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매체를 확장한 실험 예술가, 볼프강 틸만스

Wolfgang Tillmans (1968 ~)

by 브레첼리나

90년대를 전후로 사람들이 ‘예술가’라고 떠올리는 이미지가 크게 달라졌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예술가는 장인 정신을 지닌, 고귀하고 우아한 사람들처럼 여겨졌다. 일종의 신비로운 아우라가 있고, 나와는 다른 어떤 타고난 능력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대중이 바라보는 예술가의 모습은 크게 바뀌었다. 예술가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 특정 집단이나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경계를 허물며 살아가는 사람, 비주류적 위치에서 주류를 비판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1990년대 컬트 문화의 영향이 크다. 냉전 종식 이후 기존의 사회·정치적 구조가 조금씩 해체되기 시작했고, 젊은 세대는 자신의 자유와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클럽 문화, 성소수자 커뮤니티, 레이브(Rave) 같은 다양한 서브컬처가 등장하며, 그들만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 흐름 속에서 새로운 예술가들 역시 등장했다. 개념 예술이 본격적으로 확장되며 예술의 경계가 흔들리던 시기였고, 서브컬처에 속해 있던 아티스트들도 자신들만의 언어로 비주류의 예술을 주류 미술의 장으로 끌어올렸다. 독일의 사진가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 역시 그런 흐름을 대표한다. 그는 사진을 매체로 삼았지만 전통적인 사진의 역할에 머물지 않았다. 개념적이고 설치적인 형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회적·정치적 메시지를 실험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현대 예술가였다.


일상의 민주주의를 구현한 사진가

볼프강 틸만스는 1968년 독일 렘샤이드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독일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했지만, 이후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클럽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그의 삶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영국의 본머스 예술 디자인 대학(Bournemouth and Poole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사진작가로서의 활동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초기의 틸만스는 자신의 일상을 그대로 찍었다. 그의 일상은 레이브와 파티 문화,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중심이었고, 그는 이들 주변 환경을 있는 그대로 사진으로 담아냈다. 자신이 몸담고 매료되었던 컬트 문화를 피사체로 삼으며 일명 ‘컬트 사진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문화 속에서 직접 경험한 날것의 삶, 비주류였던 사람들의 솔직하고 친밀한 초상은 90년대 청년 문화를 기록하는 중요한 시각적 자료가 되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기록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틸만스는 그 안에 사회적·정치적 메시지를 담았다. 그는 젊은 세대의 정체성, 성, 권력, 인권 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사람들이 쉽게 다루지 않는 주제를 사진으로 드러내며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브렉시트 반대 포스터나 반극우 캠페인 참여 역시 그의 이러한 태도를 보여준다. 틸만스는 자신이 속한 문화를 그저 소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정치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표현했다.

아래 사진은 영국의 영향력 있는 청년 문화 잡지 <i-D>에 실리며 그를 국제적으로 알린 초기 대표작이다. 숲 속 나무에 두 인물이 나체에 코트만 걸친 채 앉아 있는 모습이 담겼다. 이들은 틸만스의 친구인 Lutz Huelle와 Alexandra Bircken으로, 사진 제목에도 이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배경의 울창한 자연과 인물의 구도는 목가적인 회화를 연상시키지만, 동시에 퀴어한 분위기를 풍긴다. 단지 나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의 옷을 바꿔 입었다는 점에서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여자는 남자의 코트를, 남자는 여자의 코트를 걸쳤다. 틸만스는 이들의 아주 사적인 순간을 조용히 포착했다. 그들의 포즈와 눈빛에는 자유와 해방감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그는 자신이 속해 있던 컬트 문화를 이런 방식으로 기록했다. 매우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모습을 사진으로 남김으로써, 그들의 삶 역시 소중하며 모든 사람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 외에도 그는 땀에 젖어 흥분한 클러버들의 얼굴, 두 남자가 키스하는 장면, 침대 위에서 나른한 자세를 취한 인물 등 비주류로 여겨졌던 이들의 일상을 꾸준히 찍었다. 그 속에는 정체성과 자유, 해방감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그의 사진들은 젊은 세대의 성적 정체성과 정치적 목소리를 대중에게 직접 전달하는 강력한 매개체가 되었고, 시각적으로 모두가 동등하며 중요하다는 ‘시각적 민주주의’를 구현했다.


630e89d5-c2f7-424e-89d4-2176815b858b_570.Jpeg Alex and Lutz in the trees, 1992



추상 사진과 사진 매체 탐구

틸만스는 컬트 사진의 대표적 아티스트로 알려졌지만, 그의 작업이 그 영역에만 머무른 것은 아니다. 그는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를 탐구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험을 이어온 예술가였다. 전통적으로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는 도구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틸만스는 그 틀에서 벗어나 사진의 ‘물질성’ 자체를 드러내려 했다. 그는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암실에서 빛과 화학 물질을 직접 다루며 추상 사진 작업을 시도했다. 이러한 실험의 근본적인 이유는 사진 매체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데 있었다. 사진을 단순히 카메라로 대상을 포착하는 행위로 한정하지 않고,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으로 다시 정의하고자 한 것이다. 기존의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실험의 장을 연 셈이다.

<Lighter> 시리즈에서 그는 인화지를 접거나 구기고, 찢은 뒤 빛에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찢기거나 접힌 부분은 빛이 과하게 들어가 날카로운 흰색 선과 색면을 만들어냈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사진 속 이미지인지, 혹은 말 그대로 구겨진 종이 한 조각인지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워진다. 사진은 분명 2차원 평면이지만, 그 이미지들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3차원 물체의 성질을 강조한다.

<Silver> 시리즈에서는 현상액을 교체하지 않고 오염된 상태의 인화기에 필름을 넣지 않은 채 인화지를 반복적으로 통과시키는 실험을 했다. 인화지에 포함된 은(silver) 성분이 오염된 화학액과 만나며 예측할 수 없는 얼룩과 줄무늬가 형성되었다. 이는 기계와 화학물질 스스로가 만들어낸 추상적 이미지였고, 말 그대로 ‘사진이 스스로 만들어낸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인화지 표면에서 빛과 현상액의 움직임 자체를 기록하는 작업도 시도했다. 인화지에 직접 빛을 노출시키면서 종이를 움직여, 빛이 휘몰아간 흔적을 그대로 남긴 것이다. 그 결과 물결무늬나 안개 같은 대규모 추상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사진이 시간을 ‘고정’하는 매체인 동시에, 시간과 운동의 흐름 자체를 기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실험이었다. 이처럼 틸만스의 추상 사진은 사진 매체에 대한 고정된 사고를 뒤집는다. “사진은 현실을 찍어야 한다”, “사진은 피사체 앞에서 셔터를 눌러야 한다”는 오래된 관념을 깨고, 사진 역시 회화처럼 순수하고 추상적인 개념 작업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그의 실험은 사진이라는 매체의 한계를 넓히며, 사진이 무엇일 수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L.WT.53-56.jpg <Lighter>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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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er> 시리즈




사진을 공간으로 확장한 설치 방식

볼프강 틸만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사진의 내용뿐 아니라 그것을 설치하는 방식에 있다. 그는 사진을 단순히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는 평면 작품으로 보지 않았다. 그의 전시는 하나의 설치 작품을 경험하는 것에 가깝다. 그는 액자를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최소화하고, 사진을 벽에 테이프로 직접 붙이거나 클립, 핀으로 가볍게 고정한다. 사진의 크기 또한 일정하지 않다. 작은 엽서 크기부터 벽 전체를 뒤덮는 대형 사진까지 극단적인 스케일을 오가며, 규칙 없이 자유롭게 배치한다. 하나의 벽면이 커다란 콜라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방식은 이미지의 위계질서를 해체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모든 이미지는 동등한 가치를 지니며, 세상의 모든 현상을 평등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그의 메시지를 반영한다. 또한 프레임을 없앰으로써 관람객이 사진과 보다 직접적이고 친밀하게 마주하게 한다. 틸만스에게 사진의 배치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이미지들을 새롭게 구성하는 또 하나의 창조 행위였다. 서로 다른 주제와 형식의 이미지들이 한 공간에 뒤섞이며, 처음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것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생겨난다. 관람객은 이 이미지들 사이를 스스로 탐색하며 의미를 찾아가는 능동적인 참여자가 된다. 틸만스의 초기 경력이 잡지 작업에서 시작된 것도 이러한 전시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잡지 속 사진 레이아웃처럼 다양한 크기의 이미지가 리듬감 있게 배열되어, 벽면 전체가 하나의 잡지 페이지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전시장은 사진을 공간으로 확장하는 장이었다. 정형화된 방식, 통제된 공간이 아니라 관람자가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액자 속에 담긴 사진은 ‘정답’처럼 보인다는 점을 경계한 것이다. 또 틸만스는 일상을 중시했기 때문에, 그의 전시는 마치 자신의 방 한쪽 벽을 보는 듯한 친근함을 갖는다. 예술 작품을 지나치게 숭고한 대상으로 신격화하지 않고, 일상 속에 놓인 하나의 삶의 조각처럼 다루었다. 틸만스의 이러한 설치 방식은 사진을 단순한 평면 이미지에서 벗어나 공간적 매체로 확장한 중요한 예술적 시도였다.


W1siZiIsIjUyNDY1NiJdLFsicCIsImNvbnZlcnQiLCItcXVhbGl0eSA5MCAtcmVzaXplIDIwMDB4MjAwMFx1MDAzZSJdXQ.jpg?sha=008f6ac41e68e14e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Wolfgang Tillmans: To look without fear"




독일에서 사진을 배우는 방식은 한국과 꽤 달랐다. 한국에서 사진을 배워본 적은 없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수업 시간에 각자 작업해 온 사진을 가져와 교수님과 학생들 앞에서 보여주고, 그 작업에 대해 함께 토론하는 것이 수업의 핵심이었다. 따로 과제가 주어지지도 않았고, 사진 기술은 각자가 필요한 워크숍이나 실습수업에서 알아서 배우면 됐다. 교수님이 진행하는 정규 수업에서는 작업을 보여주고, 질문과 답을 오가며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이야기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이 방식은 처음엔 꽤 낯설었다. 학기 중 한두 번이 아니라 매주 이런 시간을 가져야 하고, 이게 수업의 메인이라는 사실이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작업을 보여주는 것도 전적으로 자유였다. 매주 보여줄 수도 있고, 한 번도 안 보여줘도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나는 후자, 즉 작업을 잘 안 보여주는 학생 쪽이었다. 반대로 어떤 학생은 거의 매주 사진을 가져와 보여줬다. 그 학생의 사진은 어딘가 볼프강 틸만스를 연상시켰다. 성소수자들의 모습을 담았고, 그들의 은밀하고도 일상적인 순간들을 솔직하게 포착한 사진들이었다. 때로는 보기가 쉽지 않은 사진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매주 자신의 작업을 꺼내놓고 교수님의 피드백을 듣고 싶어 했고, 학생들과 의견을 나누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 처음 나는 그의 사진을 보며 “이런 것도 찍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예술을 아주 거창하고 숭고한 것으로만 이해했다. 독창적이어야 하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여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사진을 계속 보다 보니, 그가 일상적인 순간들을 통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독일은 매우 열린 나라다. 성소수자들이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도 그들을 특별히 구분하거나 편견의 시각으로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만의 시선, 그들만의 목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사회에 말하고 싶은 것들이 분명히 있었고, 그는 그것을 사진으로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었다.

볼프강 틸만스 또한 컬트 문화를 대표하는 예술가다. 누군가에게 그의 사진은 불편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열어주는 이미지일 수 있다. 그의 추상 사진 작업 역시 기계와 빛, 화학 작용이 만들어낸 극단적인 형태의 추상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런 작업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카메라 없이 찍은 것이 사진일 수 있는지, 그럼에도 그를 사진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지—현대 예술의 어려움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시작된다. 어떤 작업은 우연에 맡겨지고, 작가가 직접 손댄 것이 아닌 기계가 만들어낸 이미지도 예술이라고 불린다. 나 역시 여전히 현대 예술은 어렵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한다면, 먼저 예술가들이 어떤 질문에서 출발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한 의문과 질문, 그리고 그 질문을 향한 탐구와 실험이 현대 예술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작품이 현대 예술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 예술을 만들어왔던 많은 작가들이 세상에 던졌던 질문들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본다면, 우리 역시 일상에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들에 대해 한 번쯤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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