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군주제 2편: 엘론 머스크는 누구의 편인가

국경 밖에 선 기술 군주의 위험한 중립

by 크리슈나

들어가며: 편 없는 자, 그가 가장 편한 자


우리는 편을 나눈다.

국가와 진영, 좌우와 위계를 따라 사람들은 소속되고 충돌한다.

하지만 엘론 머스크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는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아니다.

그는 민주주의자도, 독재주의자도 아니다.

그는 자본가인 동시에 자본에 복종하지 않는다.


그는 누군가의 편이 아니라, 모든 편 위에 선 자다.

이 시대, 중간에 설 수 있는 사람은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라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품은 존재다.


그가 편들지 않는 이유: 자기 철학 기반의 주권


머스크의 모든 선택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건 어떤 정부도, 어떤 연맹도, 어떤 윤리적 코드도 그를 구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화성에 ‘지구의 연장선’이 아닌 “자기 문명”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그는 OpenAI에 투자해 놓고, 그것이 “너무 착해졌다”라고 비판하며 자신만의 xAI를 시작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스타링크를 제공했다가,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통신을 끊기도 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도덕적 일관성이 아니다.

전략적 자율성이다.

이런 모습은 기술이 언제부터 각 개인의 철학 위에 놓이게 되었는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는 누구에게 가장 가까운가?


미국 정부

NASA, 국방부, 연방정부는 모두 그와 수십억 달러 규모 계약을 맺고 있다.

미군은 이제 스타링크 없이는 일부 통신과 작전이 불가능할 정도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이익에 항상 협조적이지는 않다.

우크라이나 사례처럼, 그는 미국이 원하는 방향과 다른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중국 정부

Tesla는 상하이에 단독 외국인 소유 공장을 최초로 건설한 기업이다.

그는 대만 문제에 대해 “중국이 관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식의 친중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중국 공산당과 공식적 제휴를 맺지도, 직접 굴복하지도 않는다.


머스크는 누구의 편이 아닌가?


그는 결코 “공공의 편”은 아니다.

그의 AI는 윤리보다 자유를 말하고,

그의 기업은 공공 서비스보다 시장과 기술실험을 중시한다.


그는 말한다.

“나는 인류를 구원하고 싶다.”

하지만 누구의 방식으로?

그의 방식으로.


그의 혁신은 대담하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되는지도 늘 의문으로 남는다.


그럼 그는 누구의 편인가?


정답은 명확하다.


엘론 머스크는 ‘자기 문명’의 편이다.

그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미국도, 중국도,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도구처럼 사용하는 자다.


그는 국경을 초월해 기술로 질서를 재편하고,

자본을 넘어 철학으로 인류를 설계하려 한다.


그가 편드는 건 한쪽 편이 아니라, 게임판 전체다.

그리고 그 판에서 그는 디자이너이자 심판이다.


맺으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그가 어느 나라 출신인지, 어느 당을 지지하는지 묻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가 누구의 룰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그처럼 룰 밖에 있는 자에게 점점 더 많은 권력을 주고 있다.


기술은 중립이 아니다.

기술 설계자가 어디에 서 있느냐가 기술의 방향을 결정한다.


엘론 머스크는 기술의 중립이 아니라, 기술의 주권 그 자체다.


이 글을 덮으며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한 명의 의지와 철학이 너무나 많은 플랫폼과 현실을 좌우할 때, 우리는 그 권력 밖에서 어떤 선택과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그래서 그는 가장 위험하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의’ 게임판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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