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by 낙화유수

안경은 단순히 시력이 나빠서 쓰는 도구라고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안경은 눈을 고치는 물건이 아니라 세상을 바꿔주는 장치에 더 가깝죠. 안경을 벗으면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변합니다. 간판의 글자는 지워지고, 사람의 표정은 모호해지며, 거리는 마치 모자이크 화면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다시 안경을 쓰는 순간, 세계가 선명하게 바뀝니다. 이는 단순히 시야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갑자기 해상도를 높여 드러나는 경험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제 눈이 나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세상이 우리에게 일부러 저화질로 제공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안경은 사람을 보호하기도 하죠. 흐릿하게 볼 때는 세상이 그리 잔혹하지 않습니다. 얼굴의 결점도 덜 보이고, 사회의 흉터도 희미해집니다. 오히려 안경을 썼을 때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주름, 상처, 절망 같은 것들이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그렇다면 안경은 ‘치유의 도구’가 아니라 ‘고통을 증폭시키는 장치’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왜 스스로 이 고해상도의 현실을 선택할까요? 아마도 아프더라도 현실을 감당하겠다는 용기, 혹은 현실을 직시해야만 살아남는 사회적 압박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이런 상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안경 회사들이 우리 눈을 일부러 흐리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인류가 근시와 난시로 고생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부터 두드러집니다. 광고판과 활자, 값표와 뉴스 자막을 또렷하게 보게 만들기 위해 세상은 의도적으로 우리의 눈을 피곤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안경은 의학의 산물이 아니라, 자본이 설계한 투명한 창문일 수도 있다는 말이죠. 광고판은 흐릿하면 쓸모가 없습니다. 가격표는 또렷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죠? 그래서 결국 우리는 돈을 내고 현실을 ‘구입’합니다. 안경은 어쩌면 거대한 시장이 사람들의 눈 위에 씌운 세금인지도 모릅니다. — 선명함의 대가를 우리는 매일 지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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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쓰고 거울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내 얼굴은 선명해졌지만, 동시에 안경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습죠. 안경은 저를 자유롭게 해주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렌즈라는 감옥’을 씌웁니다. 흥미로운 점은, 안경을 벗을 때 저는 세상에서 도망칠 수 있고, 안경을 쓸 때는 다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라는 사실이죠. 이는 단순한 시각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인듯 보입니다. 흐릿하게 둘 것인지, 또렷하게 감당할 것인지.


이 작은 물건 하나가 삶의 방식까지 결정합니다. 안경을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의 세계는 완전히 다릅니다. 한쪽은 선명한 정보에 압도되고, 다른 한쪽은 흐릿한 안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흐림이야말로 자연이고, 선명함이야말로 인위일지도 모릅니다.


안경의 역사를 조금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들이 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수정구슬을 확대경처럼 사용했고, 중세 유럽에서는 장인들이 작은 글씨를 보기 위해 유리를 깎아 렌즈를 만들었습니다. 안경은 처음부터 ‘현실을 더 잘 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에서 태어난 것이죠!~~ 그러나 무언가를 더 잘 본다는 것은 동시에 더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글자를 선명하게 보게 되면 더 많은 정보를 소비해야 하고, 세상을 또렷하게 보게 되면 더 많은 고통을 감당해야 하죠. 그렇다면 안경은 시력을 보정하는 장치라기보다는, 인간의 욕망과 고통을 동시에 증폭시키는 도구의 상징이죠. 우리는 선명해지고 싶어 하면서도, 그 선명함 때문에 괴로워하며, 여전히 안경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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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매일 쓰고 벗는 행위는 사실 ‘삶을 조절하는 의식’에 가깝다고 볼수있죠!~~ 오늘은 흐릿하게 살고 싶다면 벗으면 됩니다. 오늘은 또렷하게 직시해야 한다면 쓰면 됩니다. 그 단순한 행동 속에 우리의 용기와 회피가 드러납니다. 흥미로운 점은, 안경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이 불편하다고 말하면서도 결코 안경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세상은 ‘선명함을 강요하는 시스템’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시험지도, 계약서도, 스마트폰 화면도 흐릿하게 두면 불리합니다. 결국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선명함의 길을 택합니다.



만약 안경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 보죠? 현실판 "눈먼자들의 도시" 는 아니겠지만요. 모두가 흐릿한 세상에서 산다면 외모 경쟁도 지금처럼 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름도 잡티도 흐릿하게 보이니, 화장품 시장은 지금처럼 크지 않았을 것이구요. 사람들은 ‘잘 안 보이니 대충 넘어가는 관용’ 속에서 살아갔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안경은 우리를 더 까칠하고 더 예민하게 만듭니다. 안경이 없는 세상에서는 오히려 더 둥글둥글한 사회가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안경은 문명의 진보라기보다, 새로운 불평등을 낳은 장치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 안경은 인간을 더 똑똑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더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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