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이디어는 철저히 창의적이어야 하고, 그 실행은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게 하고, 그 지킴은 아주 ‘낮은 마음’이어야 한다!”
오늘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뚜렷하게 이루어낸 자(이른바 성공한 사람, 잘난 사람, 유명인 등)를 쫓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 그들의 행적이 고스란히 담긴 책도 많이 읽어보고, 여러 형태의 영상 매체들도 많이 보려 하고, 이래저래 직간접적인 자기 나름의 베끼기 노력도 많이 하려 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그 이루어 낸 사람의 행적을 따라 해 보고, 똑같이 행해 보려고 하여도, 도무지 그런 사람들을 따라잡기에는 아주 역부족일 것이다.
때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아주 당연한 결과일 수 있겠다.
사람들은 그 개인마다 자신에게만 통할 수 있는 방법들이 각자 모두 다를 것인데, 남들이 사용해 온 방법들을 그대로 차용하여, 자기에게 억지로 꿰맞추려 한다면, 당연히 실패할 것은 자명하다고 하겠다.
그것은 차라리, 그냥 무엇이든 좀 베껴보려는 자의 욕심에 다름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즉, 그렇게 많은 것을 이루어낸 자들이 실제 사용한 방법은 분명히 당신에게는 결코 맞지 않는 방법일 것이므로, 아무리 읽어 배워보려 하여도, 아무리 여러 번 반복하여 탐독을 해 보아도, 아무리 그대로 똑같이 따라 하려 해 보아도, 결코 자기 것으로 옮아올 수는 없는 것이겠다.
그래서, 이러한 ‘따라 하기’ 방법으로는 도저히, 자신의 제대로 된 “자기 계발”을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인간은 자신이 직접 경험을 통해 체득을 하였거나, 깊이 실질적인 감명을 받기 이전에는, 마무리 타인이 사용해 온 비법을 잘 모방해보려 하여도, 그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즉, 몸소 체득을 통해 머릿속에 감흥이 일어나야, 결국 그것이 자기 삶의 지혜가 될 수 있는 것이지, 그냥 읽었다고 하여, 혹은 그냥 배웠다고만 하여 절대 자기 것이 될 수 없다.
그만큼 무엇을 단순히 배우거나 학습하는 것보다, 그 이후의 지속적인 익힘, 공고한 실천과 체득, 정신적인 감흥(혹은 깨우침)과 같은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들도 과거 자신들이 그렇게 성공을 해 내기 위해서, 그렇게 유명해지기 위해서, 그 무엇에 대해서도 단순히 그냥 배우고 학습한 데에 그치지 않고서, 모든 것을 직접 부딪쳐야 했을 것이고, 몸소 체험도 직접 하여 엄청나게 많은 느낌과 깨우침 같은 것을 가졌었기에, 결국 그렇게 잘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을 옆에서 그저 보기에는, 모든 것을 아주 쉽게 이루어낸 것 같아도, 세상에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란 결코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럼 여기서, 자기 생에서 스스로 원하는 바를 잘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그것도 가장 손쉽고도 온당한 방법으로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스스로 자부할만한 당신만의 역사를 끝내 잘 완성해 나가려면, 과연 어떻게 하여야 하는 것일까?
“당신의 역사는 당신 스스로 이루어라!”(그림;.forbes.com/sites/abdoriani)
1. 일단 당신만의 아이디어(혹은 노하우, 좋은 생각, 생의 계획 등)를 스스로 잘 궁리해 내어라.
명언을 너무 쉽게 차용하려 하지 말아라.
남의 서브노트를 빌려 손쉽게 자기 목적을 이루려 하지 말아라.
남의 아이디어를 단순히 가져오려 하지는 더더욱 말아라.
그 명언 자체, 그 서브노트 자체, 남의 아이디어 자체는 당신에게는 결코 맞지 않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한 것들을, 그 상태 그대로, 빌리려 한다면, 네게 절대 큰 힘이 되어줄 수 없다.
때로는 그것들이 매우 거추장스럽기만 할 수도 있다.
즉, 당신의 새롭고 창조적인 두뇌 활동에 타인의 자취나 그림자가 어른거려, 당신만의 창의적인 활동에 방해나 지장을 심각히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어떤 명언이나 서브노트 등과 같은 타인의 실적물들은 그저 당신에게 스쳐 지나가는 듯한 작은 참고용으로, 혹은 당신이 침체에 빠졌을 때 참조가 될 만한 작은 모티브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자칫 당신이 공짜 심리에 너무 깊이 빠지게 되면, 당신의 소중한 사고 활동은 그 소중한 독창성을 잃어버리고, 매우 게을러지게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 오히려 극히 주의를 필요로 한다고 보아야 한다.
오직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 내거나, 완전히 새로이 재정리해낸 것이 아니라면, 또 스스로 힘들여 쌓아 올린 게 아니라면, 그 효과는 아주 미미할 것이고, 때로는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이른바, 그것은 그 바탕이 매우 약한 사상누각의 모습을 할 수 있고, 기초가 약해 늘 흔들리는 대형 구조물의 모습을 할 수도 있어서, 그 사방이 크게 위태롭기만 할 것이다.
타인이 이루어낸 결과물들에 대해서는, 당신이 그 속의 함축된 의미를, 그 행간에 숨겨진 뜻을, 그 문맥상 시사하는 바를, 그 추구하는 바 의도를 도저히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차라리 스스로의 의지로,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이루어내고, 차곡차곡 쌓아나가라.
다소 역설적으로 들릴 수는 있어도, 그것이 과연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다.
또, 그 길은 진정 당신의 내공을 쌓는 길일 것이고,
당신만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길이기도 할 것이고,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당신만의 흔적이자 업적이기도 할 것이니 말이다.
타인의 것은 아무리 훌륭한 것이어도, 적어도 당신에게 있어서는, “그림을 떡‘과 같은 존재일 것이니 절대 그 어떤 욕심도 내지 말아야 할 것이고, 그저 작은 참조로만 여겨야 할 것이니 말이다.
장자(莊子)의 천도편(天道篇)에 따르면, 과거 중국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인 제나라 왕(환공)이 탁 트인 하늘 아래 넓은 대청마루 위에서 서책을 이리저리 읽고 있었는데, 윤편이라고 하는 궁중 목수가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윤편이 능란하게 수레바퀴를 깎는 도중, 불러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대화 도중 왕이 읽고 있는 서책을 그만 “옛 서인이 남기고 간 찌꺼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에 왕이 윤편을 나무라며 말하였다.
“이 놈아! 감히 나를 놀리려 하느냐?
만약 이 책이 과연 옛 성인이 남기고 간 찌꺼기라는 것을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할 수 있다면, 너를 살려줄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당장 너를 처형하겠다.”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잘 궁리하고 정리해 내어라!”(그림;.jotform.com/blog)
이에 윤편이 차분히 대답하였다.
“제가 수레바퀴를 깎는 일에 비추어 설명을 하자면, 수레바퀴의 가운데 구멍은 너무 깎으면 헐렁거리고 굴대(바퀴 축)에 꽉 물리지 않아서 안 되고, 덜 깎으면 아예 굴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를 더도 덜도 깎지 않고, 꼭 알맞게 깎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몸소 손의 감각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며, 말이나 글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몸소 직접 터득한 손의 감각만이 좋은 수레바퀴를 만들 수 있는 비결이 될 수 있습니다.”
윤편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따라서, 제가 이렇게 칠순이 넘어서까지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이유도, 그 손의 감각을 아들에게 설명하거나 깨우쳐 줄 수가 없고, 아들이 몸소 터득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보아 주기 위함일 따름입니다.”
그러니,
“대왕께서 읽고 계시는 서책에도 옛 성현들의 그 핵심적인 가르침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핵심적인 가르침은 글로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니 말입니다.
따라서, 대왕께서 읽고 계시는 서책은 그 성현들의 올바른 가르침이라고 볼 수가 없고, 그 껍데기 혹은 찌꺼기라고 표현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렇게 윤편의 말들을 모두 들은 왕은 내심 여러 생각이 많았는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윤편을 결국 살려주었다는 일화이다.
즉, 참다운 진리는 말이나 글로 담아낼 수가 없고, 직접 경험을 하거나, 몸소 체득하여 얻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똑같은 책을 읽어도, 저마다의 지식과 경험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해석이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결국, 우리는 옛 성현의 말씀에 너무 기대지도 말아야 하고, 뛰어난 사람들의 유창한 명언이나 남들이 만들어놓은 서브노트나 비책이 담긴 서적 등에도, 타인이 이룩한 대단한 업적 등에도 너무 눈독을 들여서는 안 된다.
그런 것에 마구 기대려 하여서는 더더욱 곤란하다.
단지, 꼭 필요하다면, 당신이 하고자 하는 바, 이루려고 하는 바에 작은 참조용으로만 활용하면 된다.
그것을 직접 깨우쳐 이루어 내었거나, 손수 만들어 낸 자에게는 그런 것이 아주 금쪽과 같이 귀중한 존재일 수 있겠지만, 당신과 같은 제삼자에게는 그냥 작은 참고사항이나 모티브 거리 정도의 존재일 것이니 말이다.
만약 당신이 타인의 좋은 아이디어나 글귀, 업적 등을 꼭 모방을 하고 싶다면, 그것이 아무리 대단하고 훌륭한 인물의 말씀이나 창조물이라고 하더라도, 당신에게 있어서는 그것들이 그저 죽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니, 당신 스스로 그들의 아이디어 등을 잘 참조로만 활용하고서, 거기에 훨씬 더 많은 당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직접 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더 바람직하게는, 거기에 제대로 된 '화학적 결합(그분의 것과 당신의 것을 한 솥에서 완전히 녹여내어 완전히 새로운 가치의 창출)'까지 추가로 이루어 내어야 비로소 그것이 당신만의 것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정도 수준의 모방을 위한 노력이라면, 당신이 그냥 아무런 모방 없이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데 들어가야 할 노고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세상에는 과연 공짜가 없는 법이 아니겠는가?
또한, 우리는 타인의 것에 대해, 심지어는 자신이 과거에 만들어 낸 것에 대해서도, 결코 ‘표절’이 없도록 무척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타인의 것이나 자기가 이미 예전에 이루어놓은 것들을 잘 참조로 삼는 것까지는 좋으나, 거기서 좋은 영감이나 모티브 같은 것을 얻는 것까지는 좋으나, 이를 넘어서서 표절에 가깝게 유사해져 버리게 되는 것은, 그렇게 하여 자기 이익을 취하려는 것은, 그 가치를 참으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할 것이며, 때로 당신의 도덕성까지 의심받을 수 있게 할 것이니 말이다.
서브노트
2. 모든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게 하여라.
자!
이렇게 스스로 원하던 바, 자기 생의 중요한 아이디어나 중간 결과물을 잘 이루어 내었다면, 이제는 그것을 잘 실행해 내고, 잘 업글도 이루어지게 하여, 당신의 정신적 최종 종착지까지 잘 열결 시키는 작업이 참으로 필요할 것 같다.
이 대목에서 추천할만한 것이, 이렇게 자기 생의 좋은 아이디어나 중간 결과물들을 일단 잘 만들어 내었으면, 이제는 그것들이, 별로 힘을 안 들여도 저절로 굴러가게 한번 해 보아라.
그래서, 일상에서 저절로 업글이 이루어지고, 모든 것이 목적지를 향하여 순항할 수 있도록 한번 해 보아라.
우리는 보통 자기 인생에서 목표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서 거창한 그 무엇인가를 계속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아주 초보적 단계의 생각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인생에서 일상적인 대부분의 일들에 대해서 수동적인 투자와 노력을 계속 기울이기 보나는, 노력이나 투자 없이도, 혹은 그것들을 최소화하고도,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구조(시스템)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당신이 원하던 바, 좋은 아이디어나 구체적인 계획을 일단 잘 만들어 내었어도, 그것을 실행하는 데 너무 인위적인 힘이 많이 들어가거나, 그것이 현실 속에서 자연스럽게 업글되지 못하고 묶여있게 한다면, 조만간 침체를 빚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현실 속에서, 당신이 별로 힘을 크게 들이지 않아도, 스스로 굴러갈 수 있게 해 주어야 하고, 여기에 더하여 일상에서 저절로 업글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여,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져 나가서 최종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게 하여야 하겠다.
우리에게 오래전부터 많이 알려져 있듯이, 손무의 손자병법 13편 중 세 번째, 모공(謨攻) 편에 나오는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최고 으뜸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즉, 백전백승을 하여도 상호 출혈이 크다면 별로 좋은 병법이 못 된다는 것이며, 가장 좋은 방법은 싸움 초기부터 싸우지 않고도 저절로 이길 수 있도록 전쟁의 전략과 전술을 설계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약한 자든 강한 자든, 서로 싸우면, 제3자만 좋게 해주는 꼴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 인간은 역사적 사건을 통해 수없이 경험해 온 바 있다.
회사의 경우에도, 그 규모가 크든 작든 간에, 인위적인 관리에 너무 치중하지 말고서, 모든 것이 시스템적으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경영하는 것이 좋다.
즉, 일일이 오너나 경영진이 심하게 간섭을 해 가며 여러 사업을 진행하면, 힘도 많이 들고, 일도 과학적으로 처리가 잘 안 되고, 여러 가지 실수도 많아지고, 자칫 오너십이 약해진 경우라도 발생하면, 회사 전체가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회사나 조직에서, 시스템적 경영(인력·조직 관리 시스템, 자재·구매 관리 시스템, 물류 시스템, 공급망 시스템, 개발 시스템, 영업시스템, 홍보·광고 시스템 등의 모든 면에서, 인위적·인정적 경영 행위를 최대한 배제하고, 오직 규정과 조직 메커니즘에 의해서 아주 투명하고 자동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경영방식)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개인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일상에서 자기 일이 자동으로 원하는 바의 방향을 추종할 수 있도록 해두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가령,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애써 부딪혀가며 돈을 버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일단 자신이 돈을 벌어야 하는 목적과 플랜을 잘 정리하고, 이에 대한 기초적인 학습을 충실히 한 후에는, 재투자, 분산투자, 가치투자, 혁신적 플랫폼 사업, 기타 자기 가치적 사업 등을 통하여, 가만히 있어도, 노력을 최소화하고도,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고도, 저절로 돈이 벌리는 그러한 구조를 잘 만들어 내는 일이 가장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수레 (그림: leekihwan.khan.kr)
유사한 예을 하나 들어보자.
춘추시대 초나라 백성들은 주로 낮은 수레를 끌고 다녔는데, 임금(장왕)의 생각에는 나라 전체 백성들이 좀 더 높은 수레를 끌고 다니게 하여야, 유사시에 그 수레를 전쟁 물자로 전쟁터에 동원했을 때에도 전투에 크게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일단 여기까지는, 장왕의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백성들과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 했다.
즉, 아무리 나라의 법령을 수정하여 공포하여도 백성들이 이를 따르지 않았고, 아무리 지원책을 내어놓아도 안 되니, 도무지 자기 아이디어를 실행할 방법이 묘연하였다.
낮은 수레를 사용하는 것은 워낙 오래된 나라의 관습이라, 웬만한 방법으로는 도저히 잘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재상 손숙오가 계책을 하나 내어 놓았는데, 그것은 마을로 들어가는 성문의 문턱을 높이는 것이었다. 과연 그렇게 실행해 보니 귀족들이 성문의 문턱을 지날 때 몸소 내리기가 싫어서, 스스로 자기 수레의 바퀴를 크게 하여 성문의 문턱을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머리를 쓰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장왕은 재상 손숙오의 계략을 받아들여 특별한 법령 및 백성들과의 씨름 하나 없이도, 목적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무엇이든 억지로 힘써 애쓰려 하기 이전에 저절로 굴러가는 시스템을 가지려 노력해야 마땅한 것이다.
즉, 장왕이 백성들로 하여금 좀 더 높은 수레를 끌고 다니게 하여, 유사시에 그 수레를 전쟁 물자로 전쟁터에 동원했을 때에도 전투에 크게 쓸모가 있게 하겠다는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잘 궁리해낸 것이 일단은 매우 훌륭하였고, 그다음, 재상 손숙오가 기가 막힌 계책을 내어놓아, 장왕의 아이디어가 마치 저절로 이루어지게 보일 정도로 아주 용이하게 실현될 수 있도록 한 것이 그 두 번째로 주효했다고 볼 수 있겠다.
3. 아주 낮은 마음을 지녀라.
자!
이렇게 스스로 아주 독창적인 좋은 아이디어나 중간 결과물을 아주 잘 만들어 내었고, 또 그것들이 저절로 굴러가게 하고, 잘 업글이 이루어지게도 하였으니, 이제는 그것이 당신 생의 끝까지 계속 잘 굴러갈 수 있게 하고, 끝까지 잘 지켜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또 무엇이겠는가?
바로, 항상 겸허와 겸양을 잊지 않아, 주변인의 아주 작은 감정마저도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꺼이 실천하려는 ‘낮음 마음’이 중요할 것이다.
특히, 당신 주변의 여러 얽힌 감정들을 절대 건드려 덧내지 말고서, 오히려 차분히 정리하여 나가고, 모든 이해관계들을 잘 풀어 나가야 하겠다.
그러려면, 일단 상대가 잘났든 못 낫든, 그 존재와 인격을 먼저 잘 인정하고, 항상 진심으로 대해야 마땅하겠다.
주나라의 제37대 천자 난왕 때, 중산국(中山國)의 왕이 사대부와 인재들을 초청해 연회를 베풀 때의 일이다. 잔치에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마침 준비한 양고기 국물이 조금 부족한 모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거의 마지막에 줄은 선 사마자기(司馬子期)라는 사람 차례의 바로 앞에서 그만 국물이 떨어져 버렸다. 이렇게 하여 여러 인재들 중 사마자기의 상에만 양고기 국물이 없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사마자기는 자신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은 왕에 대해 모욕을 느끼게 되었고, 이웃 강대국인 초나라로 망명하여 벼슬을 했는데, 초왕을 꾀어 자기 모국인 중산국을 치게 하였다.
이에 중산국은 도성이 함락되고, 왕은 사마자기가 이끄는 군대의 추격으로 위기에 빠졌다. 이때 다른 군사들은 모두 도망가기에 바빴는데, 유독 두 사람의 병사만이 죽을힘을 다해 싸웠고, 결국 왕을 구해주었다.
그래서 왕은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길래 이렇게 죽음을 무릅쓰고 나를 구해주는고? "
이에 한 병사가 대답하기로,
“예전 저희 부친이 굶주림에 시달릴 때, 왕께서 찬밥 한 덩어리를 주신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그분이 바로 우리 형제의 부친이신데, 그 찬밥 한 덩어리 덕분에 부친은 목숨을 건졌고, 잘 지내시다가 훗날 돌아가실 때, 나중에 무슨 변고가 있어 왕께서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면 우리 형제가 목숨을 다해 도와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왕은 속으로 생각했다.
“베풂의 크기는 액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받는 이의 어려운 정도에 달렸고, 원한의 크기 또한 깊고 얕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다치게 했느냐에 있었구나!
내가 양고기 국물 한 사발에 나라를 잃었고, 찬밥 한 덩어리로 두 용사를 얻었도다!”
이 고사는 전한 시대에 유향(劉向)이 저술한 『전국책(戰國策)』에 실린 이야기인데,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감정은 개인마다 참으로 묘하고 다양하다.
감정을 웬만큼 건드려도 무던한 성격의 소유자가 있는 반면에, 아주 작은 언사에도 크게 상처를 입는 민감한 성격의 소유자도 있다.
그러나 누가 그런 부류의 성격을 가졌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런데, 위의 고사에서도 보듯이, 만약 민감한 성격의 소유자를 맞닥뜨려서는 네 작은 실수로 일을 크게 망칠 수도 있는 것이겠다.
이런 유사한 일들이 오늘날 우리 현실에서도 많이 벌어지고 있다. 가령, 어느 회사 사장님이 한 직원의 근무 성적과 태도가 매우 불량하다고 생각하여, 퇴사를 시켰더니, 그 직원은 앙심을 품고 경쟁사로 넘어가서 이전 직장의 온갖 기업 비밀들을 누출하여, 아주 곤욕을 치르게 되는 일들이 허다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사람은, 생각보다는 아주 작은 것으로도 상처를 받을 수 있고, 또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당신 인생에서 다른 사람들의 작은 감정마저도 잘 헤아리고 어루만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임금의 연회 (그림:.tanmizhi.com/html)
우리는 살면서, 남에게 심한 상처이든 가벼운 상처이든, 많이들 주고받게 된다. 그러나 상처를 준 사람은 그런 것을 전혀 잘 못 느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혹은 자기도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말이 불쑥불쑥 나오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상황들이 누적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상처와 오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따라서 평소 자기 행동거지와 더불어 말 한마디한마디를 조심하고, 타인에게 가능하면 응원의 말을 많이 하고, 지적하는 말이나 흉보는 말, 특히 상대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말은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참으로 당신 삶의 큰 지혜가 될 수 있다.
또, 자기의 실수가 확인되거나 감지되었을 경우 바로바로 사과를 행하여 상대방에게 남을 수 있는 작은 생채기도 없애려 노력해야 하고, 절대 깊은 응어리를 주지는 말아야 하겠다.
만약 중산국의 왕(중산군)이 양고기 국물이 떨어졌을 때 자신의 불찰을 바로 인정하고, 사마자기에게 사과를 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 사과가 진정일진대, 바로 받아들여지고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되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