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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Oct 25. 2023

릴스를 끊기로 했다.

꿈을 릴스로 꾸다니

릴스를 끊기로 했다.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어느 날인가부터 릴스를 즐겨보게 되었다. 짧은 콘텐츠 중에는 내가 흥미 있어하는 내용들도 꽤 있었고 한번 릴스를 보기 시작하면 한두 시간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지곤 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고?’ 하면서도 릴스를 보는 걸 그만두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재미있으니 계속해서 보며 시간을 허비했다.


나는 평소 꿈을 많이 꾼다. 그중엔 글을 쓰거나 생각을 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 꿈들도 꽤 있어서 침대 옆에 꿈 노트와 연필을 두기도 했다. 유난히 피곤한 꿈을 꾸는 날도 있지만, 그런 날 꿈을 되새기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좋기도 했다.


어젯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침대에 누웠다. 지난주 내내 피곤하기도 했고 이번주도 약속들이 계속 있어서 몸도 정신도 굉장히 지쳐있던 날이었다. 쌀쌀한 날씨에 전기장판을 미리 틀어둔 침대로 들어가 이불을 덮고 핸드폰을 만지기 시작했다. 나른함이 기분을 좋게 했지만 잠이 오지는 않았다. 보통의 나라면 책을 읽었겠지만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인스타그램에 들어갔고 릴스를 보기 시작했다. 11시 50분 정도까지 그러고 있었으니 거의 3시간을 넘게 보낸 셈이었다. 핸드폰을 들고 졸기 시작했고 12시쯤 나는 잠에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기 전까지 계속해서 꿈을 꿨다. 다만 평소와 같이 긴 꿈이 아니라 릴스, 숏츠 영상처럼 짧은 무언가가 반복되는 꿈이었다. 손가락을 튕겨 릴스 영상을 넘기듯, 꿈도 그렇게 계속해서 넘어갔다. 같은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계속해서 나오기도 하고 흥미를 끌지 못해 1초도 채 재생되지 못하고 넘어가는 꿈도 있었다.


잠들기 전 본 릴스와 꿈까지 합하면 10시간이 넘게 짧은 영상을 본 듯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한숨도 잠을 자지 못한 것처럼 피곤함이 더 몰려왔다. 부엌으로 가 보리차를 한잔 마시면서 문득 심각성을 느꼈다. 책을 읽다가 새벽녘에 잠이 들어도 그 책이 궁금해 아침부터 책을 펼치는 나였는데, 어쩌다가 이런 짧은 영상에 미쳐서 이런 꿈을 꾸나 싶어졌다.


물론 도움이 되는 내용의 릴스들도 많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보다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생각해 보니 10월이 되어서는 책을 거의 보지 않고 계속 릴스만 봤던 것 같았다. 내 뇌는 10월 한 달 동안 릴스에 빠져 ‘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 뇌는 평소보다 피곤함을 느끼게 되었고 이게 내게는 꽤 스트레스가 된다고 생각했다.


한 글자씩, 한 단어씩, 한 문장씩, 한 문단씩 그렇게 읽어 내려가고 스스로 생각을 하는 걸 좋아하던 나는 이번 한 달 동안 1분도 채 되지 않는 영상들에 빠져 뇌를 자극하고 있었다. SNS를 하는 이상 피드에 노출되는 릴스를 아예 보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찾아보지는 말자’라는 다짐을 하게 됐다. 나는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지, 생각을 지배당하고 싶지 않다.


겨우 영상 몇 개에 이런 생각을 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분명하다. 신문을 읽던 세대가 뉴스를 보는 세대가 되었고, 그 세대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유튜브에 나오는 짧은 요약 영상들을 보다가, 이제 10분도 견디기 힘들어 1분 미만의 짧은 영상들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 난 여전히 아침이면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고도 여러 신문사의 기사를 찾아 읽는다. 그게 한쪽으로 치우 져지지 않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적어도 20년을 그렇게 해왔다. 릴스 하나가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는 건, 난 아직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라 생각하며 오늘 밤엔 책을 읽어야겠다.


표지 이미지 : Pixabay 5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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