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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Mar 26. 2024

39. 소아응급병동.

잠깐이지만 내가 개척했던 텃밭.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늘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있다. 내가 응급실에서 이 환자를 보고 나서 그 다음을 모른다는 것. 그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모른다는 것에 대한 갈망과 콤플렉스가 항상 있었다. 그래서 내가 수련받은 병원에서 응급병동과 응급중환자실을 자체 운영한다는 것이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했고, 소아응급 하면서 소아응급 중환자실과 잠깐이지만 소아응급병동을 보게 되어서 좋았다. 적어도 내가 본 환아의 진료를  남의 손에 안 맡기고 내가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전임의 2년을 마치고 발령받은 병원의 센터장님도 응급병동 운영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다. 그 분도 응급병동을 운영하고 응급의학과가 봐야 할 환아들을 적극적으로 받기 원했다. 이를테면 외상이라든지, 음독, 흡입화상같은.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대부분이었던 센터였고, 병동에 입원시켜서 진료를 이어가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였기도 했다. 사실 그리 어려울 것은 없는데 한 발 내딛어 봤다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일 뿐이었다. 우선은 시작이 반이었다. 병동장으로 가자마자 감투 아닌 감투를 썼다. 병동은 6베드짜리 다인실 하나. 


처음 병동의 기틀을 잡을 때는 내가 주축이 되었다. 입원의 기준을 만들어보고, 입원을 조금씩 시켜 보고, 병동의 운영에 대해서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는지 회의를 했다. 우선 기준은 '단기'입원으로 해결이 가능할만한 환자들. 아무래도 외국의 'observation unit'과 겹치는 개념으로 바로 퇴원시키기는 환아 상태가 좋지 않으나, 다른 과의 전문진료까지 요하는 정도는 아닌 상황인 아이들을 주로 데리고 갔다. 


하루 이틀 입원시켜 수액치료 하고 교정될만한 장염이나 오늘 밤, 내일 새벽의 고비만 잘 넘겨주면 좋아질 것 같은 크룹이나 모세기관지염 아이들. 응급의학과 영역에 더 가까운 외상 환아들, 중등도 위험군 두부 외상인데 아이가 구토를 하고, CT에서는 특별한 소견은 없는데 비해서 증상이 심한 친구들이나 상처가 깊어서 정맥주사 항균제 치료를 하고 경과를 봐야 할 물린 상처가 있는 환자, 할머니 혈압약을 먹었는데 용량이 몸무게에 비해 많은 환아, 이런 환아들이 주로 입원을 했다. 입원 기간이 길어질 경우에는 전과전동을 하였다. 처음부터 입원이 길게 예상되는 환아나 소아 분과 전문 진료가 필요한 경련이나 신생아 패혈증같은 환아들은 배제했다. 


입원시 보호자에게 단기병동이며 전과전동 가능성엗 대해 고지하는 안내문을 만들고, 병동 수간호사님과도 긴밀하게 소통했다. 회진 시간을 일정하게 정해두고 가급적 시간을 벗어나지 않게 스탭들간 노력도 필요했다. 다들 처음 하는 일이다보니 중간중간 잡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분위기가 무슨 일이 생길 때 '하자'는 주의지 '안 하면 안되냐'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고마운 근무환경이었다. 또 응급병동 인턴이 한 명 더 배정되면서 매달 인턴교육을 맡았다. 처음 오더를 내 보고 환자 파악이라는 것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더더욱 교육이 필요했다. 그래야 내가 편하니까. 


환자 파악이라는 말은 어려우니까, 왜 이 환아가 입원했지? 응급실에 왜 왔지? 아, 호흡이 힘들어서 왔구나. 그래서 진단은 모세기관지염이네. 모세기관지염 치료를 하러 올라왔네. 그럼 이 환아는 밤 사이에 호흡이 좋아졌나? 그걸 보려면 임상관찰 기록을 봐야겠지, 포화도는 100, 호흡수는 25. 나쁘지 않네. 산소를 끊어봐도 될 것 같아. 


이런 식으로 말로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쪽을 선호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썰'을 푼다 생각하라고. 왜 입원해서 무슨 치료를 받아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를 말하는 과정에서 임상관찰 기록이 있고, 간호 기록이 있으니 참고를 하고, 응급실에서 했던 검사들이 뭐가 있었고 결과가 어땠나를 보자고. 증상이 뭐가 있어서 무슨 치료를 했고, 지금은 그 때 비해서 증상이 어떤지를 보자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인턴들도 얼어 있다가 눈을 반짝거리면서 며칠 지나면 곧잘 했다. 말로 매번 하는 건 힘드니까 문서로 인계장을 만들어줬다. 언제든 모르는 게 있으면 연락하고, 본인 선에서 잘 모르는 것이 있다면 받아줄테니 바로 넘기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다. 나에게 노티하는 것이 두려우면 안 되니까. 그들이 점차 체계를 갖춰 환아들을 파악하고 제법 의사 티를 내기 시작하는 걸 보는 것도 큰 기쁨이었다. 


병동에서 중요한 것은 응급실에서 하던 것보다 좀 더 꼼꼼한 보존적 치료였다. 환아의 증상에 맞춰서 약을 처방하고, 응급실에서 시행했던 검사들 중 빠진 것이 있었는지, 결과가 안 나왔던 검사가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 그리고 환아의 상태에 따라 추가로 필요한 처치를 하거나 검사를 하는 것도 고려해야 했는데 응급실에서만큼 바로 약이 오거나 검사나 처치가 빠르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감안해야 했다. 항균제를 쓴다면 언제 끊고 언제 경구약제로 바꿔서 퇴원시킬 것인지, 환아의 복통이 점점 심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장중첩증을 염두에 둘 것인지, 영상검사를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이어서 고려해야 했다. 병동을 주로 보시는 선생님들께는 쉽고 익숙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야말로 다른 생태계이기에. 하지만 적응력 만렙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다들 금방 해냈다. 


무엇보다 응급병동 있어서 참 좋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응급의학과 다운 일을 할 때였는데 23년 봄에 수원에서 화재가 크게 난 적이 있었다. 화재로 연기를 흡입한 흡입화상은 무서운 것이 이로 인한 기도의 부종이 진행되면 급격하게 진행되고, 만약 기도삽관이 필요하다면 빠르게 삽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흡입 후 일산화탄소 혈중 농도가 증가한다면 고압산소 치료까지 요할 수 있었다. 다행히 수용한 환아들은 모두 고압산소 치료를 요하거나 삽관이 필요할만큼 호흡곤란이 있지는 않았으나, 일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해있었기에 산소를 투여하며 경과관찰이 필요했다. 응급병동에 환아들을 수용하고 하룻밤 경과를 본 뒤 모두 호전되어 퇴원했는데, 지역사회에 기여했다는 점, 그리고 다른 어느 과에 손벌리지 않고 자체 해결이 가능했다는 점이 뿌듯했다. 


그냥 응급실에 하루 둬도 됐을 아이들 아닌가, 하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응급실의 환경은 변화무쌍하고 아이들이 하룻밤을 보내기에는 썩 쾌적한 공간은 아니며, 응급실의 침상 역시 한정적이기에 빨리 비울 수 있으면 비우는 게 모두를 위해서 좋았다. 두 번째, 중증도 높은 환자는 못 보는 것이 아닌가. 그랬다. 이건 어쩔 수 없는 한계였던 것은 사실이다. 어느 정도 이건 타과의 백업이 되었어야 하는데, 내가 일했던 곳은 중증도 높은 환자를 보는 것은 다소 어려운 편이었다. 소아중환자실이 따로 있지도 않았고, 소아 중환을 전문적으로 보는 인력이 있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제한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세 번째, 소아과와 파이가 겹치지 않는가. 소아과에서도 딱히 하루 이틀 보고 갈 observation unit 수준의 환아를 받고 싶어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응급의학과 영역의 환아들을 응급의학과가 자체해결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럼에도 소아 응급병동이라는 형태는 나름대로 틀을 갖췄고, 응급의학과가 볼 수 있는 저변이 좀 더 넓어졌다. 아마 전국에서 이 병동을 운영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그 곳을 떠나왔지만, 기틀을 잘 잡아서 운영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디 무사히 운영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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