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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삼부부 Jan 17. 2023

가고 싶은 회사가 없어 무작정 공시생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막연히, 그저 막연히 해외에서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동경해 왔다. 그러려면 일단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래도 암기 머리는 있었는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행히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그런데 하루 종일 공부만 했었던, 오로지 대입만 바라보고 처절하게 달렸던 고등학교 3년 생활의 번아웃이 온 것인지, ‘학생’이라는 신분에 봉인되어 있던 역마살이 팡하고 터진 것인지 20살 대학생이 되자마자 나는 미친 듯이 제주로, 그리고 해외로 나갔다.     



그렇게 무엇에 홀린 듯이 여행만 실컷 하며 학점, 대외활동, 스펙 그 무엇 하나 성실하지 않았던 게으른 대학생활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잃어버린 나의 퍼즐처럼 꼭 맞는 남편과 그렇게 신나게 연애를 하며 살다 보니 어느새 대학교 4학년이 왔다. 이제 순리대로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돈을 벌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 전공으로 딱히 가고 싶은 회사가 없었다. 사실 전공으로 무엇을 하고 싶지 않다기보단, '회사'와 '취업' 그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보통 취업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하면 창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를 준비할 텐데, 그때의 나는 무력했다. 옆의 친구들은 모두들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미 좋은 회사에 취업이 된 친구들도 많았다. 취업 준비는 하기 싫은데 세상의 순리대로 직장인은 되어야 하는 것 같고, 머리가 아팠다. 나는 무력하고 조급했다. 그래서 무작정 도망쳤다, 공무원 시험으로.



Pixabay



그때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했다. 그저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대기업에 취직한 선배들이 밤 11시까지 야근하는 것을 보고 사기업은 일찌감치 배제했고, 빠른 두뇌회전이 필요한 공기업의 인적성 시험은 암기에만 강한 내 머리로는 안 될 것 같았다. 공무원 시험은 그나마 엉덩이 싸움이라고 하듯 암기만 잘하면 되는 시험이니까, 한 마디로 만만하게 본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의 아버지는 공무원이 가장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공무원 시험에 관심이 가자 항상 반기를 들었던 그 말씀이 어떤 계시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아닌, ‘내가 붙을 수 있을 만한 시험’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무작정 공시생이 되었다.  



그렇게 무작정 공시생이 된 사람은 나 말고도 한 명이 더 있었는데,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이다. 그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유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에 취업 준비를 하고 있던 중, 운 좋게 대기업의 채용형 인턴 최종면접까지 갔었다. 면접 당일, 미용실에서 머리도 하고 깔끔한 코트도 차려입고 갔는데 결과는 탈락이었다. 나도 남편도 그 채용에 기대를 많이 했던지라, 만화카페에서 확인한 탈락 결과에 굉장히 좌절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왠지 그의 슬픔을 달래주려고 “같이 공무원 준비 할래?”라고 물어봤었고, 그는 그렇게 ‘에라 모르겠다!’ 식의 태도로 나와 함께 공시생이 되었다.



세상은 남자, 여자, 수험생으로 나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렇게 25살의 우리는, 고3 이후로 제3의 인격인 수험생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함께 손잡고 들어간 어둠의 터널 같은 공시생 생활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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