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방송은 작가들의 무덤이라면서요?
막내작가에서 서브작가로 입봉을 하고 드디어 내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게다가 페이도 올랐는데 주 40만 원, 한 달 160만 원을 받게 됐다. 내 방송이 한 달에 5번 있는 달이면 200만 원까지 받을 때도 있었으니, 정말 아주 조금은 사람답게 살만해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 시작하는 방송작가들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돈이지만, 당시엔 꽤나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페이와는 별개로 나의 멘탈은 부서지다 못해 가루가 된 지 오래였다. 이 시절의 나는 오직 방송을 위해 살았다. 나의 자아는 사라졌고, 방송작가 자아만 남아있었다. 당시 나는 사건사고 코너를 오래 했었는데, 아이템을 위해 항상 어디선가 사건이 일어나길 바랐다. 이왕이면 영상이 있고, 목격자가 많아 인터뷰를 할 수 있어서 방송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사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때는 내가 차도에 뛰어들어서라도 아이템을 만들고 싶었다.
어느 날,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온갖 군데에 수소문을 해 유가족의 연락처를 찾아냈고, 전화를 했다. 유가족을 잘 구슬려 인터뷰 촬영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나는 유가족의 연락처를 찾았단 사실에 기고만장해 있었다. 다른 작가들도 대단하다며 나를 켜세웠다. 이번 방송은 영상도 있고 유가족 인터뷰도 할 거니까 잘 만들어지겠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유가족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다. 몇 초의 침묵이 흘렀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러나 그만둘 순 없었다. 정신을 붙잡고 어찌어찌 전화 인터뷰도 했고, 인터뷰 촬영 일정도 잡았다. 그리고 그 주 방송은 내가 예상한 대로 아주 잘 만들어졌다. 높은 시청률이라는 기쁨도 따라왔다. 하지만, 내가 작가를 그만둔 지금도 그 유가족의 목소리가 아직 내 안에 남아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잊긴 힘들겠지.
재연 드라마 코너에서 연기까지 했다. 본사 부장님이 내 연기를 아주 좋아했다. 이렇게 말하니 대단한 연기를 한 것 같지만, 완전 발연기 그 자체였다. 부장님은 그냥 자신이 주마다 보는 작가가 방송을 위해 희생하는 게 즐거웠던 것 같다. 하루는 고향의 친구가 아침에 러닝머신을 뛰다 방송에 나온 나를 보고 연락한 적도 있었다. 하필 연기하는 코너를 보다니. 아무도 안 볼 줄 알았는데 그걸 또 봤더라. 정말 너무 창피했는데, 방송은 해야 하니까 그냥 했다. 대체 방송이 뭐라고.
나는 작가들의 무덤이라는 아침 방송을 1년 반 가량 하다 그만뒀다. 다른 작가들은 6개월 정도 채우면 그만두는 방송을 3배나 더 한 셈이다. 왜 6개월 만에 그만두는지 알았어야 했는데. 그들은 현명했고, 나는 미련했다. 어쨌든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계속 일을 하다 보니 누가 무슨 말만 해도 짜증이 났고 눈물이 나왔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무조건 욕이었다. 메인작가 욕, 제작사 욕, 방송사 욕 등등. 시작과 끝이 모두 욕이었고, 감정을 토해놓고 나면 조금은 마음이 가벼웠다. 말 그대로 나는 감정을 배설했다.
일주일에 한 번 밤을 새우는 생활을 1년 반을 했다. 몸과 마음이 멀쩡할 리 없었다. 매일 불안 속에서 살고 있었다. 아침마다 아이템을 올려야 했고, 좋은 아이템을 놓치면 안 됐다. 0.01초 차이로 아이템을 뺏고 빼앗겼다. 어느 날,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도저히 아침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이템을 제시간에 못 올렸다. 메인 언니가 미쳤냐고 했다. 메인 언니가 너무 무서웠는데,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아이템을 놓친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한 마음이었다. 나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불쌍한 양가감정이 들었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언제 좋은 아이템이 올라올지 모르니까. 온갖 뉴스는 다 봤고, 온갖 커뮤니티는 다 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잠을 자다가도 카톡 소리에 무조건 깼다. 오히려 전화 벨소리에는 못 일어나도 카톡 소리에는 일어났다. 방송작가를 그만둔 지금도 그렇다. 이 시기 내가 잠을 제대로 잔 날은 방송을 끝낸 당일이었다. 그땐 정말 기절하듯 잠들었다.
아이템은 잡히지 않고, 촬영 나간 피디는 찍어오라는 걸 제대로 찍어오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피디도 달래고 수습했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마음에 한 톨의 여유도 있지 않았다. 피디에게 일방적으로 짜증을 냈다. 그냥 세상이 미웠다. 어느 하나 맘에 드는 게 없었다. 그 시기 나를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건넨다. 아니 근데, 촬영 전 회의하고 촬영 구성안에 중요하다고 대문짝만 하게 체크까지 해놨는데 안 찍어오는 건 뭔데.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라 정말 잘하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이미 지친 지 오래였으나 정신력으로 끌고 갔다. 방송작가가 아닌 친구들은 나의 생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만두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쉽게 그만둘 수가 없었다. 내가 그만두려고 결심을 하면 다른 작가가 그만뒀다. 누가 그만두면, 빈자리를 채울 작가가 올 때까지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을 붙잡혔고, 마지막에는 울면서 제발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커리어든 돈이든 상관없이 일을 더 했다간 죽을 것 같았다. 살고 싶었다. 그렇게 아침 방송이라는 지옥에서 탈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