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카이스트에 재학 중입니다. 사실 카이스트에 진학한 이유가 전적으로 제 ‘자의(自意)’만은 아니었습니다. 과학고를 다니던 시절부터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에 진학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시선을 받아 왔거든요. 그래도 과학고에 진학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만큼은 온전히 제 뜻이었습니다. 그 결정으로 인해 고등학교 3년 동안은, ‘어쩔 수 없는 고통이라면 감내하자’라는 생각으로 지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조기 졸업에 실패했고, 내신도 떨어졌으며, 공들여 준비했던 과학전람회는 전국 대회 무대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이러한 실패가 너무 커다란 산처럼 느껴졌습니다. 선생님들은 “괜찮아, 조기졸업이 끝이 아니야.”라고 위로해 주셨지만, 제게는 ‘실패자’라는 낙인이 더욱 선명해질 뿐이었습니다. 친구들 역시 “이제 끝났네” 라며 혀를 차곤 했지요. 그러나 그 실패들이 오늘날의 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히려 큰 실패를 일찍 경험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기에 지금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시절에는 ‘주어진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저 자신을 많이 몰아붙였습니다. 밤 12시에 독서실에서 나오며, 문득 걸음을 멈추고 눈물을 흘린 적도 있을 정도로요.
우여곡절 끝에 카이스트에 진학하고 보니, 주변 친구들의 이력은 정말 화려했습니다. 일반고 출신으로 국제천문올림피아드 수상에 조기졸업까지 한 친구, 영재고에서 상위 10% 안에 들던 친구, KPF 장학생 등등 ‘천외천(天外天)’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인재들이었죠. 확실히 저보다 훨씬 똑똑해 보였고, 이들이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조차 저마다의 불안과 고민을 안고 있었습니다. 반면, 저보다 성적이 낮았던 친구들은 오히려 더 행복해 보였어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성적이 곧 친구들의 희비를 가르는 가장 큰 잣대였는데, 이제 보니 성적이 전부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천외천’이라는 현실 앞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대부분 영재고나 과학고 출신, 혹은 일반고에서 전교 1~2등을 하던 친구들이라,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적응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또한, 지금까지는 ‘공부를 잘하는 착한 아이’라는 명확한 기준 안에서 살아왔는데, 대학에서는 그런 기준이 더 이상 분명하지 않으니까요.
대학은 고등학교와 참 달랐습니다. 고등학교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주었기에, 그 목표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어느 정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언제나 옳다는 의미는 아니지만요. 반면, 대학은 정말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카이스트의 새내기과정학부 제도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유와 동시에 ‘그럼 뭘 해야 하지?’라는 불안을 더해주었지요.
그래서 입학 초부터 2학년 끝무렵까지 저는 “내가 왜 대학에 왔나?”라는 질문에 답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답을 구하기 위해 공부에 열중하고, 학생회 활동과 해외봉사에도 적극 참여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다른 친구들보다 학점은 낮았을지 모르지만,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학점을 쌓는 일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고민하며 스스로를 탐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해진 길을 걸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지금까지의 실패와 경험들이 제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을요. 저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고,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로웠습니다. 과거의 실패는 그저 하나의 과정일 뿐, 제 정체성을 정의하거나 미래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불안감을 덜어내고 현재의 제 선택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자 주변 사람들과 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가며,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선택한 경험과 방향성은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었고, 앞으로의 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 믿음 덕분에 실패나 실수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제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결국, 최근에서야 저는 ‘변화 가능성’이 곧 제 자신이라는 답을 얻었습니다. 과거의 저를 규정하지 않고, 앞으로의 저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금의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자유와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지요.
어쩌면 누군가는 저를 “자기 합리화에 빠진 사람, 줏대가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게 된 건, 그러한 ‘평가’ 자체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고정되지 않은 존재임을 인정하는 순간 불안감이 사라졌습니다. 학점이나 내신 같은 것들도 결국 대학교나 대한민국 사회가 저를 평가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평가를 바탕으로 직장에 들어가면 또 다른 평가가 이어지고, 그러다 보면 ‘진짜 나’가 아니라 ‘평가된 나’를 진짜로 착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무아(無我)’에 가까운 마음가짐을 얻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와 동일시할 필요가 없고,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존재인 내가 미래를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에 절대적 옳고 그름이 없다는 걸 인정하니,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조금씩 실마리를 찾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카이스트에 있는 제 모습으로 돌아오면, 사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생명과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좀 더 정확히는 ‘사람을 살리는 기술’에 열정을 가졌지요. 의사는 직접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일을 하지만, 연구자는 그 의사에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는 점이 제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합성생물학에 관심이 생겼고, 운이 좋게도 포스텍 IRP 캠프에 참가해 연구자의 꿈을 키웠습니다. CRISPR 관련 연구 내용이 노벨상을 받던 시기, 저 또한 ‘또 다른 사람을 살리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꿈은 한동안 계속될 듯했습니다.
하지만 1학년 때 주변 친구들이 취직을 위해 전산학과나 전기및전자공학부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며 저 역시 흔들렸습니다. 삼성전자, 네카쿠배(네이버·카카오·쿠팡·배달의민족) 등 대기업의 높은 연봉은 갓 대학생이 된 저에게도 매혹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전산학과로 가려고 관련 수업을 들었는데, 결과는 F. 전산학과의 수업 방식과 시험은 저와 너무 맞지 않았습니다. 낙담하기도 했지만, 그 길이 제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때 다시 떠올렸던 꿈이 바로 ‘생명공학자’였습니다. 그래서 ‘바이오및뇌공학과’로 진학해 제가 원하던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수업을 들어 보니 훨씬 더 잘 맞았습니다. 특히 ‘바이오공학개론’을 들으며 공학적 개념을 활용해 사람을 살릴 수 있겠다는 희망과 함께 고취감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이 과정을 통해 제가 스스로 선택한 배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기준이 아닌, 오직 제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으며 배우는 과정이 진정으로 의미 있고 충만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더 나아가, 전자 지식을 활용해 뇌를 연구하는 센서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Neuralink)에 관한 소식을 접하며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뉴럴링크(Neuralink)는 BCI 기술을 활용해 로봇 팔을 움직이거나, 글씨를 쓰는 활동을 시연하며 이 기술의 가능성을 입증했습니다. 이 영상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그 장면이 너무나 경이로워 잠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단지 생각만으로 로봇 팔이 움직이고, 글씨를 쓰는 모습은 마치 공상과학에서나 가능할 것 같았던 미래가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습니다.
https://youtu.be/xeyRDJ15a_E?feature=shared
이 기술의 중심에는 뇌 신호 디코딩과 신호 전달이라는 과정이 있습니다. 예컨대, 사용자가 ‘팔을 움직이고 싶다’고 생각하면 뇌 신호가 칩에 의해 읽히고 해석되어 로봇 팔로 전달되며, 이 과정을 통해 실제 팔을 움직이듯 로봇 팔이 부드럽게 동작하게 됩니다. 마치 사람이 손으로 글씨를 쓰듯, 뇌 신호만으로 글자를 하나씩 써 내려가는 장면은 제가 지니고 있던 기술의 한계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특히 저를 매료시킨 점은 이 기술이 단순히 최첨단 기술을 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몸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를 뇌 신호를 통해 표현하고,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다시 독립적인 삶을 살게 될 가능성. 이러한 비전은 단순한 기술적 성과를 넘어, 자아실현의 도구로 확장된다는 점에서 저를 깊이 감동시켰습니다.
뉴럴링크가 제시한 이 경이로운 기술은 제가 꿈꾸는 생명공학의 비전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뇌라는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술과 생명과학의 결합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도구를 만들고자 하는 저의 열망에 불을 지폈습니다.
젠슨 황(Jensen Huang)의 이야기도 제 꿈을 더욱 구체화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유튜브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https://youtu.be/8Pm2xEViNIo?feature=shared&t=1122
If I were to do it over again right now I would realize that the technology to turn life science to life engineering is upon us and that digital biology will be a field of engineering not a field of science.
지금 다시 시작한다면, 생명과학을 생명공학으로 전환할 기술이 도래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디지털 생물학은 이제 과학이 아닌 공학의 분야가 될 것입니다.
Everybody in the world is now a programmer this is the miracle this is the miracle of artificial intelligence.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프로그래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공지능의 기적입니다.
이 말은 기술과 과학의 결합이 단순히 혁신을 넘어서 인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제 선택을 더욱 확신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맞춤형 의약품(personalized medicine)”이라는 개념은 저에게 기술 개발이 단지 개인의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었습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한 배움의 여정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끊임없이 성찰하게 만들었습니다. 젠슨 황의 비전과 BCI 기술의 가능성은 제가 품었던 생명공학자의 꿈을 더욱 단단히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 저의 최종 꿈은, 언젠가 제 기술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사업체를 꾸리는 것입니다. 그 꿈은 어쩌면 다소 거창해 보일 수도 있고, 앞으로의 삶 속에서 어떻게 바뀌어갈지 아직은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가 스스로 그 방향을 선택했고, 현재의 제 열정과 의지가 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목표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마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배움과 경험 속에서 스스로 선택한 길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깨달았습니다. 제 꿈은 단순히 성공적인 사업체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제가 연구하고 개발한 기술이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더 나아가 인간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저는 ‘오늘의 나’로서 이 활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이 꿈은 제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깨달음, 그리고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저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저를 믿고, 현재의 선택을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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