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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Feb 25. 2024

우리 팀이 폐지되었다.

그래도 팀장이 아니라 참 다행이다.

2023년 12월 14일. 연말 조직개편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속한 팀이 사라졌다.

계속된 경영위기로 조직을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희생양이 된 것이다.

조직 내에서 가장 인원도 적고 비중도 적은 팀이었다. 한동안 외부에서 충원하려는 노력도 있었지만 회사 상황이 너무 안 좋다 보니 결국 충원은 취소되었다. 비중이 적은 건 그 부서의 메인 업무를 하는 팀이 아니라서다. 주목을 덜 받을 뿐이지 결코 중요하지 않다거나 일이 여유롭다는 뜻은 아니다.


팀이 없어졌다는 슬픔보단 팀장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팀이 폐지되고 다른 팀과 통합되었다고 업무가 크게 바뀌진 않는다. 조직의 새로운 방향성과 요구에 기존 업무들을 맞추어가면 된다.

하지만 팀장은 다르다.

팀장에게 팀이 없어진다는 건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말이다. 그동안 해왔던 관리 업무는 완전히 사라지고 팀원들과 동일하게 실무자로서 1인분의 몫을 해내야 한다.

그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늘 보고 받고 대우받으며 살다가 한순간에 지시받고 눈치 보는 입장으로 바뀐다는 건 말할 수 없이 우울하고 어색한 일일 것이다. 

당사자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나 다름없다.


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동기부여와 원동력은 월급과 진급일 것이다.

진급 중에서도 가장 급격한 신분의 변화는 팀장이 되는 것이다. 

팀 운영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이 생긴다. 팀 전체의 방향성을 수립해야 하고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챙겨야 한다. 주요 업무가 실무에서 관리로 바뀌는 것이다.

그럼 자리에서 내려와 다시 팀원이 된다는 건 팀장으로서 가졌던 권위와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 일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월급이 떨어지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충격적인 일이다.

하지만 금수저나 주식왕이 아니라면 아직 공부하고 있는 자녀들을 생각하며 어떻게든 버텨나가기 마련이다.




전사 조직개편 후엔 부문별 조직개편이 이어졌다. 

 10일 후에 팀을 옮겨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동에 대한 의향을 묻는 게 아니고 결정된 사항에 대한 일방적 통보였다.

조직의 변화에 맞춰 팀이 바뀌고 업무가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직원을 단순히 조직의 부속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사전 소통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납득시킬 의무는 없을지 몰라도 충분한 배경 설명과 이해를 구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화가 나면 재떨이를 던지던 시절의 밀실 행정 방식으로 조직개편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바로 두 번째 충격이 이어졌다.

다른 후보자에게는 사전 소통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 후보자의 거취가 잔류로 정해지면서 대신 내가 이동하게 된 것이다.

충격적인 소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담당하게 될 업무가 팀 이동의 이유라고 들었던 신규 업무가 아니고 기존의 업무가 주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이동하기로 한 팀에서 흘러나왔다. 그 일은 모두가 꺼려하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귀찮고 성과 없는 일이다.


희망찬 새해부터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어찌 됐든 회사는 다녀야 하니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수밖에 없다. 업무는 계속 바뀌 조직도 돌고 도는 게 직장생활이니까.

마음을 다잡고 출근해서 점심을 먹은 직후 마지막 통보가 있었다.

내가 다시 팀에 남게 되었다는 것...

이동하기로 했던 팀의 팀원이 예정되었던 부서 이동이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새로운 업무 때문이 아니고 빠지게 될 인원을 메꾸기 위해 이동이 결정되었단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상무님의 의도였고 팀장이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팩트인지 알 수가 없다. 팀장님이 오해하게 하는 것까지가 상무님의 의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상무님과의 면담이 있었고 모든 것이 본인의 잘못이라고 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생각해 봐야 나만 손해다.




이 모든 일이 12월 28일부터 1월 2일 사이에 일어났다. 이렇게 우울한 연말연시가 있었던가.

직장인으로서 살아온 지 어언 20년이 흘렀다.

항상 나의 자리에 감사하며 누가 알아주든 말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왔다고 자부한다.

덕분에 나름 선후배들에게 인정받으며 평탄하게 지내왔고 어느덧 상당한 선임선배가 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니 아무것도 잘못된 것은 없다.

회사에서는 나의 열심과 나의 성과에 따라 나의 진로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상사가 누구인지, 그 상사의 상사가 어떤 사람인지, 그 상사의 상사의 상사의 가치와 철학이 어떠한지에 따라 나의 운명은 결정된다.

그래서 회사는 곧 상사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파도에 몸을 맡기듯 자족하고 감사하며 하루하루 지내야 한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다. 일상에서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기 위한 필수적인 마음가짐이다.

파도가 칠 때마다 가슴 졸이며 스트레스받는다면 화병으로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


폐지된 팀의 G팀장이 휴직을 한다고 한다.

얼마 전 팀장자리에서 물러나고 2주간 사무실을 안 나오면서 방황을 했고 그즈음 집에 안 좋은 일까지 겹치면서 마음을 추슬러야 할 시간은 길어졌다. 한 달이 다 되어서야 실무자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신분의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인원이 대폭 줄어든 팀에서 각자 기존보다 더 많은 업무들을 맡아야 했다.

따로 G 업무분장 얘기를 했다. 팀의 새로운 업무를 내가 지원해야 할 거 같으니 내 기존 업무를 몇 가지 맡으면 좋겠다고. 처음에는 부드러운 분위기였지만 얘기가 평행성을 달리면서 조금씩 갈등이 고조되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당황스러웠다. 난 팀장도 아니고 단지 조직 관점에서 업무분장이 최대한 고르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다음날 오후 G는 휴직을 쓰겠다고 했다.

애가 커서 육아휴직도 없을 텐데 무슨 휴직인가 싶었는데 공황 증상이 있어 상병휴직을 신청한다고 한다.

너무 몰아붙였나 하는 생각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인간적으로야 조금 시간을 주고 실무자로 잘 적응해 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겠지만 현재 팀의 상황상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마음의 여유가 많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G는 곧 휴직을 간다.

그리고 그가 맡기로 했던 몇 가지 일조차 모두 나의 업무가 되어버렸다.




직장에서 자리에 연연하면 견디기 힘들다.

운칠기삼, 아니 운구기일 정도로 리더가 되는 건 나의 능력밖의 일이다.

능력이 기본이 되지만 그 외의 변수가 훨씬 더 크다. 

그래서 자리가 아니라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일의 즐거움, 일의 의미, 일을 통한 성장. (참고도서: 무엇이 성장을 이끄는가)

그것이 핵심이다.

직장에서 스스로 그런 것들을 느끼며 일할 수 있다면 진정한 위너이다.

그러한 것들은 직책이 줄 수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철학과 가치가 기반이 된다.

물론 근무환경도 중요하고 조직분위기도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들에 너무 마음을 쏟지 말자.


리더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나이가 많아도 상관없다.

일이 많아도 상관없다. 


매일매일 마음속에 한 줌만큼의 여유만 갖고 출근하자.

누구에게도 친절함과 미소를 잃지 말자.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미션이라고 생각하고 일하자.

그리고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자.


일요일 저녁. 

자고 일어나면 엄습해 올 월요병에 대비하여 스스로에게 마음의 백신을 투여해 본다.


갑자기 빨리 출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백신을 너무 많이 놨나..

회사에서 찍은 딱따구리의 모습이 왠지 처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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