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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세상을 위한 제안

지혜의 균형: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 할 새로운 이상향

by DRTK

제9장.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세상을 위한 제안


지혜의 균형: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 할 새로운 이상향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세상이라는 말은 참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그 의미는 ‘우리’라는 주체를 어떻게 정의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세상’을 어떤 범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이상향을 꿈꿨지만, 그 이상향이 완벽하게 실현된 사례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상향을 논하는 일 자체가 허무하고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견해도 존재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이런 회의적인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계속해서 이상향을 제시하고 그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평가받고 서로를 설득하고 독려하며 합의된 이상향을 향해 함께 나아가야한다. 이 책의 마지막장에서는 인공지능 시대의 이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한다. 이책의 많은 부분에서 이미 부분적으로도 이야기된 것들도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강조하고 싶고 강조되어야할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한다.


가장 먼저 명확히 해야 할 개념은 바로 ‘우리’라는 주체다. 여기서의 ‘우리’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집단이나 이념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고자 하는 평범한 개인 한 명 한 명이다. 문명과 사회, 정치가 등장한 이후, 인간은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종종 상충하는 정체성을 경험해왔다. 때로는 집단의 논리에 개인의 목소리가 묻히기도 했고, 개인의 존엄성이 억압받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말하는 우리를 집단적 이해관계나 이념과 무관하게, 가장 순수하고 보편적인 인간 본연의 개체로 정의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정리할 개념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다. 세상이라는 말을 좁게 생각하면 특정 개인의 욕망이나 제한된 시간과 공간으로 한정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늘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회와 공동체 속에서 필연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삶을 살아간다. 따라서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세상은 단순히 개인의 삶만이 아니라, 그 개인들이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사회와 공동체적 가치, 연대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정의하는 것이 타당하다.



세상과 사회: 구분과 연결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세상'과 '사회'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를 지닌다. '세상'이라는 개념은 보다 포괄적이고 철학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존재 방식과 가치관, 우주와의 관계성까지 아우르는 총체적 의미를 담고 있다. 반면 '사회'는 인간이 구축한 제도와 시스템, 관계의 네트워크로서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다.


세상에 대한 염원은 종종 형이상학적 차원에서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탐색하는 영역이다. 우리는 의미 있는 세상, 이해 가능한 세상,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이 공존하는 세상을 갈망한다. 이는 인간의 실존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 반면 사회에 대한 염원은 더 구체적인 인간 공동체의 작동 방식에 관한 것으로, 정의, 평등, 자유, 안전과 같은 가치들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세상과 사회는 분리될 수 없는 연결성을 지닌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사회를 구성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의 구조는 다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렌즈가 된다. 둘 다 인간의 행복과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욕망에서 비롯되며, 인간 존엄성이라는 핵심 가치를 공유한다.



역사 속 인류의 염원

인류 역사를 들여다보면,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반복되는 염원들이 발견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조화롭고 정의로운 사회(폴리스)를 꿈꿨으며, 동양의 사상가들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세계관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지향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등장했고, 계몽주의 시대에는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사회 질서를 추구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권, 민주주의, 복지, 지속가능성 등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했다.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되었던 염원들 속에서 몇 가지 불변의 패턴이 관찰된다.


첫째, 안전과 생존의 욕구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위협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갈망해왔다. 역사적으로 사회 계약론이 등장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홉스가 말했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서 벗어나 안전을 보장받고자 하는 욕망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기본적인 염원이었다.


둘째, 정의와 공정함에 대한 열망이다. 플라톤부터 롤스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이 정의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켰던 것은 인간이 불공정함에 본능적으로 반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물질적 평등을 넘어, 기회의 평등, 절차적 정의, 능력에 따른 인정 등을 포괄한다.


셋째, 자율성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다. 고대 그리스의 시민 개념에서부터 현대의 인권 개념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되는 가치였다.


넷째, 연결과 소속감에 대한 욕구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 칭했듯, 공동체에 소속되어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다.


다섯째, 초월과 의미에 대한 추구다. 종교와 철학, 예술이 인류 문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던 이유는 인간이 단순한 생존을 넘어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찾고자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행복과 사회적 이상향의 접점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집단적 염원들이 개인이 추구하는 행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인간의 기본적 욕구로 관계성, 초월성, 뿌리내림, 정체성, 준거틀을 제시했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사회적 염원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마슬로우의 욕구 단계 이론 역시 생존(안전), 소속감(연결), 존중(정의와 공정), 자아실현(자율성과 초월)을 인간의 기본 욕구로 규정했다. 개인의 행복 추구가 사회적 염원으로 확장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최근의 행복 연구들은 더욱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하버드 대학의 '인생 발달 연구'와 같은 장기적 연구에서는 행복의 핵심 요소로 의미 있는 관계, 목적 의식, 성장 경험이 중요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는 단순한 쾌락이나 물질적 풍요가 아닌, 더 깊은 차원의 만족과 연결된다.


행복, 인간다움, 존엄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인간다움이란 단순히 생물학적 특성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차원의 욕구와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존엄성은 이러한 인간다움이 존중받고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말한다. 결국 행복은 인간다움이 온전히 발현되고 존엄성이 보장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다움과 존엄성의 재정의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간다움'의 개념 자체가 도전받고 있다. 과거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지적 능력, 창의성, 감정 이해 등이 인공지능에 의해 모방되거나 심지어 초월되는 상황에서, 과연 인간만의 고유한 가치는 무엇인지 재고해야 할 시점이다.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인간다움의 정의는 단순한 기능적 우월성에서 벗어나 '관계의 질'과 '체험의 깊이', 그리고 '의미 부여 능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정보 처리와 패턴 인식에서 뛰어나지만, 직접적인 체험을 통한 깊은 이해와 공감, 그리고 가치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이는 위험이자 기회다. 위험한 측면에서 보자면, 인간의 가치가 기능적 효율성이나 경제적 생산성으로만 평가될 경우, 인공지능에 '대체 가능한' 인간은 점차 소외될 수 있다. 이미 일부 직업군이 자동화로 인해 사라지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닌 존재 의미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기회의 측면에서 보자면, 인공지능이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작업을 대신함으로써 인간은 더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역설적으로 더 인간다운 삶, 즉 자아실현과 성장, 깊은 관계 형성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존엄성의 개념 역시 재고되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존엄성은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에 크게 의존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점점 더 많은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상황에서, 존엄성은 이제 '알고리즘에 의한 결정에 대한 이해와 거부할 권리', '개인 데이터의 주권', '디지털 환경에서의 프라이버시' 등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흥미로운 연구 사례로, 옥스퍼드의 인간중심 AI 연구소(Human-Centered AI)는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존엄성을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 '참여적 설계'(Participatory Design), '가치 정렬'(Value Alignment) 등의 개념과 연결시키고 있다. 이는 기술 발전이 인간의 가치와 정렬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보편적 행복과 존엄성 구현 방안

인공지능 시대에 모든 인간의 행복과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기술 접근성의 민주화'다. 인공지능의 혜택이 소수에게만 집중된다면,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다. 따라서 교육, 의료, 법률 등 기본적 서비스에 대한 인공지능 기반 접근성을 모든 시민에게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핀란드의 '모두를 위한 AI'(AI for All) 프로그램은 이런 방향의 모범 사례로, 전국민을 대상으로 기초적인 AI 리터러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둘째, '인간-기계 협업 모델의 개발'이다.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고 보완하는 방향으로 인공지능을 설계해야 한다. 이는 '증강 지능'(Augmented Intelligence) 개념으로, 의료 분야에서 의사의 진단을 보조하거나 교육 분야에서 개인화된 학습 경로를 제공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미 구현되고 있다.


셋째, '알고리즘 윤리와 거버넌스의 확립'이다. 인공지능 시스템이 내리는 결정이 공정하고 투명하며, 인간의 가치와 일치하도록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EU의 '인공지능법'(AI Act)과 같은 규제 프레임워크가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고위험 AI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엄격한 요구사항을 포함한다.


넷째, '새로운 사회안전망의 구축'이다.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변화에 대응하여, 기본소득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 안전망, 평생학습 체계, 직업 전환 지원 등이 필요하다. 현재 진행 중인 여러 기본소득 실험(핀란드, 캐나다 온타리오 등)의 결과는 경제적 불안정성 감소, 정신건강 개선, 지역사회 참여 증가 등 긍정적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다섯째, '인간 고유의 가치 영역 강화'다. 공감, 창의성, 윤리적 판단, 문화적 이해 등 인공지능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영역에서 인간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교육과 문화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싱가포르의 'SkillsFuture' 이니셔티브는 이런 방향에서 미래 직업에 필요한 인간 고유의 역량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불완전하지만 추구해야 할 이상향

완벽한 유토피아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이상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이상향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질 수 있다.

'인간중심 기술 생태계'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가치와 필요를 중심으로 설계되고, 인간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효율성이 아닌, 기술이 인간의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는 새로운 지표와 프레임워크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포용적 번영'이란 경제적 풍요가 소수에게 집중되지 않고 모든 시민이 기본적 필요와 존엄성을 보장받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기술 발전의 혜택이 광범위하게 공유되는 메커니즘, 예를 들어 '데이터 배당'(Data Dividend)이나 '기술세'(Tech Tax) 등의 혁신적 접근을 통해 가능할 수 있다.


'공동체적 개인주의'라는 개념은 개인의 자율성과 독특성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체와의 연결과 상호의존성을 인식하는 균형 잡힌 관점이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초연결성으로 인해 개인과 공동체의 경계가 더욱 유동적이 되며, 이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계약과 윤리를 요구한다.


'지속가능한 공존'은 인간과 기술, 그리고 자연환경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인공지능이 기후변화, 자원 고갈 등의 환경 문제 해결에 기여하면서도, 동시에 자체적인 생태적 발자국(에너지 소비 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지혜의 역할: 인공지능 시대의 나침반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지혜'다. 지식과 정보의 폭발적 증가, 기술의 가속화된 발전 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안내할 수 있는 나침반이다. 그것이 바로 지혜의 역할이다.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와는 다르다. 지식이 '무엇'에 관한 것이라면, 지혜는 '왜'와 '어떻게'에 관한 것이다. 정보기술과 인공지능은 지식의 양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켰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무엇을 위해 사용할지에 대한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지혜에 달려 있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에 지혜가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혜는 윤리적 판단의 기초다.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분석과 예측이 아무리 정확하더라도, 그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른지, 인간의 가치와 일치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지혜에 달려있다. 예를 들어, 효율성만을 추구한다면 특정 사회 집단에 대한 차별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알고리즘도 '최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혜는 우리가 효율성 외에도 공정성, 포용성 등의 가치를 고려하도록 안내한다.


둘째, 지혜는 통합적 사고를 가능케 한다. 인공지능은 특정 도메인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이지만,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통합적 사고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기술, 경제, 사회, 문화, 환경 등 다양한 차원을 연결하여 전체 그림을 보는 능력, 즉 시스템 사고(Systems Thinking)는 지혜의 핵심 요소다.


셋째, 지혜는 불확실성 속에서의 판단을 돕는다. 인공지능 시대는 전례 없는 속도로 변화하며, 이는 높은 불확실성을 수반한다. 완전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도 최선의 판단을 내리고, 때로는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함 역시 지혜의 일부다.


넷째, 지혜는 목적과 의미를 부여한다. 기술이 '어떻게'에 관한 것이라면, 지혜는 '왜'에 관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의 삶과 사회에 궁극적인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역할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술 발전이 가속화될수록 지혜의 필요성도 함께 증가했다. 원자력의 발견은 에너지 혁명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핵무기라는 위협도 초래했다. 이때 인류를 파멸로부터 구한 것은 과학적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지혜였다.


인공지능 역시 마찬가지다. 이 기술은 인류에게 전례 없는 번영과 진보를 가져올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 감시 체제, 자율성 침해 등의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이중성 속에서 올바른 방향을 선택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지혜의 역할이다.


결국 인공지능 시대의 진정한 이상향은 기술과 지혜가 균형을 이루는 세상이라 할 수 있다. 기술은 우리의 능력을 확장하고, 지혜는 그 방향을 안내한다. 이 둘의 조화 속에서 우리는 인간다움과 존엄성을 보존하면서도, 기술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혜의 시대'가 의미하는 바다. 단순히 인공지능이 발전한 시대가 아니라, 그 발전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인간의 지혜가 중심이 되는 시대. 그것이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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