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준비는 전투적으로 진행되었다. 냉동된 닭가슴살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해동하는 동시에 프라이팬에 올려둔 계란을 익혔다. 피곤이 더께처럼 앉은 오른쪽 어깨를 좌우로 돌리며 머리의 물기를 닦아낼 즈음 시침은 8시를 가리켰다. 달걀과 닭가슴살을 접시에 옮겨 담는 여유는 사치였으므로 부엌 싱크대에 기대어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사이 제목을 알지 못하는 팝송이 흘러나왔다. 라디오의 볼륨을 조금 더 높이면 좋겠지만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짝 잃은 양말 한짝을 찾는 거였다.
양말을 찾으며 테이블의 위아래를 살펴 볼 때, 고지서와 노트북, 크고 작은 택배 상자 사이로 토마토가 보였다. 소쿠리에 넉넉하게 담겨 있는 그것은 엄마가 직접 키운 거였다. 며칠 전 상자 가득 보내 온 것을 꺼내두고 손도 대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인식했다. 토마토 사이로 작은 날벌레가 배회하는 것을 보자, 아차 싶은 생각이 일었다. 이삼일 전부터 비위를 거슬리게 하는 고린 냄새가 신경 쓰였는데, 주범은 토마토였던 거다.
난 바구니 안의 토마토를 하나 둘 꺼내 보았다. 가장 아래쪽에서 시크무레한 향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위쪽에 있던 열매의 무게를 못이긴 아래쪽 토마토는 한 부분이 질크러지고 말았다. 난 한쪽 면이 상한 토마토를 집게손으로 잡아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뜩한 과일 쉰내에 반응하는 날벌레가 내 주위에서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마치 상한 토마토가 아직 있는 것처럼, 아니 무르익다 못해 썩어버린 것은 그것만이 아닌 것처럼 주위를 맴도는 것이었다.
난 모른 척 고개를 돌리며 씻지 않은 토마토를 와작 씹었다. 새콤한 맛이 기름졌던 입 안에 개운하게 스몄다. 난 망설이지 않고 반대편을 씹었다. 그 바람에 응축되어있던 토마토 과즙이 옷과 주변으로 튀었다. 내 시선은 건너편 거울로 향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토마토를 먹는 내 입가가 붉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난 손등으로 대충 닦으며 짐을 챙겼다. 피곤해 보이는 안색을 보완하기 위해 화장을 곱게 하는 수고는 촉박한 아침 시간에는 되도 않는 사치였다.
“분칠 좀 하고 다녀라, 넌 얼굴이 밋밋하이 안 꾸미면 손해야.” 엄마는 늘 말했다. 화장을 하고, 구김 없는 옷을 잘 갖춰 입은 엄마는 현관문 앞에서 늘 자신보다 한 뺨 더 높은 위치의 굽을 신고 있었다. 반대편에 귀걸이를 끼우며 ‘아침 챙겨.’라고 말하던 엄마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지 않았다. 하루를 다급하게 시작하기 위해 갖춰야 할 얼굴. 난 엄마의 분칠한 얼굴과 계단을 내려가는 하이힐 굽 소리를 들으며 식탁 위의 식은 토스트를 천천히 먹곤 했다.
엄마는 촉박한 아침 시간에 화장부터 식사 준비까지 모두 해냈지만 난 그보다 30분 더 일찍 일어나도 시간이 없었다. 눈썹은 대충, 입술은 생략 후 자외선 차단제를 바른 뒤 가방 안에 텀블러를 넣고 나서는 게 나의 출근 루틴이었다.
지하철 거울 속 얼굴은 언제 봐도 초라했다. 얇은 입술, 흐릿한 눈썹, 표정 없는 눈. 엄마의 말마따나 세상이 봐주지 않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얼굴이었다. 이 얼굴로 회사 생활을 사람들은 나를 안전한 사람으로 여겼다. 반항하지 않고, 감정에 들뜨지 않으며,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상사에게 반박하지도 않는 사람. 그런 얼굴을 회사에서는 좋아했다. 그러니까, 나는 얼굴로서도 이미 내가 있는 세상에서 타협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황 부장이 회의실 유리벽 너머로 내 쪽을 보며 말했다. “자영 씨, 지난번 시안 말인데. 예쁘긴 한데 좀 힘이 없어. 여자는 예쁜 걸 넘어서, 좀… 살아 있어야 한다고 해야 하나.” 살아 있어야 한다니. 나는 그 말의 뜻을 몰라서 웃는 대신, 메모를 했다. ‘살아 있어야 한다 — 디자인에 생기를 줄 것.’
하지만 진짜 생기 없는 건 디자인이 아니라 내 얼굴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유리문을 나오다, 내 옆얼굴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남의 얼굴 같았다. 피곤한데도 피곤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의 얼굴.
그때였다. 빗방울이 몇 방울 떨어졌고, 바람이 방향을 바꾸듯 길 한쪽 골목이 시야에 들어왔다. 좁은 골목 끝에 ‘속눈썹·네일’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바탕은 벗겨진 나무판, 글씨는 삐뚤었다. 그런데 그 삐뚤림이 묘하게 정직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장미향이 먼저 밀려왔다. 공간은 작았지만 이상하게 고요했다. 소음이 없는 공간은 그 자체로 위압적일 때가 있는데, 이곳은 달랐다. 낡은 벽지 사이로 그림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호랑이였다. 정면을 또렷하게 응시하는 그림. 그런데 이상하게 한쪽 눈썹이 없었다. 나는 그 빈자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게 나같다고 생각했다.
“어서 오세요.”
주인 여자의 목소리가 낮았다. 낮은데 깊었다. 마른 체구에 짙은 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였다.
“지나가다 봤어요.”
“대부분 그렇게 오죠.”
그녀가 웃었다. 눈가에 잔주름이 있었지만 그 잔주름마저도 정돈된 느낌이었다. 나는 괜히 가방끈을 조심스레 고쳐 쥐었다.
“속눈썹 하시러 오셨어요?”
“아니요… 그냥, 뭐랄까.”
“그냥도 괜찮아요. 요즘 사람들은 다 그냥 와요. 그러다 보면 뭘 하고 싶은지 알게 되거든요.”
그녀의 말투는 묘하게 안심을 주었다. 나는 그 말에 끌려 의자에 앉았다.
“눈썹은 어떤 걸로 할까요?”
“그냥 자연스럽게요.”
“자연스러운 건요, 노력 없인 안 돼요. 자연스러워 보이려면 공이 제일 많이 들어가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호랑이 눈썹’이라는 견본을 보여주었다.
“이건 좀 독특한 스타일이에요. 진한데, 너무 세 보이지 않아요. 호랑이 눈썹이라고 불러요.”
“호랑이요?”
“네, 보기만 해도 힘이 나는 눈썹. 자신을 보는 힘이 생겨요. 꼭 해볼래요?”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모르게 ‘힘’이라는 단어에 끌렸다.
눈을 감으니 그녀의 손끝이 이마 위로 스쳤다.
“살짝 따가울 수 있어요.”
그 말과 함께 얇은 바늘이 피부를 스치는 감각이 왔다. 따갑다기보단, 내 안쪽 어딘가를 새기는 기분이었다. “눈썹은 얼굴의 중심이에요. 중심이 흐려지면 마음도 흔들리거든요.”
그녀의 말은 시술 설명이라기보단 인생 조언처럼 들렸다. 얼마쯤의 시간이 흘렀을까.
“다 됐어요.”
그녀가 손거울을 내밀었다. 거울 속의 나는, 나였다. 단지 눈썹이 또렷해졌을 뿐인데, 얼굴의 무게가 달라져 있었다. 놀랍게도 표정이 선명했다.
“예뻐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나는 예쁘다는 말을 듣는 일이 드물었다. 예쁘다는 말은 내게 늘 무언의 조건이 붙어 있었다. ‘예쁘면 좋을 텐데’, ‘조금만 다듬으면 예쁠 텐데’ 같은.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고마워요.”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그 말이 흘러나왔다.
“한 달 후쯤 리터치 받으러 오세요.”
그녀는 계산을 마치며 말했다.
“잉크가 자리를 잡으려면 그때 한 번 더 해야 오래 가요. 리터치를 놓치면 금세 옅어지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단순한 설명 같았지만,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한 번 더 와야 오래 간다.’ 그건 눈썹 이야기였지만, 삶의 이야기 같았다.
밖으로 나오자 비가 그쳤다. 골목의 끝, 편의점 불빛이 희미하게 번졌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 얼굴엔 아직 낯선 강도가 있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마 오늘 처음으로, 내가 내 얼굴을 믿어보기로 한 날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