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입사원 채용 서류심의에 참여한 적이 있다. 서류심의에 들어가기 전에 팀원 한 명이 나에게 "팀장님, 요즘 입사지원서는 다들 AI로 써요."라고 귀띔해줬다. 그 말을 듣고 수백 건의 입사지원서를 살펴봤는데 사람이 직접 썼는지 AI가 썼는지 도통 가려낼 수가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입사지원서의 모든 자기소개가 AI로 쓴 글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많은 입사지원자가 AI를 활용해서 입사지원서를 작성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 한 켠에 씁쓸한 기분을 지우기 어려웠다.
인스타나 유튜브 쇼츠를 넘기다 보면 생산성을 높여주는 AI툴 N가지를 소개하는 영상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에게 AI는 무엇을 하든 떼려야 뗄 수 없는 친숙한 도구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직장에서 기획서를 작성하고 보도자료를 쓰는데 도움을 주는 등 생산성을 높여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글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평론가들도 AI로 글을 쓸까?
굉장히 예민하고 민감한 질문이다. 평론가가 AI로 글을 쓴다고 말하자니 스스로 전문성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 같고, AI를 전혀 쓰지 않는다고 말하자니 유행이나 트렌드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AI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장점을 잠깐 살펴보자. 가장 큰 장점은 시간을 단축해 주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산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창의적인 관점이 필요한 영역에서도 효율성이 발휘된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관점을 AI가 제시했을 때 신선함과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실 고백하자면 청탁받은 원고를 AI로 '딱 한 번' 작성한 적이 있다. 여러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원고 마감일을 맞추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평론가로서의 자존심이고 뭐고 간에 마감을 맞추지 못하는 사고만은 피해야 했다. 부득이 AI로 글을 완성하고 제출을 했다. 마감일을 지키고 어찌어찌 그 상황을 넘겼다. 시간이 지나 게재된 글을 보고 나서 얼굴이 화끈해졌다. 조금만 신경 써서 보면 AI로 쓴 글임을 알 수 있었다. 아니, 다른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글을 쓴 나 자신은 안다. 그 이후 다시는 AI로 글을 쓰지 않는다.
평론가로서의 자존심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나 자신이 글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내용을 전혀 소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산출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AI 전문가 안광섭 대표는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 호모 브레인리스>(2025.9.)라는 책에서 AI 시대에 생각하기를 포기한 요즘 사람들에게 '생각을 외주화'하지 말라고 경종을 울린다.
나는 20년 가까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이다. 직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질을 파악하고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등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무수히 연습했다. 덕분에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평론가로 등단할 수 있었다. 평론가가 되어 많은 글을 쓰다 보니 직장생활에서 더욱 논리적으로 사고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연습이 생각의 힘을 길러준 셈이다.
나 자신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같이 활동하는 친한 동료 평론가 두 사람에게 가끔 "나는 왜 이렇게 글을 못 쓸까요?"라며 '내 글 구려병'을 토로하곤 한다. 일전에 그 평론가 두 분에게 AI를 쓰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두 사람 모두, 글을 쓰면서는 쓰지 않고 자료를 수집할 때는 가끔 쓴다고 했다. 두 사람 다 이미 학문의 일정 위치에 다다른 연구자이자 평론가였다.
AI가 나오기 전에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글을 쓰는 연습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자녀가 AI로 글을 쓴다면 절대 못하게 할 것이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스스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출 때 비로소 허용할 생각이다.
물론 AI를 활용하여 글을 쓰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간 단축과 관점의 다양성이라는 장점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AI는 생각하기를 멈추게 만들고 자신에게 독으로 작용할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
맨 앞에 했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평론가도 AI로 글을 쓸까?
어떤 평론가는 AI로 전체 글을 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료를 서치 할 때만 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AI에게 글의 개요나 구조 정도 맡기는 사람도 있겠다. 아니면 나처럼 이제는 AI로 글을 쓰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핑계 삼아 생각하기를 멈추고, 생각하기를 AI에게 외주화 할 때, 잠깐은 편리할지 모르지만 수동적인 삶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생각하는 것은 주체적으로 하고, 부수적인 일을 AI에게 맡긴다면 그래도 좀 낫다. AI에게 끌려다니는 삶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AI,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정말 잘 이용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