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세수를 하다가 물거품 사이로 낯선 감촉이 느껴졌다.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들여다봤다. 눈썹 한쪽이 흐릿했다. 손끝으로 조심스레 쓸어내자, 까맣던 선이 희미하게 번졌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자세히 보니, 정말이었다. 호랑이 눈썹의 자취가 한쪽은 거의 지워져 있었다. 반대쪽은 아직 멀쩡했는데, 그게 더 우스웠다. 반쪽짜리 강함이라니. 그렇게라도 대칭을 맞추려는 듯, 남은 눈썹이 괜히 더 진하게 느껴졌다.
나는 드라이어를 멈추고 한참 동안 거울을 들여다봤다. 웃기게도, 그제야 처음으로 내 얼굴을 똑바로 본 것 같았다. 아마 며칠 전부터 이미 옅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걸 보지 못했다. 보기 싫어서였을까, 아니면 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화장은 덧칠할 수 있지만, 자신감은 그렇지 않다. 한 번 번지면 다시는 예전의 선명함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출근길, 유리창마다 내 얼굴이 반사되었다.
“오늘은 어쩐지 피곤해 보이네.”
회사 입구에서 마주친 동료가 인사를 하며 말했다. 그 말에 괜히 손끝이 얼굴로 갔다.
“그런가요?”
하고 웃어 넘겼지만, 웃음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서 나를 훑어보았다. 어느새 눈썹은 더 희미해졌다. 사람 얼굴이란 게 얼마나 눈썹에 달린 존재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눈썹이 흐려지면, 표정도 사라진다. 표정이 사라지면, 말도 힘을 잃는다.
사무실 문을 열자, 팀장이 서류를 내밀었다.
“자영 씨, 이번 시안 말인데, 지난번보다 좀 힘이 빠졌어요.”
힘이 빠졌다는 그 말이 이상하게 정확했다. 눈썹에서 빠진 힘이 그대로 일로 번진 듯했다.
“네, 다시 손볼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손가락이 조금 느렸다. 창밖으로는 봄 햇살이 반쯤 기울어 있었다. 도시의 유리창마다 반사되는 빛이 눈부셨다. 그 눈부심이 마치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퇴근 무렵, 서주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회의 있었죠? 괜찮아요?”
그녀는 언제나 ‘괜찮아요?’라고 묻는 사람이었다. 감정보다 상황을 먼저 짚는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답을 썼다가 지웠다. 괜찮다고 하면 거짓말 같았고, 괜찮지 않다고 하면 너무 약해 보일 것 같았다. 결국 “오늘은 좀 흐리네요”라고 보냈다. ‘흐리네요.’ 그 한 문장에 얼마나 많은 말이 숨어 있었는지, 그녀는 알아차렸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 창문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마치 낯선 사람 같았다. 가짜 눈썹이 내게 준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그 자신감이 사라졌을 때의 허전함이었다. 사람이 어떤 것에 기대 살아갈 때, 그것이 사라지면 자신도 함께 무너진다. 나는 지금, 그 무너짐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세면대 앞에 섰다. 조명을 켜자 한쪽 눈썹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나머지 한쪽도 금세 따라갈 것이다. 나는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다시 그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 두면 어떨까.’ 그 생각이 들자, 가슴이 조금 편해졌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예전엔 그런 시선이 두려워서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봤다. 이제는 그냥 두기로 했다. 보기 싫은 얼굴도 내 얼굴이고, 지워진 눈썹도 내 일부였다.
그날 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요즘 얼굴이 왜 그래?”
“왜요?”
“글쎄, 예전보다 좀 말랐어. 무슨 일 있니?”
“아니요. 그냥, 일이 많아서요.”
엄마는 잠시 말이 없었다가 말했다.
“그래도 얼굴은 잃지 마라.”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얼굴을 잃지 마라.’ 얼굴을 잃는다는 게 뭘까. 나는 그날 밤 내내 그 말을 곱씹었다. 얼굴을 잃는 건 자기 자신을 잃는 일일까, 아니면 세상이 정한 얼굴을 잃는 일일까.
다음 날, 범석에게서 연락이 왔다.
“점심 괜찮아요?”
나는 대답 대신 거울을 봤다. 눈썹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오늘은… 그냥 사무실에서 먹을게요.”
“괜찮아요? 요즘 좀 피곤해 보이네요.”
그의 말에 나는 짧게 웃었다.
“그냥, 리터치를 못해서요.”
그는 무슨 말인지 몰라
“리터치?”
하고 되물었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물컵을 들었다. 물속에 비친 내 얼굴이 흐릿했다. 내가 가장 선명해 보였던 건, 어쩌면 착각의 시절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후가 길었다. 문득, 가게 주인의 말이 생각났다. “간절함이 눈썹이에요.” 그 말이 지금은 조금 다르게 들렸다. 그때는 간절함이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게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알았다. 간절한 사람은 언제나 모자라고, 모자란 사람은 늘 눈치를 본다. 나는 이제, 조금 덜 간절해지기로 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거울이 많은 골목을 지났다. 쇼윈도마다 조명이 켜졌고, 그 불빛이 내 얼굴을 여러 겹으로 쪼갰다. 한쪽 눈썹은 사라졌고, 다른 한쪽은 남아 있었다. 그 얼굴이 마치 반쯤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묘하게, 나쁘지 않았다. 완성되지 않은 얼굴도 괜찮았다. 불완전한 채로 숨 쉬는 사람도 괜찮았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그 길에서, 내 얼굴이 조금은 편해 보였다.
집에 도착해 화장대 앞에 앉았다. 남은 눈썹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워진 것도, 남은 것도 모두 나였다. 그 사실을 인정하자, 마음이 고요해졌다. 나는 손거울을 닫고 불을 껐다. 눈을 감자, 호랑이 그림의 빈 눈썹이 다시 떠올랐다. 이번엔 이상하게 슬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