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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육아'를 통해 내가 얻고 있는 것

by 유정세이스트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난 책육아에 큰 뜻이 있는 엄마는 아니었다.


사실 책을 통해 아기에게 뭘 하고자 하는 것보다는 그냥 아기 책을 사 모으는 것 자체에 흥미가 있었다. 내가 워낙 책을 좋아하고 또 모으는 것을 즐기니, 자연스럽게 아기 책을 사서 모으게 된 것.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괜찮아 보이는 책들을 하나둘씩 구입하기 시작했고, 태어난 후로는 더 열심히 사서 회전 책장 한 개를 다 채우고야 말았다.


생각보다 아기 책이 꽤 재미있어서 그렇게 열심히 사고도 아기에게 보여주는 것보다 내가 읽는 날이 더 많았다. 읽어보고 괜찮은 부분을 아기에게 보여주는 수준, 그게 내가 하고 있는 책육아였다. 아니다, 사실 이건 책육아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 수도 없을 정도였다.


아기가 6개월에 접어들 무렵, 내가 자꾸 책을 읽고 있으니 아기가 신기했는지 책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구강기를 지나고 있다 보니 아기는 책 모서리를 자꾸 빨았다. 침에 흠뻑 젖어 보드북 모서리가 우글거리기 시작했지만 개의치 않고 아기가 하는 대로 내버려뒀다. 그러니 이젠 화려한 색깔을 뽐내는 책 표지를 만져보기도 하고 다소 어설프긴 하지만 책장을 넘기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아기가 책에 관심을 보이니, 무릎에 앉혀 조금씩 읽어주기 시작했다. 6개월 땐 하루에 5권 정도를 읽어주었는데 8개월이 된 지금은 하루에 20권이 넘게 읽어주고 있다.


사실 읽어준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책을 활용해 놀 때가 훨씬 더 많다. 책을 쫙 펼쳐서 아기의 손을 잡고 책장을 넘길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책을 바닥에 두고 빙글빙글 돌려주기도 하고, 책을 도미노처럼 일렬로 세워 넘어뜨리기도 한다. 아기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어찌나 꺄르르 웃는지, 이 작은 아기에게 어떻게 이런 웃음이 나올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아기와 함께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아기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아기의 표정을 읽고, 몸짓을 캐치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육아와 살림에 치였던 내가, 모든 걸 읽고 아기와 함께 책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아기와 적극적으로 교감하며 책을 읽고 책을 활용해 노는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아직도 '책육아'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책육아를 지향하는 유명 인플루언서 엄마들이나 책육아 전문가들이 고수하는 방식을 따라 할 생각은 없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거창하진 않더라도 나만의 방식대로 아기와 함께 책을 읽고 놀면 되지 않을까.


오늘 아침에도 아기와 함께 5권의 책을 읽었다. 귀여운 곰이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워"라고 외치고 다니는 내용의 책이었다. "고마워"라는 지문이 나올 때마다 아기를 꼭 안아주었더니, 신기하게도 나중엔 "고마워"라는 말을 내뱉자마자 아기가 먼저 내 품을 파고들었다. 세수를 시키고 로션을 발라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특유의 로션 향이 아기의 살냄새와 섞여 내 코에 흘러들었다. 우리 아기만이 가진, 포근한 향을 잠시 들마셨다.


아기는 내 콧바람이 간지러웠는지 꺄르르 웃기 시작했다. 그리곤 내 품 안에서 잽싸게 뒤집기를 하더니 이내 근처에 놓아둔 다른 책을 향해 힘차게 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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