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시절, 나는 말 그대로 '똥쟁이'였다. 많이 먹었고 그만큼 많이 쌌다. 수험생이랍시고 매일 책상 앞에 앉아 있었는데, 머릿속에 넣는 것보다 입에 넣는 게 더 많았다. 과식의 죄책감은 '공부는 체력 싸움'이라는 말로 털어내곤 했다. 덕분에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으면서 체력이 아니라 체급으로 싸울 판이었다.
들어오는 게 많아져서인지 밀어내는 것도 어마무시했다. 시도 때도 없이 달려가던 화장실은 늘 만실이었다. 다들 '먹고 싸는' 본능에 지나치게 충실한 자신의 모습을 하루에도 몇 번씩 직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보면 별별 생각이 다 스치고 지나갔는데, 어느 날은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아, 나는 정말 똥 만드는 기계로구나!
부끄럽다거나 허무하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느낌보다는 새롭게 깨닫는 기분이었는데, 나쁘지만은 않았다. 부지런히 씹어 삼키는 손과 입, 술술 넘기는 목구멍, 꿀렁꿀렁 쉬지 않는 성실한 위와 장... 이 모든 기관들이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한지 신기할 따름이었달까.
여튼 이 성실한 똥쟁이 시절은 수험생활과 함께 끝이 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이후로는 줄곧 잘 싸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게 되었다. 이제는 먹는 만큼 나오지 않고, 그마저도 일주일에 두어 번 기별이 오는 정도다. 문제는 그것 말고도 잘 나오지 않는 게 많아졌다는 건데, 그중 하나가 글이다. 글이 나오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글쓰기를 제법 했었다. 학교대표로 백일장을 나갔었고, 대학도 글을 써서 갔다. 장래희망도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일을 찾게 됐고, 그동안의 밥벌이도 그런 일로 해왔더랬다. 그러나,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당최 써지지 않았다. 20대 중반 즈음부터였다. 분명 꽉 차 있는 기분이 드는데,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됐다. 흰 바탕 위에서 깜빡거리는 커서를 노려보다가 한글창을 닫아버리기를 20년째. 뭐, 이젠 정말 포기해야 하는 건가. 아쉽다. 어딘가 쿡 찔러주면 쏟아져 나올 것 같은데. 손을 따면 기다렸다는 듯 검은 피가 솟는 것처럼 시원하게.
그래서, 나는 더 늦기 전에 다시 한번 잘 싸는 사람이 되어보려고 한다. 사실 속에 쌓여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앞으로 얼마나 무엇을 더 밀어 넣어야 나올른지 알 수 없다. 나오는 것 역시 구린 게 될지 황금빛이 될지 속단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인생 후반전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자발적 백수를 자처한 몸 아니던가. 마지막 시도를 해볼 만한 타이밍이다.
앞으로 먹은 것과 싼 것을 이곳에 기록해보고자 한다. 독서편식도 심하고 글 쓰는 스타일도 구닥다리라 부끄러울 건 불 보듯 뻔하지만, 성공한다면 꾸준한 노력의 증거로,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근사한 실패의 흔적으로 남겨둘란다. 똥쟁이가 글쟁이 되지 말란 법 없으니까. 먹는 대로 내보내는 그 자연스러운 섭리가 부디 내 글쓰기에도 찾아와 주길 기대한다. 그리고 어느 날, 책상 앞에 진득하게 엉덩이 붙이고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게 된다면 그야말로 대성공. 아, 나는 정말 글 만드는 기계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