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로 신청하며
초등학생 시절, 맞벌이로 바쁘셨던 부모님은 방학 때마다 나와 내 남동생을 도서관에 내려주고 출근하셨다. 어린이 자료실에서 종일 책을 읽다 점심시간에 함께 지하 매점에 내려가 라면과 김밥을 사 먹는 게 크나큰 재미였다.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내일 또 갈 거니까. 아침에 가면 늦은 오후까지 있다 오기 때문에 마음도 아주 느긋했다. 책을 읽다가, 방학 숙제도 하다가, 사람 구경도 하다가. 어린 시절의 포근한 기억 중 하나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빠지지 않던 눈은 초등학생 때 ‘해리포터’를 만나면서 훅 갔다. 책장 넘어가는 게 아쉬웠던, 읽으면서 밤을 새웠던 첫 번째 책이었다. 해리포터 이후에 가장 빠져들어 읽었던 책은 중학교 시절에 만난 1세대 인터넷 소설이었다. 나의 중학교 시절은 이시정과 이윤지, 인터넷 소설이 전부였다. 그들에게 빌려주고 빌려 읽고. 나름 취향도 있었고 열심히 읽었다. 나의 감수성과 독서 속도 향상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엔 다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항상 요의를 느끼던 교대 도서관의 서가 양쪽에는 책상이 1열로 길게 놓여있었다. 내 앞뒤로 책상들이 있었지만 시험기간이 아니면 사람은 없는 날이 더 많았고, 양 옆은 창문과 책으로 막혀 있었다. 공강 시간에 그곳에 있는 걸 참 좋아했다. 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즐겁게 떠오르는 장면이다.
결혼 전 좋은 사람들과 책모임을 했었고, 여전히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결혼 후엔 다시 그림책을 보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기 전 그림책을 만난 건 크나큰 복이었다. 나와 성격이 상극인 유은이도 그림책 취향만은 나와 비슷해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들을 유은이도 아주 좋아한다. 유은이에게 그림책은 여러 장난감 중 하나다. 실제로 거실 책꽂이에는 그림책과 장난감이 함께 있다. 퍼즐을 하다가 그림책을 가져오고, 그림책을 보면서 역할놀이와 숨은 그림 찾기를 하고, 책을 읽다가 공을 찬다.
내가 먼저 유은이에게 책 읽자는 말은 하지 않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 아니면 유은이가 가져오는 책은 그곳이 식탁이 됐든 드레스룸이 됐든 어디에서든 꼭 안고 읽어준다. 이 장난감을 유은이가 평생 가지고 놀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읽을 생각만 해도 쉬가 마려워지는 책을 만났으면 좋겠고, 영화를 보고 나와서 실망하게 만드는 책을 만났으면 좋겠고, “내 말이!”하고 외치게 만드는, 내 말을 글로 써주는 작가를 만났으면 좋겠다.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유은이가 냉장고에서 흘러나오는 엘가의 '사랑의 인사'에 알 수 없는 가사를 붙여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고통을 모르는 창작자인 유은이가 부러웠다. 그리고 유은이 또한 ‘유은이의 말’을, 그리고 누군가에게 ‘내 말’이 될 수 있는 글을 쓰고 노래하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엄마인 나부터 그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부끄러움이 많아 교직논술 시험 이후엔 글을 글답게 써서 남에게 보인 적이 없지만, 사실 난 고된 육아 시간 중에 짧고 긴 글을 읽고 쓰면서 굉장히 큰 기쁨과 위로를 누린다.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을 나의 기쁨을 나의 공간에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용기 내 보기로 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읽히는 글’, ‘쉬운 글’, ‘그림 같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유대인의 9명 중 1명이 작가라고 한다. 이 말이 유대인은 모두 작가라는 말로 들렸다. 나도, 나의 아이들도 평생 독자이자 작가로 살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