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앵커에서 행복한 엄마가 될 그녀가 다시 돌아오길 소망하며
이연실 편집자가 대표로 있는 문학동네의 임프린트 ‘이야기장수’의 책을 좋아한다. 출간되는 책 하나하나가 걸작이다. 특히 이슬아 작가의 책이 그러했다. 가녀장의 시대라는 걸출한 책을 또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이슬아 작가의 메일링 구독을 통해 그 이야기를 먼저 접했던 터라 더 관심이 갔던 것이 사실. 그렇게 이야기장수라는 출판사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인스타그럼 계정까지 팔로우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야기장수에서 업로드한 인스타 피드를 통해 ‘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사실 언젠가부터 뉴스를 멀리하게 됐었다. 마음이 유약한 터라 뉴스에서 아주 사건만 접하더라도 가슴이 철렁했었기 때문. 특히 산재 사고나 아동 학대의 이슈를 접하게 되면 그날 하루는 손이 떨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가슴이 미어지는 사고 앞에서 유약했던 내 마음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 뉴스를 끊었다. 한없이 여린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래서 더더욱 ‘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의 저자이자 JTBC 뉴스룸의 단독 앵커로 활약했던 한민용 기자에 대해 알지 못했다. 처음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 세 글자를 입력했더니, 배가 부른 채로 앵커석에 앉아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으로 뉴스를 진행하는 모습이 보였다. 재킷에 다 잠기지도 않을 정도로 배가 부른 상황. 나도 아이를 품어봤기에 그녀가 얼마나 힘들지 가늠이 됐다. 배가 불러오면서 방광이 압박되면 길게는 한 시간 짧게는 10분에 한번씩 요의가 밀려온다. 그리고 혈액 순환이 잘 되지 않으니 온몸이 저리고,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피곤해진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뉴스라니, 이 시대의 예민한 주제를 다루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보도를 해야 하는 앵커로 활약하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한 생명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고로운 일인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우리 사회가 올바른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이슈를 조명하는 일을 지속하다니….
그녀의 활약상을 접하게 된 후, 나는 곧장 오랫동안 닫아두었던 YES24 앱을 열었다. 아이 책으로 가득한 장바구니에, 그녀가 집필한 ‘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를 담고 곧장 결제까지 마쳤다. 이튿날, 책이 집으로 도착했지만 열어보질 못했다. 복직을 앞두고 해야 할 일이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평일에 아이가 먹을 이유식을 만들어둬야 했고, 엄마인 내가 없더라도 아빠와 이모를 포함한 다른 구성원들이 아이를 잘 돌볼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 ‘이만하면 됐군’하는 생각이 든 다음날 눈을 떠보니 난 회사였고, 가방엔 이 책이 들어 있었다.
그렇게 3주가 흘렀다.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해서 다시 이 생활에 적응하는 데 고박 3주가 걸렸다. 잠시도 쉴 틈 없이 아이를 돌보다가, 갑자기 생긴 점심시간의 여유에 적응이 안 됐다. 황금같은 점심 시간을 집에 설치해둔 캠을 보면서 흘려보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을 시간인데도 공허하게 캠만 들여다보며 여유 시간을 죽였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드디어 먼지만 켜켜이 쌓이고 있던 이 책을 꺼내들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어느새 나는 한민용 앵커의 팬이 되어 있었고, 책 홍보를 위해 그녀가 출연한 모든 유튜브 영상을 찾아서 보고 있었다. 그리고 뉴스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국민들 앞에 섰던 배부를 앵커를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비록 그녀는 새로운 생명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뉴스룸을 떠났지만 나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배부른 앵커가 자리를 지키며, 우리에게 뉴스를 전하는 그 장면을. 그리고 소망할 것이다. 앵커의 자리에서 잠시 물러나 한 아이의 엄마로서 충분한 시간을 보낸 그녀가 다시 앵커석에 앉아 시민을 위한 뉴스를 이어가기를. 시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