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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다시 써본다.

by Mooon

여름매거진에 참여했었고, 가을은 패스했다. 그리고 이번 겨울, 다시 용기를 내보았다. 여름매거진처럼 한 번의 참여로 끝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겨울이라는 주제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지나온 겨울은 어땠을까. 떠오르는 장면들은 유난히 또렷했다. 두 아들의 출산, 내 생일, 그리고 결혼. 생각해보니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큰 이벤트들을 나는 모두 겨울에 치러냈다. 의도한 건 하나도 없었다. 태어나는 날을 내가 정할 수는 없고, 아이의 출산 시기도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결혼은 나의 선택이라 믿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마저도 어떤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정해진 일이었던 것 같다. 인생이란 대체로 그렇다. 계획보다 예외가 더 많고, 예상보다는 우연이 더 크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가 생각난다. 나는 기억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사람인데, 그날 저녁만은 생생하다.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선명히 나타났고, 화장실 문을 나와 주방에서 설거지 중이던 남편에게 그것을 내밀었던 순간. 1월에 결혼하며 ‘1년은 신혼을 보내고 아이를 갖자’고 약속했는데, 정말 1년 후 아이가 생겼다. 예정일은 12월 20일. 성탄절 이브가 되어도 첫째는 세상에 나올 생각이 없었고, 결국 26일 새벽 유도분만으로 입원했다. 만삭의 몸으로 똑바로 누워 있으려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것도 못 참아서 어떻게 엄마가 되겠어요.” 호통치던 간호사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양수를 터뜨린 뒤 8시간의 진통. 하지만 아이는 나오지 않았고, 나는 결국 남편에게 제왕절개를 시켜달라며 울었다. 그렇게 첫째가 태어났다. 5일 만에 두 살이 되어버린, 말 잘하는 12월생. 서른이 넘은 나이였지만, 나 역시 ‘엄마로 태어난 지 5일 된 신생아’였다.


이유도 모른 채 밤새 울어대는 첫째를 보며 나도 울고, 짜증을 내고, 미안해하며 또 울던 날들.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아이의 목에서 고름이 나왔다. 동네 소아과 의사는 소견서를 써주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병원 로비에서 첫째를 안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며 한참을 울었다. 연세세브란스 병원 진료실에서 담당 의사가 말하는 내내 나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피부가 완전히 형성되지 못해 생긴 선천성 기형입니다. 지금은 시술보다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때가 생후 66일. 매일 아침저녁으로 고름을 짜고, 소독하고, 다시 드레싱하던 시간들이 이어졌다. 초등 저학년이 될 때까지 정기검진을 다녔고, 지금 중학생이 된 첫째의 목을 여전히 가끔 소독해준다. 이제는 그저 일상이 되었지만, 그때의 공포와 떨림은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


내가 기억하는 겨울은 그런 계절이다. 두려움과 기쁨, 새 생명과 눈물, 그리고 삶이 주는 무게가 함께 섞여 있던 계절. 이번 겨울은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이제 막 시작된 이 겨울을, 순간순간 놓치지 않고 글로 남기고 싶다. 내 안의 시간들이 흘러가버리지 않도록. 기억 속에서만 희미하게 남는 대신, 단어와 문장으로 세세히 쌓아두고 싶다. 아마도, 시간이 갈수록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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