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the TV Show

어느 방송작가의 탄생

by 다연

어린 시절, 우리 집 TV는 꺼진 적이 없다. 일을 마친 부모님은 TV를 보다 잠이 들 정도로 TV를, 정확히는 방송을 좋아했다. 드라마든 예능이든 뉴스든 가리지 않았고 계속 켜 있었다. 나 역시 TV가 너무너무 좋았다. 바보상자라고 했는데 정말 바보가 된 것처럼 좋았다.


아무튼, 어릴 때부터 TV를 끼고 살았으니 내가 방송작가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왜 PD가 아니라 작가냐고? 일단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고, 누구 앞에 나서는 게 싫은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스스로 가시밭길을 선택한 셈이었다.


중학생 때 아이돌에 빠졌다. 아이돌이 나오는 프로그램들에 막내작가가 종종 나왔는데, 너무 재밌어 보였다. 그때는 연예인들이랑 일하니까 즐거워 보였다. 지금은 방송에 작가가 나오는 걸 보면 눈물이 난다. 성향차이가 있겠으나, 나는ㄱㄱ 종종 방송에 나오는 제작진들이 안쓰럽다. 아무튼, 내가 하는 프로그램에 좋아하는 아이돌을 출연시키고 잠깐이라도 같이 일하고 싶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때 꿈은 계속 방송작가였고, 대학에 가서도 방송작가였다. 대학도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다. 동기 중 한 명이 휴학 후 상경해 방송작가를 경험하고 학을 떼고 왔다. 작가의 생태를 아주 적나라하게 알려줬다. 그래도 꼭 하고 싶었다.


학교에서 이중전공을 하면서 방송작가 인턴을 하게 됐다. 무급이었지만, 학점을 인정받는 제도였다. 한 달 정도 아침 방송을 경험하게 됐는데, 혼자 서울에 올라가야 했다. 출근 첫날, 노트북을 가져가지 않아 당황했다. 회사에 컴퓨터는 있는 줄 알았다. 다행히 서브 작가에게 여분의 노트북이 있어서 그날은 노트북을 빌려 썼고, 다음날부터 나는 벽돌 같은 노트북을 들고 출근했다.


첫날, 서브작가가 나에게 1시간짜리 영상 프리뷰를 맡겼다. 프리뷰는 영상을 문서화하는 작업이다. 20~30초마다 타임테이블(TC) 체크를 하고 장면과 말을 적는다. 모든 말을 다 적어야 해서 손목이 아작이 난다. 그 프리뷰를 기반으로 쓸만한 장면을 찾는다. 보통 1시간짜리 영상을 프리뷰 하면 평균 2시간 정도 걸린다. 지금은 AI를 활용해 더 짧은 시간 내에 하기도 한다.


나는 그날 1시간짜리 영상을 프리뷰 하는데 5시간이 걸렸다. 민망하지만 당시엔 타자도 많이 느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도시락 때문이었다. 먹는 도시락은 아니고 도시락처럼 사각형의 영상 재생 기계다. 테이프로 찍은 영상을 디지털로 변환해서 주는데, 당시엔 영상 변환할 컴퓨터가 없다며 도시락을 줬다. 당연히 생전 처음 보는 기계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간단히 작동법을 알려주긴 했지만,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말을 적어야 하는데, 말을 놓쳐 다시 앞으로 돌리면 30초가량 앞으로 갔다. 내 맘대로 시간을 조절할 수 없었다. 게다가 코너 특성상 카메라를 숨겨 촬영한 탓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고, 화면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카메라 용어도 몰라 다 풀어서 썼다. 어쨌든 요령이 전혀 없었던 거다. 참고로 지금은 대부분 업체에 맡긴다. 메인 작가가 나의 프리뷰 작업 속도에 경악했지만, 서브 작가는 매우 착했기 때문에 다음에는 더 빨리 부탁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작가님은 보살인 것 같다.


방송날 새벽, 방송국 견학을 시켜주겠다며 나를 여의도에 데려갔다. 방송국이니까 화려할 것 같다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방송국 내부는 아주 엉망이었는데, 여의도에서 상암으로 이사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잘 챙겨줬던 제작진 덕분에 여의도 MBC의 마지막을 보게 됐다.


한 달 동안 인턴 생활을 마치고 나는 다시 고향에 내려와 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졸업식날, 한 프로그램에서 막내 작가가 필요하다며 나를 불렀다. 나는 어떤 프로그램인지도 모르고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출근일은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프로그램은 사라졌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이때부터 업계 현실을 알아봤어야 했는데. 어쨌든 프로그램은 사라졌고, 중간에 붕 뜬 나는 막내 작가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프로그램에 합격했다. 그렇게 방송작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