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중독자의 가족> 리뷰
우리는 인생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가장 큰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그 고통은 우리의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쇼펜하우어-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생과 고통, 욕망에 관하여 ‘인간 존재 자체가 비극이며 모든 개인은 고통과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패는 인생의 본질적 고통을 드러내는데, 당사자 한 사람에게만 한정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에게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개인의 실패가 가까운 가족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도박중독자의 가족>은 주식 중독에 빠진 가족 때문에 고통받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목에서 독자가 획득할 수 있는 키워드는 ‘도박’과, ‘중독(자)’, ‘가족’, 크게 3가지이다. 제목에서 도박 중독에 빠진 한 사람 때문에 가족 구성원 모두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일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그러면서도 ‘중독은 도박이나 마약에 빠진 사람이 겪는 증상이며, 도박 중독자는 영화 <타짜>, 아니면 카지노나 노름판에서 볼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도박은 자신의 삶과 상관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도박중독자의 가족>은 ‘공동 의존증’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도박 중독의 개념을 주식으로 확장하고, 주식 투자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한 사람 때문에 가족 전체가 고통받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공동 의존증’은 도박 중독자의 가족들이 많이 걸리는 병이다. 도박 중독은 슬롯머신이나 카드, 화투 같은 도박뿐만이 아니다. 여기에 포함되는 주식 중독은 도박 중독의 일종으로, 도박 중독자 중 가장 학력이 높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부류가 해당된다. 도박을 한다고 모두 중독에 빠지지는 않지만 그중 큰돈을 벌어본 사람은 중독되기 더욱 쉽다. 큰돈을 따면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나오는데 이때의 쾌락은 세상 어떤 것보다 강력하다. 뇌는 무의식적으로 이 쾌락에 관한 자기 합리화를 하고 온갖 이유를 대며 중독 행위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렇게 지속된 중독행위는 일상에 지장주며 점점 삶이 무너져간다.
(주식 중독에 관한 개념 설명은 37쪽~42쪽 요약. 만화에 등장하는 심리상담사는 독자의 이해를 돕고 중립적인 방향에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
주인공 남편의 셋째 동생은 주식 투자에 실패하며 주인공의 돈뿐만 아니라 어머니, 둘째 형, 막내 동생 등 가족이 투자한 돈 대부분을 날린다. 주식 시장이 좋지 않아서, 운이 나빠서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손실액을 복구하기 위해 선물, 옵션에 손을 대면서 점점 수렁으로 빠져간다. 계속 빚이 늘어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다. 주인공은 심리상담사의 조언에 따라 돈을 추가로 빌려달라는 셋째의 요구를 무시한다. 주인공의 결정에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은 주인공(며느리)에게 서운해한다. 자신과 가정을 지키면서도 시댁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며느리의 진심은 독자에게만 공유되기 때문에 시어머니는 전혀 알 수도, 알아줄 생각도 없다. 도박중독자의 가족이 느끼는 어려움을 담은 만화이지만 지금까지 나온 작품들과 다른 점이라면 가족 안에서 주어진 역할과 거기에서 비롯된 등장인물의 감정을 보다 입체적으로 표현했다는 데 있다.
만화의 표지에는 주인공과 남편, 자녀가 그려져 있는데 남편의 입 모양과 손동작이 주목할 만하다. 굳게 다문 입과 아내 등에 얹은 팔에서 단호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가정을 지키려는 가장의 역할과 가족을 지키려는 맏형의 역할 사이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하지만 조금 더 가정에 충실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맏형이라는 역할 때문에 어머니와 셋째 동생을 무조건 외면할 수 없다.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양쪽의 상황을 이해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독자에게 더 답답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시어머니는 셋째 아들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을 가진다. 한 가족인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는 아들(남편), 자기 아들을 조종하고 있다고 믿는 며느리에게 서운한 감정을 내비친다. 시어머니의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모습은 며느리와 동일 선상에 서 있는 독자와 심리적인 간극을 만들어내며 생각과 행동의 개선이 필요한 존재가 된다.
남편의 동생이자 시어머니의 아들인 셋째는 주식투자의 실패로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보란 듯이 성공해서 자신을 실패자로 생각하는 가족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을 동시에 가진다. 또 한편으로는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이 마음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만화에 나오는 등장인물 간 갈등은 특히 우리나라 가부장적 문화에서 기인한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서양에서도 주식으로 재산을 날린 사람들이나 주식 중독자가 많이 있겠지만, 이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가족 구성원이 ‘공동 의존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을지는 모르겠다. 며느리의 말을 객관적으로 듣지 않고 마냥 서운하게만 느끼며 자식을 우선하는 모습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을 것이라 추측 가능하다.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가부장적 문화는 대다수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가족의 패러다임으로 작동하며 다양한 형태의 에피소드로 재현된다.
한국예탁결제원이 2023년 12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식 소유자 수 1,416만 명으로 국민 3명에 1명꼴로 주식투자를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 주식 중독은 아주 먼 나라 이야기는 아닌 실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작가는 우리나라 가부장적 패러다임의 부정적인 모습을 지적하기 위해, 주어진 역할 사이에서 갈등하는 등장인물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그리며 메시지를 전달한다.
만약 독자 자신이 며느리의 입장이라면, 남편의 입장이라면, 또는 시어머니나 셋째의 입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현실에서의 입장과 경험, 평소 가지고 있던 철학에 따라 각각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도박중독자의 가족>은 다소 극단적인 상황을 전개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렸다. 결국 그 안에 담긴 문제점과 고민을 작품으로 공론화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