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가 남긴 것
바다 깊은 곳에서 오징어는 조용히 태어난다.
사람 눈에는 투명한 작은 점들처럼 보이는 알들.
하지만 그 알 하나하나가, 사실은 하나의 세계다.
대부분의 오징어는 알을 낳고 다시 넓은 바다로 흩어진다.
생존이 먼저인 세계니까.
먹어야 하고, 도망쳐야 하고,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런데 심해의 어떤 오징어들은 조금 다른 선택을 한다.
알을 낳은 뒤 떠나는 대신,
그 자리에 남아 알을 품는다.
엄마 오징어는 알 곁을 떠나지 않는다.
물살이 거칠어지면 몸으로 막아 서고,
알 사이에 먼지가 끼지 않게 천천히 물을 흘려보낸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아이들의 숨길을 열어 주듯,
그 자리를 계속 지킨다.
처음 며칠은 견딜 만하다.
조금 배고픈 정도, 조금 피곤한 정도.
하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기다림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배가 고프다.
힘이 빠진다.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무거운 피로가 쌓인다.
그래도 엄마는 떠나지 않는다.
알을 두고 사냥을 나가는 순간
지금까지 버틴 시간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으니까.
가끔 위험이 다가온다.
낯선 포식자, 거친 물결, 예측할 수 없는 바다의 변덕.
그럴 때마다 엄마 오징어는
남아 있는 힘을 전부 끌어모아 앞으로 나선다.
배가 고파도, 몸이 떨려도,
지금 지키는 것이 자신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본능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빛나던 피부는 점점 빛을 잃고
움직임은 느려지고
몸은 마른다.
하지만 그 눈빛만은 변하지 않는다.
“조금만 더.
부화할 때까지만.”
엄마의 시간은
자신을 위해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오로지 알을 위해 흘러간다.
그리고 마침내,
투명한 막 속에서 작은 생명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할 때,
알이 하나둘 터지고 새끼들이 바다로 흩어질 때,
엄마 오징어의 역할도 조용히 끝난다.
떠나는 쪽은 새끼들이고,
남는 쪽은 엄마다.
자연은 냉정하지만 분명하다.
다음 세대를 위해 한 생을 전부 사용하고
미련 없이 무대 뒤로 물러나는 세계.
아빠 오징어의 삶은 조금 다르다.
바다에서 아빠의 역할은 짧고 선명하다.
만나고, 짝을 이루고, 생명의 씨앗을 남기는 것.
그 순간이 지나가면
자연은 더 이상 그에게 많은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징어 대부분은
단 한 번의 번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생물이다.
아빠 오징어는 영웅도 아니고
특별한 희생자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제 역할을 다하고
조용히 사라질 뿐.
엄마는 지키는 방식으로 끝을 맞고,
아빠는 물러나는 방식으로 끝을 맞는다.
방식은 달라도 방향은 같다.
모두가 다음 세대를 위해
자신의 생을 마지막까지 사용한다는 것.
자연은 잔혹하지만
적어도 목적만큼은 분명하다.
그런 바다를 떠올리다 보면,
나는 자꾸 인간 세상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몇 해 전의 어느 밤이었다.
다리 밑에서 빨간 불과 파란 불이 번갈아 비치던 현장.
긴장과 공포가 엉켜 있던 순간.
그곳에서 한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장 약한 존재를 방패로 삼으려 했다.
어린 딸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부모’라는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릴 수 없었다.
자연은 때로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세계다.
오징어들도 약육강식의 법칙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적어도 자연에는
의도적인 비겁함이 없다.
자신이 살기 위해 새끼를 이용하는 선택은,
자연의 방식이 아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많은 부모들은 오히려 자신의 삶을 접고,
자기 몸을 깎아가며 아이를 지킨다.
그 사실을 나는 안다.
그래서 더 쓰라린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아이를 삶이 아니라 도구로 만들 때가 있다.
감당할 준비도 없이 아이를 낳고,
아이를 짐처럼 여기고,
때로는 돈과 이익을 위해
가장 약한 존재를 수단으로 삼는 선택들.
자연의 잔혹함은 본능이지만,
인간의 잔혹함은 선택이 된다.
오징어 엄마는 굶어가며 알을 지켰고,
인간은 배가 불러도 아이를 방패로 삼을 수 있다.
그 차이가
나는 가끔 너무 무섭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쓴다.
내가 쓰고 있는 소설 속 다리 밑 장면도
결국 그 밤의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자연보다 더 차가워질 수 있는 인간,
그럼에도 다시 따뜻해지려 애쓰는 인간.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매일 선택하며 살아간다.
아이를 가진다는 건
생명을 데려오는 일이 아니라
책임을 들이는 일이라는 것.
부모가 된다는 건
권리가 아니라 약속이라는 것.
오징어의 세계는 잔혹하지만 단순하고,
인간의 세계는 복잡하지만 선택할 수 있다.
오늘도 바다 어딘가에서는
엄마 오징어가 말없이 알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배고픔을 참고, 힘이 빠져도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그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무엇을 지키며 살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아직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다.
처음엔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무거운 방탄복을 입는다.
착한 얼굴만이 아니라,
망가진 얼굴도, 비겁한 얼굴도—
그럼에도 사람이라서 지키기 위해.
자연처럼 본능으로가 아니라,
끝까지 인간답게 선택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