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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 Estelle Oct 22. 2023

엄마와 거리두기

[조현병 환자 가족의 이야기] 


엄마 : 왜 일이 집중이 안 되는 거야?

나 : 모르겠어. 가슴이 너무 뛰고 우울하고 축 쳐져. 

엄마 : 일이 힘들어서 그런 거야?

나 : 솔직히 말하면 엄마가 힘들어하는 날, 나도 너무 힘들어


엄마 기억나? 내가 처음으로 엄마에게 우울함을 토로했던 날. 그렇게 밝은 내가 어느 날부터 없이 우울함에 휩싸였어. 일이 힘들겠거니 싶었지만 우울함은 장기간 지속됐어. 그런데 내가 우울함을 유독 더 느낀 날을 일기에 적어나가다 보니 엄마가 의욕이 제일 없는 날 내가 우울함이 심각해지더라고. 마치 엄마의 기분을 내가 따라가는 것처럼 말이야. 엄마가 기분이 좀 나아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엄마가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12시간 이상을 눈 풀린 채로 있을 땐 우울함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어.


이대로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정신의학과를 방문했어. 불안감 척도 검사, 우울 검사 등을 하고 주치의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눈물이 쉴 새 없이 나왔어. 말을 하는 내내 주치의 분은 내가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꼽으셨고, 그 부분이 나의 마음을 더 찢어놨어. 내가 나의 우울함의 원인을 마주해서였던 것 같아.


"엄마와 마음 거리를 두세요"


내가 장녀이기에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내가 엄마에게 감정적으로 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어. 나도 엄마 자식 맞는구나 싶었지. 그런데 아직도 엄마에게서 감정적으로 멀어지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대학 졸업하고 반듯하게 직장 생활하는 어른인데 엄마에게서 떨어지는 아직 쉽지 않아. 아직도 엄마에게 기대고 싶은 딸인가 봐. 


엄마, 이럴 때면 조현병이 참 무서우면서 화나는 질환인 것 같아. 물론 모든 질환들이 발생하면 힘들지만, 조현병은 환자 자신과 그 가족들 모두를 우울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 그렇다고 당장 세상에 호소할 수도 없어. 포털사이트에 조현병을 검색하면 아직도 '조현병이 아니고 정신병이 맞음' '그냥 정신병' '왜 사냐' 등의 반응이 많으니 말이야. 


아무튼 엄마 나 많이 힘들어. 그래서 좀 더 거리를 둘게. 그렇지만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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