가지 천년왕국론


모든 종말론의 차이는 "예수님이 언제 오시는가?"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갈림길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1) 세대주의 전천년설(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


예수님은 천년왕국 전에 공중 재림, 지상 재림으로 두 번 오신다는 주장이다. 먼저 교회는 환난 전에 공중으로 휴거되고, 7년 대환난 후 예수님이 지상에 재림해 이스라엘 중심의 천년왕국을 세운다는 것이다. 각 세대별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다비와 스코필드의 고전적 세대주의에 따르면 총 7단계로 나눈다.


무죄시대(아담, 순종의 시험)

양심시대(가인~노아, 양심에 따른 삶)

인간정부시대(노아, 사회적 질서와 피 흘림 금지)

약속시대(아브라함, 믿음과 약속의 순종)

율법시대(모세~그리스도, 율법의 순종)

은혜시대(십자가 사건 이후, 믿음으로 구원받는 시대)

왕국시대(재림 후, 메시아의 실제 통치)


지금은 '은혜 시대(교회시대)'이며, 재림 후 '왕국 시대(천년왕국)'가 온다는 식이다. 19세기 이후의 근대적 종말론이다. 대표학자로 존 넬슨 다비, C.I. 스코필드, 루이스 스페리 체이퍼, 존 맥아더가 있다. 구원파, 다미선교회, 하나님의교회, 인터콥, 형제교회, 순복음교회에서 주장한다.


이 주장에 대한 반증은 다음과 같다. 성경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누지 않는다. "하나님은 두 백성이 아니라, 한 몸을 세우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었다."(엡 2:14~16) 이중 재림에 대한 성경적 근거도 없다. 예수님의 재림은 단회이며, 재림과 부활, 세상의 끝이 동일하다. 성경에 7년 대 환난은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7세대로 나눠 각 세대마다 구원의 방법이 다르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다른 구원 방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한 구속 계획을 각 시대의 언어로 드러내셨다. 구원은 언제나 은혜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2) 역사적 전천년설(Historic Premillennialism)


예수님은 천년왕국 이전에 재림하시며, 재림과 함께 의인들이 첫째 부활에 참여해 하늘에서 주와 함께 천년 동안 왕 노릇한다. 사도적 전통을 잇는 가장 본문에 충실한 해석이며, 초대교회 때부터 역사적으로 믿어왔던 내용이다. 요한계시록 20장의 순서를 문법 그대로 따른다. 천년은 상징이 아닌 실제 기간이며, 사탄의 결박은 실제로 활동이 불가능한 상태다. 세대주의와 역사적 전천년설은 둘 다 재림 후 천년왕국을 믿는다. 그런데 세대주의는 이스라엘 중심의 문자적 구속사, 유대 중심의 지상왕국을, 역사적 전천년설은 그리스도 중심의 구속사의 완성을 본다. 대표학자는 유스티누스, 이레니우스, 터툴리안(초대교부), 조지 엘든 래드, J. 올리버 버스웰, 크레이그 블롬버그이다.


(3) 무천년설(Amillennialism)


천년은 상징적 기간이며, 지금 교회시대가 곧 천년왕국이다. 사탄은 이미 십자가로 결박되었고, 예수님의 재림은 곧 심판이자 새 창조다. 요한계시록 20장은 교회의 영적 통치를 상징한다고 본다. 개혁신학의 주류 종말론으로 상징적 해석, 교리적 안정을 강조한다. 재림, 심판, 새창조를 하나의 사건으로 본다. 대표학자로는 존 칼빈, 바빙크, 벌코프, 김 리들바거가 있다.

무천년설의 한계는 명확하다. 천년왕국의 시작은 사단의 결박으로부터 시작된다.(계20:1~3) 그들 주장처럼 사단에 결박되었다면, 지금 죄, 저주, 사망이 있으면 안되는 것이다. 성도가 왕 노릇해야 하는데, 많은 핍박을 받고 죽어갔다(계20:4, 6). 불신자가 죽어야 하는데 살아 있다(계20:5). 재림 시 부활이 둘째부활이라고 한다면, 신자들이 죄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4) 보수주의 후천년설(Conservative Postmillennialism)


복음이 전 세계로 확장되며 세상이 점차 복음화되어, 평화로운 천년왕국적 시대가 온 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 선이 증가하고 악이 감소하여 천년 왕국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천년왕국은 지상에서의 복음적 질서 회복기로 본다. 복음의 능력이 세상을 변혁시킨다는 역사적 낙관주의가 중심이다. 복음의 승리와 사회 변혁을 강조하는 낙관적 종말론으로, 재림은 천년왕국 이후에 이뤄진다고 본다. 대표 학자는 조너선 에드워즈, 찰스 핫지, B.B. 워필드, 그렉 반슨, R.J. 러시두니가 있다. 이들의 주장처럼 선이 증가하지 않고, 현실은 오히려 악이 증가하고 있다.


(5) 자유주의 후천년설(Liberal Postmillennialism)


복음보다 인간 문명 발전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든다고 본다. 예수님의 재림은 상징적 사건이며, 인류의 도덕 진보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고 여긴다. 사회복음주의의 산물이며, 인본주의적 낙관론으로, 초자연적 구속을 부정하고, 신학보다 인류 진보를 믿은 종말론이다. 대표 학자는 라우션부쉬, 글래든, 리츨이다. 후천년설의 주장은 재림을 부정하거나 먼 미래의 일로 보게 되어 재림과 천국에 대한 소망이 사라져 지상낙원만 바라게 만든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세대주의는 '이스라엘이 중심'이고, 무천년설은 '지금이 천국'이라고 하고, 후천년설은 '세상이 점점 나아질 거야'라고 말한다. 그런데 성경 요한계시록 20장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이 오신 후, 진짜 왕국이 시작된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 전천년설, 사도들이 믿은 종말의 이야기다. 이 단순한 성경의 질서를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역사적 전천년설의 구조로 귀결된다.


2. 어거스틴의 상징, 칼빈의 해석 - 교리적 안정이 만든 맹점


어거스틴은 로마제국의 붕괴 속에서 신앙의 안식처를 찾았다. 그의 책 <하나님의 도성>은 무너지는 역사 속에서 영원한 천국을 붙잡으려는 시도였다. 그는 천년왕국을 교회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이후 칼빈은 재세례파의 지상왕국 운동을 경계하며, "천년왕국을 꿈꾸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이 땅의 쾌락으로 바꾼다"라고 경고했다. 그들의 신학은 탁월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본문의 순서가 교리의 안정으로 대체된 것이다. 요한계시록 20장은 상징의 미로가 아니다. 상징은 이미지를 주지만, 성경의 순서를 지우지 못한다. 정통은 교회의 울타리가 될지 모르지만, 성경의 주석이 아니다.


3. 요한계시록 20장, 본문이 말하는 순서


재림(불신 세상 심판, 성도 구속 완성) → 첫째 부활(의인의 부활, 생명의 부활) → 사단 결박과 천년왕국(성도는 낙원에서 왕노릇, 불신자는 음부) → 사탄의 해방과 곡·마곡 전쟁 → 둘째 부활(악인의 부활, 심판의 부활) → 백보좌 심판(불신자는 영원한 지옥) →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성도는 영원한 천국)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의 재림 후 우주는 불바다가 된다. 첫째 부활(의인의 부활, 생명의 부활)이 일어난다. 사탄은 무저갱에 결박되고 이 시기의 성도는 천국(Heaven)으로 가지 않고, 하늘의 낙원(Paradise)에서 왕노릇한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라는 약속이 이 장면에서 실현된다. 반면 불신자는 심판의 부활 전까지 음부(하데스)에 남아 최후 심판을 기다린다.


천년이 차면 사단이 무저갱에서 풀리고 잠시 활동할 기회를 얻는다. 사탄은 천년왕국 후에도 여전히 미혹의 영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하나님의 나라에 '곡과 마곡의 최후 전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나서 둘째 부활(악인의 부활, 심판의 부활)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 그들을 단번에 멸망시킨다.


천년왕국이 끝난 뒤 부활한 불신자들(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백보좌 심판대 앞에 서서 각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 그들은 둘째 사망을 당하고 영원한 불못(지옥, 게헨나)에 던져진다. 이 때 성도들은 심판을 함께 보는 증인의 자리에 서게 된다. 백보좌 심판 후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제 완전히 새로워진 우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 그 중심에 있는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한다.


지금의 세계는 미혹이 끊어진 세상인가? 그렇지 않다. 사탄의 결박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지금은 천년왕국의 때가 아니라, 증언과 인내의 시간이다.


4. 초대교회가 믿은 종말, 역사적 전천년설 - 사도적 기억의 복원


초대교회는 부활을 믿듯 천년왕국을 믿었다. 유스티누스,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그들은 요한의 제자들의 제자였다. 그들에게 전천년은 신학적 선택이 아니라 기억의 신앙이었다. 핍박의 시대에 "지금이 천국이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현재를 '증언의 시간'으로, 왕국을 '부활 이후의 시간'으로 기다렸다. "참으면 왕 노릇하리라"(딤후 2:12) 그 구절은 그들의 현실이었다.

역사적 전천년설은 사도적 전통의 숨결이 짙게 배어있다. 19세기 다비의 세대주의적 전천년과 다르다. '역사적(Historic)'이란 말은 단순한 옛 사상의 복원이 아니라, 사도적 기억의 계승을 뜻한다.


5. 왜 역사적 전천년설이 다시 주목받는가?


20세기 중반 이후, 복음주의 학계는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고 있다. '문법적-역사적 해석'(grammatical-historical interpretation) 운동은 요한계시록 20장을 교리보다 본문으로 읽으려 했다. 그 중심에 조지 엘든 래드가 있었다. 그는 교회사의 안개 속에서 사도적 신앙의 맥을 복원하려 했다. 그의 해석은 학문이 아니라 회복이었다. 그래서 그는 전천년설을 다시 학문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순서를 회복한 신학자로 남았다.


6. 무천년설의 한계, 그리고 복음의 왜곡 - 상징이 복음을 덮다


무천년설은 지혜로웠다. 혼란한 시대에 교회를 안정시켰다. 하지만 그 안정이 성경 본문을 덮었다. "사탄이 이미 결박되었다"라는 말은 현실과 충돌한다. 거짓 복음과 교회의 분열, 악의 미혹은 여전하다. 결박은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미혹이 멈춘 증거가 없다면, 결박은 아직 아니다. 성도가 왕노릇하는 왕권도 마찬가지다.


무천년의 상징주의는 복음의 긴장을 풀어버린다. 그래서 구속사의 힘이 약해진다. 죄와 사망의 종말이 미래 사건이 아닌 상징이 되면 회개는 약해지고, 소망은 방향을 잃는다. 상징은 복음을 돕지만, 대체할 순 없다. 무천년설은 교리를 세웠지만, 말씀의 질서를 잃었다. 질서가 무너지니 복음의 긴장도 사라졌다. 상징은 신앙을 지탱할 수 있지만, 구속의 현실을 대신할 수는 없다.


7. 성경이 가리키는 참된 순서 - 구속사의 완성 지도


구속사는 창조-타락-구속-영화의 네 축으로 흐른다. 역사적 전천년설은 이 네 축과 완벽히 맞물린다. 창조로 시작된 질서에서, 타락 후 사단에게 이 세상의 통치권을 상실했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으로 다시 왕권을 회복하고, 마침내 천년왕국과 새 창조로 완성된다. 천년왕국은 구속사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왕권의 회복'이 현실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상징에서 현실로, 믿음에서 눈으로, 약속에서 통치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결론 - 정통을 넘어 성경으로


정통은 교회를 지킨다. 그러나 성경은 진리를 지킨다. 어거스틴의 신학은 교리를 세웠지만, 요한의 계시는 시간을 말했다. 그 순서는 예수님의 재림, 사단의 결박, 첫째 부활, 천년왕국, 백보좌심판, 새하늘과 새땅이다. 바로 이 단순한 질서가 복음의 진짜 흐름이다. 전천년설은 성경 본문에 바탕을 둔 가장 성경에 가까운 해석이다. 천년왕국에서 누리는 왕관은 지금의 장식이 아니라, 미래의 약속이다. 오늘의 인내는 내일의 왕좌로 이어진다. 요한은 그 내일을 '천 년'이라 불렀다. 우리도 그렇게 불러야 하지 않을까?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인천성산교회 홈페이지: http://isungsan.net

인천성산교회 l 인천이단상담소(상담 및 문의): 032-464-4677, 465-4677

인천성산교회 유튜브: www.youtube.com/@인천성산교회인천이단

인천성산교회 고광종 담임목사 유튜브: https://www.youtube.com/@tamidnote924

인천성산교회 주소: 인천광역시 남동구 서창동 장아산로128번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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