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을 기억하며 본 영화 두 편
내가 장국영을 처음으로 본 건 90년대 어느 추석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10살 넘게 많은 사촌 오빠들이 골방에 모여 앉아 보고 있던 영화 속에서 장국영을 처음 봤다. 내가 보기 시작했을 때 영화 속 장국영은 잔뜩 화가 나있었고,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고함을 치거나 울었다. 저 예쁘게 생긴 사람은 왜 저렇게 화가 잔뜩 났을까. 그게 나에게는 장국영의 첫인상이었다.
내가 ‘배우’ 장국영을 좋아하게 된 건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였다. 만화책과 비디오 대여점을 학교만큼 자주 들르던 중학생 때 우연히 고른 영화를 봤을 때였다. 이번에도 영화 속 장국영은 자주 울었다. 그런데 전과는 달랐다. 눈빛이 너무 슬프고 처연했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그의 출연작들을 부지런히 찾아보기 시작했다.
또 몇 년이 흐른 어느 4월, 장국영은 세상을 떠났다. 하필 그날이 만우절이라서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믿지 않았고, 매년 그의 기일이 되면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는 수식어가 꼭 붙는다. 나에게는 어느새 매년 의식처럼 4월 1일을 근처에는 그의 영화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를 처음 알게 된 영화를 볼 때도 있고, 그를 좋아하게 된 영화를 볼 때도 있다. 올해는 어쩌다 보니 둘 다 보게 되었다.
영웅본색
한동안 사촌 오빠들이 어울리지도 않는 라이방을 쓰게 만들었던 바로 그 영화, 영웅본색에서 장국영을 처음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역시 홍콩할매의 나라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총을 저렇게 많이 맞아도 안 죽는구나 생각했었다. 홍콩, 대만이 뭐가 다른 지도 모를 때라서 계속 질문을 하는 바람에 오빠들을 노엽게 만들기도 했었다. 마흔이 훌쩍 넘은 오빠들은 요즘도 가끔 그때 얘기를 하면서 노여워한다.
영웅본색을 ‘제대로’ 다시 본 건 첫회사를 다닐 때였다. 내 멘토를 맡았던 대리님도 장국영의 팬이라서, 매년 만우절 무렵에는 영웅본색을 챙겨본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만우절에 장국영의 다른 영화를 주로 봤기 때문에 영웅본색을 본다는 말에 조금 의아했다. 어른이 돼서 보면 또 다른 느낌인 걸까. 마침 당시에 재개봉했던 영웅본색을 우리는 함께 보러 갔다.
같은 영화라도 언제 누구와 어떤 분위기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날 알았다. 어느 추석에 봤던 그 영웅본색과는 어딘가 다른 느낌이었다. 제목이 헹헹씨우센인 줄 알았던 그 노래 제목이 당년정인 것도 그날 알았다. 영웅본색은 거의 당년정의 긴 뮤직비디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화를 보는 내내 잊을만하면 여러 버전의 당년정이 한 번씩 나온다. 쓸쓸한 버전, 밝은 버전, 오케스트라 버전, 보사노바 버전 등 아주 다양했다.
어른이 돼서 다시 본 영웅본색은 여러모로 놀라웠다. 스토리 라인이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데, 뻔한 이야기를 보면서 내가 이렇게 일희일비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분명히 내 기억에는 주인공이 주윤발이었던 것 같은데(사촌 오빠들 책임이 90% 이상이라고 본다) 실제로는 적룡이 주인공이었다는 것에도 놀랐다.
내가 가장 놀란 부분은 그 영화에서 장국영의 연기가 너무나 어설프다는 거였다. 거친 남자들 사이에서 혼자만 그림체가 달라 보이던, 사슴눈을 한 어린 미남 장국영은 모든 장면에서 숨 막힐 정도로 어색한 연기를 펼친다. 때리는 연기도 맞는 연기도 우는 연기도 소리 지르는 연기도... 그나마 대사가 없는 부분들이 좀 나았다. 다른 영화에서 내가 봐왔던 장국영은 이렇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장국영도 연기력 논란이 있었다는 얘기에 코웃음 쳤던 내가 좀 수줍어지는 그런 연기였다.
이쯤 되면 내가 이 영화를 싫어하는 것 같겠지만, 나는 그 이후로 영웅본색을 종종 본다. 영화 자체도 재미있지만 그렇게 여운이 길거나 우울함이 남지 않게 장국영을 추억할 수 있는 영화라서 보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영웅본색에도 눈물 지뢰는 제법 있다. 적룡과 주윤발이 재회하는 장면이나, 장국영에게 호통치던 주윤발이 총에 맞는 장면은 언제 봐도 억장이 무너진다. 옛날 영화다 보니 아직도 싸우는 씬이나 총격전 부분에서 효과음이 너무 딱콩딱콩 느낌이라서 집중이 깨질 때는 있는데, 그런데도 무슨 매력이 있는 건지 자꾸 보게 된다. 아마 나는 내년이나 내후년 4월 1일 무렵에도 이 영화를 보고 있을 것 같다.
패왕별희
내가 장국영을 좋아하게 된 첫 영화는 너무나 뻔하게도 패왕별희였다. 일본군에게 둘러싸인 인력거 안에서 너무 슬픈 눈빛으로 앉아있던 장국영을 보고, 화면 바깥에 있던 나까지 막막하고 슬픈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그 장면을 보던 순간만큼은 기억이 생생하다. 어른이 되고 나서 중학생 때는 그저 어려웠던 감정선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니, 영화에서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패왕별희에 대한 소개나 다양한 해석과 평론은 넘치도록 많다. 워낙 방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보니 생각할 거리도 많아서일까. 군벌이 장악하던 1924년부터 문화대혁명이 끝난 1970년대까지 아우르는 시대 배경을 가진 영화다 보니 러닝타임도 긴 편인데, 매번 영화의 몰입감에 놀란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끝까지 집중해서 보게 된다. 경극이 전성기였던 시절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나서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에게 조롱받는 장면을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흔들리며 사는 게 저렇게 어려울 수가 있나 싶어서.
영화의 초반, 어린 두지의 손가락 하나를 자르는 장면이나 엄청난 비극을 앞둔 샤오라이즈가 잠깐의 행복을 위해 볼이 터지도록 탕후루를 입에 꾸역꾸역 넣는 장면에는 매번 마음이 아리다. 매년 볼 때마다 다른 부분들이 마음에 남기도 하는데, 올해는 영화 속 장국영과 공리의 관계가 그랬다. 처음에는 증이 압도적으로 컸지만 점점 동정도 동질감도 아닌 어떤 감정이 섞이기 시작하는 애증 관계. 서로에게 침을 뱉거나 누군가 뱉은 침을 닦아주는 기이한 관계. 이런 기이하고 복잡한 관계들이 쌓이면서 영화에는 단순한 악인이나 선인이 아닌, 타인에게 휘둘리면서도 묵묵히 자기 삶을 살아가려는 입체적인 인물들이 남는다.
장국영이 세상을 떠나고 몇 년이 흐른 뒤 친구와 둘이 여행했던 베이징에서 경극을 본 적이 있다. 그냥 베이징까지 왔으니까 경극은 한번 보러 가볼까 하고 극장을 찾았다. 현지인들이 가는 곳에서 그 분위기를 느껴보자고 의기투합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정말 너무나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곳이었다. 영어 안내 조차 드문드문 있고 거의 모든 게 다 중국어로 되어있었다. 중국어 초급인 나, 중급인 친구에게는 난도가 지나치게 높았다. 중국어로 된 리플릿을 살펴본 친구가 더듬더듬 읊어주는 내용을 들어보니 패왕별희와 관련된 경극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극을 보는 내내 패왕별희와 장국영 생각이 나서 가슴이 먹먹했다. 장국영도 데이도 세상에 없어서 더 그렇지 않았을까.
매년 둘 중에 하나를 봐오다가 올해는 두 편을 다 봤다. 순서를 반대로 봤으면 좋았을 텐데. 패왕별희를 나중에 봤더니 아직도 여운이 많이 남는다.
장국영의 시간은 이미 2003년에 멈췄는데 해마다 4월이 되면 그 시간을 억지로 이어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은 차곡차곡 세월을 쌓아가고 있는데, 장국영만 46살에 멈춰있구나 생각하면 새삼 슬퍼진다. 다른 배우들의 요즘 모습을 볼 때처럼, 환갑이 지난 장국영을 보며 나이가 들어도, 머리숱이 줄어도, 살이 좀 붙어도 멋있네 같은 생각은 할 수 조차 없다는 게 쓸쓸했다. 젊고 아름다웠던 모습을 기억하면서 변해가는 모습도 볼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이기적인 팬의 마음으로 생각해봤다. 그래도 장국영을 추억할 수 있는 좋은 영화가 많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 봐야 내년에도 패왕별희와 영웅본색 사이를 맴돌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