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의 고민
"나, 곧 어학연수 가."
"저는 제과제빵 배워보기로 했어요."
"다음 주에 면접 보기로 했어."
회사를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지 같이 고민했던 지인들이 갑자기 폭탄선언을 해왔다. 일을 해온 기간이 그리 다르지 않아서 늘 비슷한 고충을 나눌 수 있었던 좋은 친구들인데.
왜인지 모르지만 - 가슴이 찌릿찌릿, 어디서 송곳으로 찌르는 줄 알았다. 나만 제자리에 머물러있는 건 아닌지,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지 불안해지면서 갑자기 하늘이 보랏빛이 되었다. 그래서 차분히 앉아서 고민을 글로 적어보았다. 나도 뭔가를 하긴 해야겠고, 그럼 뭘 하면 좋을까.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일들.
그걸 하면 뭐가 좋을지.
어떤 단점이 있을지.
평소에 자주 했던 생각이라 그런가. 글을 적어나가는 데는 거침이 없었다. 적고 또 적고. 오히려 손이 생각보다 느리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종이에 적어봤더니 머리로만 고민했던 때보다 명확히 보이는 게 있었다.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걸.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고. 모두 현실적인 이유를 들며 선택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지인들도 분명 두려움이 앞섰을 테지만 누구는 공부가 필요했기 때문에, 누구는 새로운 직장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에 도전했을 텐데. 나는 분명한 목표가 없었다. 그런데 뭐라도 해야 한다고 나를 보채기만 했다. 괜히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기만 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내 나름의 속도대로 움직여보기로 했다. 한 달에 하나씩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으로.
뭐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마침 브런치가 생각났다. 잠시 망설이긴 했다. 뚜렷한 결론도 없는 내용이고 드라마틱한 결과도 없는 내용인데 써도 되려나. 뭐라도 하나 성공하고 글을 써야 하는 건 아닌가.
그러다 문득 이런 고민을 하는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기만 하는 그런 사람. 나도 해답을 찾아 헤매고 있기에 그에게 대단한 도움을 줄 순 없겠지만, 비슷한 사람이 여기에도 있다는 사실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 이런 시간들이 나 자신에게도 소중한 경험이 될 거라고 믿기에 내 이야기를 웹툰으로 올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현실의 벽이 높긴 했다. 안 그리던 그림을 그렸더니 선은 너무 삐뚤삐뚤. 심지어 첫 네모를 그릴 때에는 대체 몇 번을 지웠다가 다시 그렸는지 모른다.
또, 퇴근 후엔 소파에 앉아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게 일상이었는데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아서 이야기를 짜고 그림을 그리려니 엉덩이가 꾸물꾸물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3주 차가 되고 4주 차가 되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말에 좀비처럼 일어나 책상으로 가는 내 모습이 신기하기도 재밌기도 했다. 내가 뭔가를 할 수 있구나. 그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앞으로 해보는 일들은 다른 사람 눈에는 하찮아 보일 수도,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끝이 어디에 닿는지는 결과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내 감정을 충실히 따라가보면 나를 더 잘 알 수 있을 거고 또 과정 자체가 나의 무료한 일상에 작은 활력소가 되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될 것 같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는 2018년 12월 30일에 업데이트했고 실제 고민은 그보다 앞서 시작됐다. 그러다 보니 거의 100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고민 오래 하기로는 절대 남부럽지 않을 사람인 듯하다.
앞으로는 머리 아픈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첫 일주일은 어떤 걸 하면 좋을지 고민해보고, 나머지 4주는 실천해볼 생각이다. 몇 달이나 할 수 있을지 그중 몇 번이나 브런치에 공유할 수 있을진 모르지만, 여하튼 재밌었으면 한다.
꼬물꼬물 꾸물꾸물
고민만 한 바가지 -
시작부터 보려면 아래 링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