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에서 서울까지, 장거리 출퇴근을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천천히 걸어본 적이 없다. 매일 전력 질주가 일상이다. 아침에 출근할 땐 경보 수준이라면, 퇴근할 땐 오후 6시 30분 버스를 타기 위해 있는 힘껏 달려야 한다.
7호선 학동역에 있는 회사에서 오후 6시에 칼같이 퇴근을 하고 냅다 달려 지하철을 타고 고속터미널역으로 가야 한다. 역에서 다시 천안행 고속버스 탑승이 가능한 경부 터미널로 가려면 또 꽤 많이 이동해야 한다. 여유 부리며 천천히 걸었다간 오후 6시 30분에 떠나는 천안행 버스를 탈 수 없다. 그래서 뛰고 또 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하면 사람들이 막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난 숨을 고를 새도 없이 헉헉거리면서 버스에 올라탄다. 그리곤 홈캠 앱을 켠다. 아이가 지금 잘 놀고 있는지, 무슨 문제는 없는지, 밥을 먹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매일 뛰고 또 뛴다는 내 말의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천천히 오면 되잖아. 넘어질라. 천천히 와 괜찮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가 되어보면, 단 5분이라도 아이를 일찍 보려고 뛰게 된다. 넘어지고, 부딪히는 것 따윈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 아이를 조금이라도 일찍 만나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다는 것. 오늘도 엄마가 일하느라 곁에 없어서 미안했다는 말을 건넬 수 있다는 것. 오직 그것만이 내겐 중요하다. 그렇기에 조금의 여유도 없이 타이트하게 돌아가는 버스를 예매해놓곤 있는 힘껏 달리고 달릴 수밖에 없다.
사실 이것 말고 다른 이유도 있다. 서울에서 천안으로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예매해둔 차를 놓치면 그 뒤차 대부분이 거의 매진인 경우가 많다. 자칫 잘못해서 놓쳤다간 심야버스를 타야만 하는 불상사가 생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 터미널까지 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매일 뛰는 일상의 반복.
그러다 보니 신발 밑창이 빠른 속도로 닳고 있다. 복직을 한 지 한 달 반쯤이 흐른 어느 날, 출퇴근길에 거의 매일 신고 다니는 내 운동화에 시선이 닿았다. 휴직 중일 땐 늘 크록스만 신고 다니다가, 이제 회사에도 가야 하니 새로운 운동화 하나쯤 장만해야 되지 않겠냐고 생각하며 샀던 제품이었는데 벌써 밑창이 엄청나게 닳아있었다.
'얼마나 많이 걷고 뛰었으면...벌써 저 운동화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라는 생각에 괜히 스스로가 안쓰러워졌다. 누군가는 한낱 자기 연민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진 모르겠으나, 새 운동화 밑창 닳는 줄도 모르고 오직 날 기다릴 아이만 생각하며 뛰고 뛰었던 내가, 어쩐지 너무 불쌍했다.
사실..워킹맘을 하겠다고 결심한 건 아이를 더 잘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를 돈으로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양육하는 데 많은 돈이 들어가는 건 사실이다. 동화책을 사줄 때도, 교구를 구매할 때도, 장난감을 마련할 때도 모두 '돈'이 필요하다.
집과 차를 사고 난 이후로 매달 나가는 고정비용이 높아진 상태에서 맞벌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남편의 소득만으로는 당장 살아가는 데 문제는 없을 수 있겠지만, 미래가 불투명했다. 더군다나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부부라, 더더욱 조바심이 났다.
게다가 난 욕심 많은 엄마다. 내 아이게에 최고로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 한 철을 입히더라도 좋은 옷을 사주고 싶고, 발달에 도움이 되는 양질의 교구를 마련해 주고 싶은 그런 마음. 이런 내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이지만, 실은 하루하루가 고단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치고 아이의 등원을 위한 가방을 꾸린 후 종종걸음으로 아이 옆으로 가서 미안하다고, 다녀오겠다고 속삭이는 일. 인기척에 아이가 깨서 울기라도 하면 어쩔 줄 몰라 하며 어르고 달래는 일. 겨우 몸을 일으켜 집에서 터미널까지 차로 나를 데려다주는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하는 일. 예상치 못한 사고나 다양한 이유로 차가 밀려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회사로 향해서 머리칼을 휘날리며 뛰는 일... 은 너무 벅차다.
사랑하는 내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가족의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서, 포기할 수 없고 버텨야 하는 상황이지만...워킹맘의 현실은 정말이지 녹록지 않다. 그리고 외롭다.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들이 훨씬 많으니까.
나를 돌보는 순간은 단 1초도 없는데, 늘 아이에게도 가족에게도, 회사에서도 미안함의 연속인 일상.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가 입에 붙어버린 요즘의 일상이 괴롭고 서글프다.
이런 나를 조금이라도 위로해 보고자, 마음속 응어리를 털어내보고자 글을 쓴다. 이렇게라도 풀어내면, 고단하고 외로운 장거리 출퇴근 워킹맘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니 지금이라도 좋으니 할 수만 있다면 워킹맘들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 그 속에서 연대하며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들어주면서 함께 이 시간들을 버텨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