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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Mar 27. 2024

41. 왜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아요?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

병원에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아무래도 '괜찮아요'가 아닐까. 좋아질 거라고, 아이가 많이 아픈 것 같아서 응급실에 왔지만 그래도 사실은 크게 아프지 않고 잠깐의 소동일 뿐이라고, 지나갈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싶을 것이다. 당연하다. 이해한다. 하지만 의사 입장에서 그 말을 쉽게 해줄 수가 없다. 의사는 환자를 보고 난 다음 진단을 내리고 그 병의 자연경과에 대해 설명하고, 그러한 경과로 봤을 때 귀가해서 경구약제 치료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귀가를 시킨다. 


하지만 변수들이 있다. 현재 나타나지 않았지만 추후에 생길 수 있는 가능성들. 예를 들어서 명치부 통증으로 내원한 환자가 치료 후 좋아져서 귀가하되, 오른쪽 아랫배로 통증 부위가 바뀔 시는 충수돌기염을 의심하고 내원해서 CT 등 영상검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하는 것처럼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기에, 절대 모든 것이 완전히 괜찮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설명 및 주의 의무 위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 때 괜찮다고 했잖아요' 같은 원망을 듣는 게 문제가 아니라, 쉽게 괜찮다는 말을 했다가는 내가 법적으로 보호받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소송에 쉽게 노출되는 사회 풍조에서는 항상 생길 수 있는 상황 중 치명적인 상황에 대해서 늘 염두에 두게 하고 경고하는 것은 필수다. 


출근하자마자 2개월, 38도 7부로 발열이 측정되고 타원에서 백혈수 수치가 20000을 넘고, CRP라고 부르는 일명 '염증 수치' 몸 어딘가에서 염증 반응이 일어날 때 올라가는 인자가 2점대가 넘는다고 소견서를 들고 온 아이가 있었다. 컨디션이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열 말고는 콧물이 조금 있고, 다른 동반 증상을 수반하지는 않았고 주변에 호흡기 증상이 있거나 열이 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연령대의 환아는 발열이 있을 때 할 일이 많다. 패혈증과 같은 무서운 병도 겉보기에는 티가 잘 나지 않고, 성인처럼 심각한 세균감염이 있다 하더라도 증상 자체가 발열 외에는 애매모호한 일들이 많다. 그렇기에 검사가 여러가지 필요하고 입원을 시키는 일들이 많은데, 환아의 연령대에서 이미 타원 검사 결과라면(백혈구 15000 이상, CRP 2.0이상) 뇌척수액 검사를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권고되는 상황이었다. 세균성 뇌수막염의 경우 증상 자체도 비특이적이지만, 놓치게 되면 환아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되며, 항균제 자체의 용량도 통상적인 용량에 비해 더 고농도로 써야 하고 항균제 종류도 다르다. 이미 환아에게 필요한 검사들은 정해져 있었다. 보호자들은 처음부터 뇌척수액 검사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반응이었고, 그 검사 하기 싫어서 온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으나 나는 그 대답을 원한다면 잘못 오셨다고 응수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판단이 들어 우리 병원 검사결과를 기다렸다. 백혈구 수치는 23000, CRP는 4점대.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동의서를 받으러 내려갔는데 보호자 둘 다 동의하지 않았다. 저희는 생각하고 온 검사는 기껏해야 혈액검사 정도였지 이건 처음부터 안 할 생각이었다고, 요로감염이면 안 해도 된다고 들었다, 주변에 괜히 검사했다고 후회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고 한다. 이미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는 상황이고, 뇌수막염에 대해서 반드시 배제가 필요한 검사결과임에 대해서, 둘의 치료는 완전히 방향이 다르며 놓치게 되면 치명적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물론 흔하지는 않다는 보호자의 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환아가 적절한 치료가 되지 않아서 나빠진 상황에서 뇌척수액 검사를 하게 될 시 이미 항균제 치료를 하고 있어 결과가 부정확하게 나올 수 있고(배양검사의 경우 특히 항균제 한두번 투여에도 균이 배양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시기에 할 수 있던 검사를 놓치는 것이 아이에게 더 해로우며, 검사가 그리 어렵거나 위험한 것이 아님에 대해 말씀드려도 설득이 되지 않았다. 


왜 의사선생님은 괜찮아질거라는 말씀 한 마디를 해 주지 않아요? 왜 나빠질 거라고만 계속 말씀하시나요?


보호자는 나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나보다. 검사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한 마디를 원했는데, 나는 눈치없이 계속 나빠질 경우에 어쩔거냐는 소리만 해댔으니. 하지만 나는 원하는 말을 해줄 사람이 아니라, 현재 상황에서 최악의 경우까지 모두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요로감염이 대부분인 건 맞지만,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세균성 뇌수막염이고, 현재 아이의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서 검사 안해도 괜찮다는 말씀을 해 드릴 수는 없어요. 저도 이거 안 하면 편합니다. 안 하시겠다는 검사를 제가 억지로 우겨서 할 수는 없지만, 원하시는 대답을 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끝내 검사는 거절했다. 통상적인 용량의 항균제를 시작하고 입원을 진행했다. 요로감염은 확인되었지만, 뇌수막염에 대해서는 완전히 배제하지 못했다. 여전히 나는 괜찮다고 말할 수 없다. 항균제 쓰면 좋아진다고, 입원해서 치료하면 좋아질거라고 말할 수 없다.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고, 나빠지는 상황이 없는지 면밀히 관찰해야 할 것이다. 이후로는 주치의의 몫이다. 경과 기록에 자세한 상황을 남겨두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지만 나는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감히 아직 할 수 없다. 왜 수년간 의사들이 수많은 환자들을 보며 연구하며 만들어낸 가이드라인은 믿지 않고, 의료진도 아닌 본인 주변 이야기들은 덥석덥석 그리들 믿어주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거다. 


나빠졌을 때 왜 그 때 자신들을 더 강력히 설득하지 않았냐고 원망이나 안 하면 모를까. 

찜찜한 마음으로 당분간 경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찾아볼 환아가 이렇게 하나 또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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