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존재론과 복잡계 과학의 공진화
요즘 과학계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말 중 하나는 **‘예측 불가능성’**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우연이나 무질서를 말하는 게 아니다.
복잡계 과학은 결정되어 있지만 예측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해 말하고,
들뢰즈는 존재란 멈추지 않고 계속 ‘되기’ 속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서로 전혀 다른 영역 같지만,
이 두 흐름은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점에서
깊게 공명하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복잡계 과학: ‘초기조건의 민감성’과 상호작용
20세기 후반, 과학은 단순한 결정론을 넘어서
초기조건의 민감성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거동에 주목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나비효과’다.
처음의 조건이 아주 조금만 달라도,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21세기 복잡계 이론은 행동보다 구성을 중심에 둔다.
수많은 구성 요소들이 서로 강하게 상호작용하며,
전체는 더 이상 부분의 합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
이 고전적인 말은 복잡계 과학 안에서 구체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들뢰즈 존재론: ‘되기’의 반복과 잠재성
들뢰즈는 존재를 고정된 실체가 아닌 계속해서 ‘되기(becoming)’ 중인 흐름으로 본다.
『천 개의 고원』에서 그는 존재의 발생 구조를 다음 여섯 단계로 설명한다.
지층(Strates)
배치물(Agencements)
리좀(Rhizome)
기관 없는 몸체(BwO)
탈영토화(Deterritorialisation)
추상기계(Diagrammes)
존재는 아래에서 위로 자라나며,
의식과 무의식, 현실성과 잠재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차이를 반복하며 구성된다.
그에게 잠재성은 무한하며,
그 발현의 강도에 따라 현실로 드러나기도 하고,
혹은 무의식의 차원에 머무르기도 한다.
존재는 단일 중심으로 수렴되지 않고,
계속해서 다양하게, 강도에 따라 생성된다.
복잡계와 들뢰즈의 공진화: 결정론을 해체하는 잠재성
복잡계 과학과 들뢰즈 존재론은
‘결정되어 있지만 예측할 수 없다’는 세계관에서 만난다.
복잡계는 초기조건과 상호작용에 따라 무한한 결과가 나타나며,
이 과정은 사후에만 관찰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들뢰즈의 존재 역시
무의식적 잠재성이 어떻게 발현될지는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되기’를 반복한다.
> 우리는 어쩌면 세계와 존재의 ‘일부’만을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본다고 믿는 것은 이미 한 번의 ‘되기’ 이후일 수 있다.
존재를 예측하려 하지 말고, 발현을 감각하라
들뢰즈가 말하듯,
존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발현되며,
복잡계가 말하듯,
시스템은 구성요소들의 상호작용으로만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이제 중요한 건
‘무엇이 될까’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세계가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가’를 감각하는 태도이다.
나의 되기, 나의 발현
요즘 나는 **“생각이 나를 바꾼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조용히 오래 붙잡고 있으면,
어느 순간 감정과 뇌 안의 연결이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건 단순히 이해한 것이 아니라,
존재 방식 자체가 달라진 순간이다.
들뢰즈는 말한다.
“존재는 되기다.”
이는 고정된 정체성이 아닌,
상호작용 속에서 반복되는 차이의 생성 과정이다.
나는 이 말을,
‘나와 타자’, ‘나와 사회’, 혹은
감정과 이성, 두려움과 직관 사이에서도 실감한다.
그 충돌이 반복되며 어느 순간,
내 뇌의 시냅스가 새롭게 연결되고,
그때 나는 전에 없던 내가 된다.
발현은 멀리 있지 않다
‘발현’은 거대한 철학이 아니다.
그건 바로 지금 이 순간,
나의 감정과 뇌, 사유 구조 안에서 조용히 생성되고 있다.
우리는 예측하는 존재가 아니라,
발현을 목격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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