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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지혜, 그 오래된 물음과 미래의 길

대전환의 혼돈에서 인류가 추구한 지혜 연구

by DRTK

제6장. 지혜, 그 오래된 물음과 미래의 길

대전환의 혼돈에서 인류가 추구한 지혜 연구



인류가 살아온 역사에서 ‘지혜’라는 개념은 가장 오래된 철학적·윤리적 화두였다. 문명을 막 일구기 시작했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좋은 삶이란 무엇이며, 그 삶을 가능하게 하는 통찰은 어디서 오는지 고민했다. 왕이나 사제처럼 권력과 종교적 권위를 지닌 이들이든, 평범한 백성이든, 더 나은 판단을 하고자 하는 욕망과 불확실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열망은 늘 존재했다. 이러한 지혜의 전통은 서로 다른 문화권, 시대, 그리고 학파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둘러싼 근본적 물음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그리고 그 지향점은 시대마다 조금씩 달랐어도, 불확실성과 고난을 이겨내는 인간 정신의 힘으로서 “지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한결같았다.



6장 1절. 시대별·학파별 지혜에 대한 정의와 그 목적: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고찰


지혜를 둘러싼 논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풍부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네 자신을 알라.”고 강조하며, 무지(無知)의 자각이야말로 참된 지혜의 출발점이라고 보았다. 플라톤은 이데아 세계를 인식하는 철인(哲人)을 지혜의 구현체로 보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모든 덕(德)의 완성에 기여하는 실천적 지혜(Φρόνησις, phronesis) 개념을 깊이 탐구하였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지혜를 “개인적 행복과 공동선 실현을 위한 가장 탁월한 정신적 능력”으로 여겼다. 그들이 말한 지혜는 논리와 사유를 통해 도달되는 높은 경지이면서도, 동시에 개인의 윤리적 삶과 공동체의 질서에 직결되는 실천적 힘이었다.


동양권에서도 지혜는 매우 중요한 주제였다. 유가(儒家) 전통에서 공자는 “인을 실천하고 예(禮)로써 질서를 잡는 것”을 강조하면서, 군자가 지혜를 갖추면 세상에 조화가 깃든다고 역설하였다. 맹자나 순자 역시 사람의 본성과 사회 규범을 논하면서, 바른 마음과 올바른 행동을 이끌어내는 통찰을 지혜라고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통해 무명(無明)에서 벗어나는 것을 지혜의 궁극이라 보았으며, 이 지혜는 모든 존재가 인연으로 얽혀 있다는 공(空)과 연기(緣起)의 이치를 체득하여 중생(衆生) 구제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도가(道家)에서는 무위자연의 원리에 순응하고, 인위적 욕망을 비워내어 자연스러운 ‘도(道)’에 합치되는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고 여겼다.


근대 유럽에 이르러, 이성(理性)을 강조하는 계몽주의 사조가 부상하면서 ‘지혜’보다 ‘합리적 지식’이나 ‘과학적 방법’이 더 관심을 끌었다. 과학혁명을 거치며 인류는 우주나 자연현상을 수학·실증적 방식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했고, 이는 역설적으로 지혜와 학문의 전통을 분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스피노자나 칸트 같은 철학자들은 이성적 인식과 도덕 법칙을 확립하여 지혜의 문제를 재해석했지만, 전통적 의미에서의 “삶의 기술과 통찰”이라는 지혜 개념은 학문 체계의 주류에서 점차 밀려났다.


하지만 어떤 시대나 학파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지혜의 특징이 있다. 첫째, “지혜는 지식 이상의 것”이라는 인식이다. 지식이 단편적인 사실이나 정보를 뜻한다면, 지혜는 그 지식을 맥락 안에서 통합하고 응용하며, 윤리적·정신적·실천적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둘째, “지혜는 인격적 수양과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책이나 강의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지혜가 존재하며, 삶을 직접 체험하고 고난을 이겨내며 깨우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사하게 나타난다. 셋째, “지혜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공동체와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개인이 뛰어난 지식을 가져도, 그것이 사회적·도덕적 선(善)과 연결되지 않으면 ‘참된 지혜’라고 부르기 어렵다는 생각이 오랜 지혜 전통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었다. 특정 학파는 지혜를 ‘초월적 세계(이데아, 도, 깨달음 등)’를 인식하는 영적인 능력으로 간주하기도 했고, 다른 전통은 ‘합리적 사유와 대화 속에서 발견되는 실천적 기준’으로 삼았다. 혹은 ‘내면의 평화와 자족’을 강조하는가 하면, 반대로 ‘사회 개혁과 정의 실현’을 지혜의 최종 목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요컨대 지혜의 지향점은 문화·종교·정치적 맥락에 따라 상이하였으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답한다는 점에서는 상통한다.


그렇다면 지혜를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본질적으로는 “인간이 좋고 행복한 삶을 살고, 동시에 공동체를 번영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안을 찾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혜는 단지 자신만을 위한 이익 추구나 세속적 권력과는 달리, 인생의 보편적 가치와 도덕적 측면을 함께 포함한다. 그래서 지혜롭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을 함께 살피는 시선, 세상 이면을 통찰하는 안목, 자신의 판단이 초래할 결과를 책임지는 용기를 갖추었다는 뜻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지혜는 수많은 학파와 철학자들이 가장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 왔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6장 2절. 이노베이션 플랫폼이 만든 대전환 속에서 인류가 추구한 지혜: 공통점·차이점, 그리고 오늘날 시사점


인류 문명에서 이노베이션 플랫폼이 등장할 때마다, 사회는 단번에 기존 체계가 뒤흔들릴 정도의 대격변을 경험했다. 농업, 산업혁명, 전기, 인터넷 같은 혁신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인공지능 이노베이션 플랫폼은 이전과 달리 ‘지적 능력’ 영역까지 깊숙이 파고든다는 점에서 더 큰 충격이 예상된다. 이러한 대격변 시기마다 인류가 직면했던 불확실성은 각 시대의 여건에 따라 서로 달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 또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기술이 가져온 새로운 힘’을 인간다움과 공동체적 가치로 조화시키려는 공통된 노력과 갈등이 있었다. 아래에서는 각 대전환 시기별로 어떠한 불확실성이 떠올랐고, 인류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지혜를 추구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때로는 지혜보다는 지식과 기술만을 과도하게 추구하여 문제를 심화시키거나, 균형을 잃어버린 사례도 함께 검토해볼 것이다.


(1) 불의 발견과 농업 혁명: 생존 중심 시기의 불확실성과 협력의 지혜


고대 인류가 불을 발견해 활용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시급한 불확실성은 생존 그 자체였다. 야생동물의 위협과 자연환경의 험난함 속에서, 불이 가져다준 온기와 조리는 엄청난 이점이 되었지만, 동시에 화재나 화상 등 위험이 뒤따랐다. 사람들은 불을 잘못 다룰 때 생길 대형 재난과, 불을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느냐에 따른 권력 불균형을 우려해야 했다. 이때 인류가 선택한 지혜는 “공동체 협력과 규범”을 통해 불을 안전하게 관리·공유하는 방식이었다. 단순히 불씨를 기술적으로 유지하는 방법만이 아니라, 불사용에 관한 규칙, 화재 예방, 분쟁 방지 등에 관한 ‘사회적 약속’이 공고해졌고, 이로써 개인의 욕심이 전체를 위협하지 않도록 조정할 수 있었다.


농업 혁명 시기로 넘어가면, 정착 생활과 잉여 생산물이 가능해지면서 불확실성의 양상이 크게 변했다. 농사를 통해 비교적 안정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나 병충해, 수해·가뭄 같은 자연재해가 지속적인 불안 요인이 되었다. 또한, 인구 증가와 사회 조직의 대형화로 계층 구조가 생겨나면서, 소수 지배층이 권력을 독점할 위험이 커지고 사회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런 환경에서 인류가 보여준 지혜는 자연 순환을 깊이 통찰하여 농업 기술을 체계화하는 것이었다. 달력과 관개술, 저장술 등이 발전하고, 축제나 종교 의례를 통해 “공동체적 결속”과 “분배 정의”를 의식적으로 지향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의 일부 사회에서는 지배 집단이 농업 지식을 독점하거나 종교적 권위를 활용해 백성을 통제하면서, 불확실성을 오히려 권력 강화의 수단으로 삼았다. 즉, 지혜가 협력과 조화를 불러오는 데 쓰였지만, 지식(농사법, 달력, 점성학 등)이 특정 세력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치우쳐 악용될 가능성도 함께 존재했다. 결과적으로, 농업 혁명 시기의 인류가 추구한 지혜는 계층별로 나눠져 자연·공동체·도덕적 규범을 통합해 혼란을 관리하려는 모습과, 지식과 권력이 결탁해 사회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극단 모두를 보여주었다.


(2) 산업혁명과 기계화: 급진적 효율 추구와 사회문제, 개혁 지향 지혜의 형성


산업혁명은 증기기관과 기계화, 대량 생산 체계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경제 성장을 가져왔다. 하지만. 불확실성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가파르게 커졌다. 공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도시 인구가 밀집하면서, 농촌 인구가 급격히 이주해 빈민가가 형성되고, 실업·노동 착취·도시 위생 악화 등 복합적 문제가 불거졌다. 사회는 “기계화의 물결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인간 노동은 완전히 기계에 종속되는가.” “하층 계급과 상층 계급의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겠는가.” 같은 질문에 직면했다.


여기에 대한 대응을 살펴보면, 한편으로는 “지식과 과학”을 통해 더 효율적인 생산과 합리적 조직을 추구하려 했다. 기술 발전에 열광한 일부 자본가와 계몽사상가들은 “과학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것”이라 믿으며, 기계와 제도의 합리성만으로 혼란을 해결할 수 있다고 낙관했다. 하지만 실상 노동자의 근로 조건은 열악했고, 아동 노동이나 극단적 빈부 격차라는 사회불안이 만연했다. 이 때문에 등장한 또 다른 흐름은, “사회 개혁과 인권” 측면에서의 지혜였다. 노동조합 운동, 사회주의 사상, 복지 제도의 태동 등은 기계화에 편중된 경제 발전이 초래한 불확실성을 제어하고, 인류가 인간성을 지키며 성장을 지속하려면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결국 산업혁명을 통해 드러난 문제는, 지식(기계 기술, 경제학, 과학 등)이 폭주하면 인간 삶이 황폐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반대로, “노동권 보호”나 “사회적 공정”을 강조하는 지혜적 통찰은 여러 나라에서 법·제도 개선, 공교육·의무교육, 공중보건 시스템 등을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이는 산업혁명이 일으킨 부와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와 윤리”를 세우고자 하는 인류의 집단 지혜였다.


(3) 전기의 발명·확산과 인터넷·스마트폰: 생활 패턴 혁신과 초연결, 그리고 디지털 격차


전기가 상용화되면서, 인류는 24시간 가동되는 현대 도시 문명을 열었다. 공장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전등과 전자기기를 활용하게 되면서, 전기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운영하느냐가 새로운 불확실성의 핵심이 되었다. 전기 사용은 편의성과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였지만, 전력망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대규모 정전이나 안전사고가 생길 수 있었고, 도시와 농촌, 국가 간 전력 보급 격차에 따른 불평등이 심화될 위험도 컸다. 이 시기 인류가 추구한 지혜는 “전기의 안전 법규”나 “도시 인프라 계획”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전기 사용이 가져올 생활방식 변화—야간 생활 문화, 거리 조명, 공장 근무체계 확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이루어졌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가면, 불확실성은 디지털 공간에서 급증한다. 지식·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위정보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워졌다.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개인의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동시에, 사이버 폭력이나 프라이버시 침해, 가짜 뉴스 등의 문제를 키웠다. 기업과 국가가 개인정보와 데이터를 독점·활용하면서, 또 다른 차원의 권력 집중이 일어났다. 이에 대응해 인류는 개방·공유 정신에 기반을 둔 오픈소스 운동, 디지털 윤리, 개인정보 보호법, 사회운동과 시민단체의 감시와 같은 시도를 통해 “디지털 시대의 공공선”을 지키고자 했다. 여기에는 “정보의 홍수에서 옳고 중요한 것을 식별하는 분별력”과 “디지털 권력을 어떻게 분산하고 민주화할 것인지”를 함께 다루는 지혜가 필요했다.


이 두 시기(전기·인터넷)에서 보듯, 지혜가 지식에 치우쳐서 문제를 일으킨 사례도 발견된다. 예컨대, 인터넷 초창기에 “정보의 자유”만 강조하고, 사회적 책임과 윤리 장치를 소홀히 한 결과, 개인정보 침해나 해킹, 포르노·폭력 영상 남발 등 부작용이 한동안 극심했다. 이는 초기의 낙관이 “기술 지식으로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공론장·윤리·규제 프레임”을 지혜롭게 세우려는 노력이 뒤따랐다는 점에서, 어떤 거대 혁신이라도 지식만으로 부족하며 지혜가 필수라는 사실이 재차 확인된다.


(4) 각 대전환 시기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해 인류가 추구한 지혜: 공통점과 차이점


위에서 살핀 여러 시기를 종합하면, 이노베이션 플랫폼이 도래할 때마다 불확실성은 다음과 같은 양상으로 나타났고, 인류가 추구한 지혜는 이에 대응하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1. 불, 농업 혁명 → 생존과 공동체 규범

불확실성: 자연의 위험, 식량 부족, 야생동물 위협, 기후 변동 등

지혜: 협력·규범·의례를 통해 불을 안전하게 공유하고, 농작물 재배를 체계화하여 잉여 생산을 관리.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자 도덕과 종교적 질서를 발전시킴.

차이점: 생존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기술(불, 농사)에 대한 실용 지식이 중요했으나, 동시에 이를 윤리·관습으로 묶어 공동체 안정을 이루려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2. 산업혁명(기계화) → 과학·합리성, 사회개혁

불확실성: 도시화, 노동 착취, 빈부격차, 대량생산에서 비롯된 환경파괴와 사회 갈등

지혜: 과학기술(기계)의 발전에 더해, 노동법·복지·교육 확대 등 윤리·사회제도 혁신을 모색. “지식(기술)”만 강조하면 사회문제가 심해지므로 “인간성·정의”에 기반한 개혁이 요구됨.

차이점: 기술 발전으로 인한 물질적 풍요와 함께 “인간성 회복”을 위한 제도적 노력(노조, 복지국가)이 일어나, 지식과 지혜가 충돌·조화를 동시에 경험했다.


3. 전기·인터넷·스마트폰 → 초연결 사회, 정보 폭발

불확실성: 대규모 인프라 건설과 안전, 정보 과잉, 프라이버시·빅데이터 독점, 가짜뉴스 등

지혜: 디지털 윤리·규범·공유 문화(오픈소스), 공론장 형성, 개인정보 보호 법제화 등을 통해 혼란을 줄이고, 기술을 공공선에 활용.

차이점: 지식(기술) 중심의 낙관이 먼저 앞섰으나, 부작용이 커지자 시민사회·정부가 규범과 제도를 세워가며 지혜의 역할(분별과 책임)을 강조.


각 시기의 공통점은 “새로운 기술이 가져다주는 기회와 위협”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협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인류는 협력·규범·윤리·제도적 보완이라는 지혜적 접근을 통해 불확실성을 완화하려 했다. 차이점이라면, 시대가 발전할수록 기술이 더 복잡해지고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혜가 점차 학제적·세계적·복합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에도 이 교훈은 유효하다. 불확실성은 과거보다 더 거대하고 상호연결적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적 능력마저 대체 또는 증폭할 수 있기에, 부·권력·정보 독점이 극단화되거나, 일자리 재편과 사회 분열이 가속화될 위험이 높다. 즉, 어느 시기보다 “윤리·협력·제도의 지혜”가 많이 필요하고, 동시에 “인공지능이 만들 수 있는 긍정적 혁신을 어떻게 최적으로 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창의적 통찰도 요구된다.



6장 3절. 근현대 이전의 지혜 추구와 근현대의 지식 추구,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에 다시 지혜로의 회귀


근현대 이전 인류가 지혜를 학문과 교육, 철학의 최고 목표로 삼았다는 것은 여러 동서양 문헌과 전통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 유럽, 유가나 불가, 도가 전통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과 “어떻게 공동체를 조화롭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학문의 핵심이었다. 지혜란 곧, 단순 지식이나 기술만이 아니라 인격 수양과 도덕적 가치,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통합적으로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 과학혁명과 계몽주의가 본격화되면서, 인류는 자연현상과 세계를 규명하는 지식(knowledge) 추구에 주력했고, 이것이 물리·화학·생물·의학 등 과학 분야에서 폭발적 발전을 이끌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생산력 증대와 부의 축적, 기계화와 전력 사용, 그리고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이르는 전 세계 식민지 확장 등은, “더 많은 지식을 확보한 집단이 더 강력한 권력과 부를 얻는다”는 등식을 굳히게 했다. 국가 차원에서도 기술·산업·군사 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해 지식·과학·연구를 장려했고, 학교와 대학이 성장하여 과학기술, 실용적 학문을 강조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통적 의미의 지혜—개인의 수양과 사회윤리, 궁극적 가치에 대한 통찰—는 점차 주변부로 밀려났다. “왜 살아야 하는가”보다는 “어떻게 더 정확히, 효율적으로 성과를 낼 것인가”가 근현대 학문·정책의 주된 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시기에 완전히 지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초래한 전쟁과 착취, 빈부격차 문제에 직면하여, 인문·사회사상가들이 윤리와 제도 개혁, 혹은 혁명적 사회 변혁을 주장하기도 했다. 노조운동·복지국가 구상·인권 선언 등은 자본과 기술이 가져다주는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한 형태의 지혜적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현대 전반의 거대 담론은 “과학과 지식의 축적을 통해 세계를 정복하고, 물질적 풍요를 극대화하겠다”는 분위기에 압도된 측면이 크다. 때문에, 인류가 오랫동안 이야기하던 자아실현과 공동체윤리, 궁극적 가치를 향한 ‘지혜’라는 개념은 학문 체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었고, 정치·경제적 결정에서는 성과와 경쟁이 우선 과제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인공지능 시대가 열리면서, 인류가 다시 지혜를 최우선 순위로 삼아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최대·최다’라는 점이다. 과거의 이노베이션 플랫폼들은 주로 인간의 물리적 노동이나 정보 교환 속도를 변화시켰다. 반면, 인공지능은 인간 지적 능력을 보완 혹은 초월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될 만큼, 사고와 판단의 영역에 깊이 침투한다. 인간이 지식이나 데이터 처리를 통해 해결해 왔던 문제를 이제 인공지능이 더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 때, 그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생긴다.


더욱이,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무한에 가까운 속도로 데이터를 분석·학습하며, 인간 개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정보를 다룬다. 이는 과거에 지식 추구로 구현된 성과가 한 단계 더 극대화된 상태이며, 인간이 익혀온 많은 전문 영역(번역·의료·회계·분석 등)을 인공지능이 빠르게 흡수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여기서 불확실성은 기술적 예측 불가성(블랙박스 AI, 편향된 알고리즘, 자율적 학습 결과 등)과 사회·제도·윤리적 측면(데이터 독점, 일자리 재편, 프라이버시 문제)에서 동시에 솟구쳐 오른다. 이처럼 불확실성과 위험이 증폭될수록, 어떤 가치와 목표를 설정하고 누구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할지, 즉 지혜의 역할이 긴요해진다.


근현대 시기에 지식 중심 문화가 뿌리내린 것은, “과학기술이 곧 번영과 진보를 자동으로 약속한다”는 낙관이 사회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했다. 과학·산업화 덕분에 인류의 평균수명과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교통·통신·의료가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기후위기와 전쟁·핵무기, 정보 격차, 감시사회, 경제적 양극화 등이 심각해지면서, 지식과 기술만으로는 인간적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반성이 커졌다. 인공지능 이노베이션 플랫폼은 이 문제를 더 극적으로 보여준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압도적 효율을 내지만, 만약 잘못 설계되거나 악용된다면, 오히려 인간다운 가치가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이 인류 문명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잠재력을 지녔다.”라는 점이 바로 지혜 추구의 필요성을 부각한다. 인공지능이 대량생산·자동화 수준을 뛰어넘어 의사결정과 창작, 조언, 예측 등 지적 영역 전반으로 침투할 때, 인간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절박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지혜를 탐구하며 쌓아온 유산—인간의 존엄, 자유와 책임, 공동체, 윤리와 정의—가 다시금 최전선에서 재조명되어야 함을 뜻한다.


그 결과, 인공지능 시대에 지혜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진다. 인공지능은 지식 추구를 최적화하는 도구이지만, 그 지식의 쓰임새, 방향성과 가치판단을 완결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그리고 그 인간적 의사결정의 기준이 바로 지혜여야 한다. 불확실성이 극도로 확장되었기에, 인간이 기계와 데이터를 제어하거나 협력하는 단계를 넘어, “인간다움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해야 한다. 우리는 근현대의 지식 집중이 낳은 성과(물질적·과학적 진보)와 문제(생태파괴, 비인간적 노동, 전쟁 등)를 모두 반추하면서, 다시금 지혜가 요구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 흐름은 본질적으로, “근현대 이전에 지혜를 학문과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전통”과, “근현대의 지식 과잉 추구가 가져온 부작용”을 통합하는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최대·최다의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지혜 유산을 재발견하고, 동시에 지식사회의 성취(과학·기술·산업·민주주의 제도 등)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즉, 지식만 추구하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지식을 넘어선 지혜”가 어떤 모습으로 가능할지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인공지능 시대에 다시 돌아온 우리의 숙제이자 기회다.


결론적으로, 근현대 이전까지 인류는 지혜를 학문의 가장 높은 목표로 삼았고, 근현대에 이르러 지식 위주의 과학기술 발전이 문명을 도약시켰으나, 그 과정에서 이전 시대에서 추구한 지혜가 우선 하였던 인간의 존엄에 기반을 둔 것들은 뒤로 밀려나는 경향이 있었다. 인간의 인지적 한계까지 극복하려는 거대한 혁신의 인공지능 시대가 가져오는 인류가 처음 마주하는 불확실성들 앞에서, 인류는 지혜를 다시금 인류가 추구해야하는 가장 궁극적인 모목표로 불러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 과거 이노베이션 플랫폼마다 인류가 보여준 협력, 윤리, 제도, 도덕적 성찰, 공공선 추구와 같은 지혜의 흔적을 성찰하면서, 오늘날 이미 시작된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훨씬 더 복합적이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인간 삶의 근본적 가치와 의미를 재정의해야 한다. 그것이 곧 “지식 추구를 넘어 지혜 추구로의 회귀”이며,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불확실성과 위험, 그리고 거대 기회를 인간답게 활용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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