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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마치며

중년백수 일기

by 일로

오지 않을 것 같던 추석 연휴의 마지막날 저녁이다.

아내와 전을 데우고 남은 과일들로 샐러드를 만들어 맥주를 마시면서 연휴를 갈무리했다.

오늘은 가로수길에 갔다가 우연히 골목에서 "조우"란 플래그쉽 스토어를 발견해, 이쁜 가을 옷들을

40% 할인 가격에 샀다. 다섯 벌을 큰 딸이 준 50만 원으로 살 수 있어서 더 즐거웠던 것 같다.

어제는 "어쩔수가없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졸았다. 그 덕에 시간이 빨리 갔다.


이번 추석 음식은 아내가 혼자 다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괜히 내가 더 부담이 됐다.

장모님이 해놓은 전들도 가지고 오지 말라 하고, 어머님이 해준다는 잡채도 싫다고 했다.

보통 아침 일찍 가락시장에 가서 모둠회를 떠 와, 음식 준비는 별로 하지 않았다.

한 번도 안 해 본 게찜을 하겠다고 하더니, 다른 것들도 자기가 하겠다며 이상한 고집을 피웠다.

지켜보는 나만 힘들었지, 아내는 하나씩 아무렇지 않게 다 해냈다.


추석 전날 우리 집에서 저녁을 드시던 어머님이 돌연 막내며느리와 살고 싶다고 하셨다.

몇 년 전 작은 형네가 어머님 아파트에 밀고 들어와 사는 바람에 여러모로 불편하셨던 것 같다.

형수 눈치에 명절 때도 다 함께 모일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속내를 말씀 않던 씩씩한 노모였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우리 부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아내도 어머님을 모실 수 있다고 했었기에 크게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참 아내는 겁이 없다. 겁이 없는 건지, 성격이 그런 건지 모르겠다.

다닌 지 몇 년 안 된 대형교회에서 많은 일들을 맡기고 있는데, 다 순종하며 감당하고 있다.

하나님 말씀에 어쩔 수 없이 순종하여 복을 받듯이, 그런 상황이 오히려 축복일지도 모른다.

아내는 기꺼이 그러자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건 어머님 생각이다.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님 여생이 가장 평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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