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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토 Oct 17. 2022

테넷 (2020)

왜 아무도 테넷이 이렇게 재미있다고 말해주지 않았는가


10월, 아이맥스로 재개봉한 인터스텔라, 듄, 테넷 중 유일하게 안 본 영화라 이번 기회에 예매를 했습니다.


<테넷>에 관해 알고 있던 것은 무지 어렵다는 것뿐, 영화가 어렵다고 하면 오기가 생겨 ‘내가 이해하고 말겠어’ 하는 생각으로 보러 갔는데요.. 그랬는데요…


생각지도 못한 오타쿠 취향 완전 저격으로 며칠째 테넷 생각에 현생 마비됨


너무 좋아서 두 번 보고왔습니다… 아이맥스 내려가면 언제 또 극장에서 볼 수 있을지 모르는데 한 번만 더 볼까 미친듯이 고민하는 중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았는가!


4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이 영화는 아이맥스로 봐야만 해



이틀 뒤면 극장에서 내려가는데, 이제 와서 아이맥스로 보라고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ㅎㅎ


(사실 용아맥 2차 뛴 제 자랑입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부터 엄청난 긴박감을 주는 대형 액션씬이 아이맥스 풀 화면으로 8분간 지속됩니다. 오페라 극장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을 보여주는데요,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관객들은 갑자기 어마어마한 사태 속에서 생사가 오가는 긴장감에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지요.



처음만 강렬한 것이 아닙니다. 시작할 때 가졌던 몰입감이 끝까지 이어지지요. 압도적인 큰 화면에서, 루드비히 고란손의 웅장한 사운드트랙에다 전신 마사지를 맡긴 듯한 진동이 느껴지는 빵빵한 액션 사운드까지 더해지니, 정말 말도 안 되게 재미있어요. 체감상 70% 정도는 아이맥스 풀 화면이었던 것 같으니, 일반관이나 vod로 본다면 영화의 반을 (말 그대로 ‘반을’) 못 보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ㅎㅎ


테넷은 SF적인 요소가 있고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첩보 액션 영화인데요, 그러한 장르적인 측면에서도 굉장히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액션 장면에서는 현장감을 최고로 살리고, 작전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스토리가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강하고 적당히 빠른 템포로 쳐지지 않게 극을 이끌어 가는 것이 좋았습니다. 특정한 부분이 아니라 영화 전체가 고루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2. 이 영화의 어려움은 장애물이 아니라 매력 포인트입니다.



개봉 당시부터 어렵다고 말이 굉장히 많았어요. 이해하려면 양자역학 어쩌구 현대 물리학을 얼만큼 알아야 한다니 뭐니 했지만, 직접 보고 온 결과 절대 그런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필자는 과학에 완전히 무지한 뼈문과출신입니다!)


네, 테넷 어려워요.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절대 과학적인 부분에서가 아니고, 플롯이 어렵습니다. 테넷은 일종의 시간여행과 같은 소재를 다루는데, 일반적인 시간여행과는 다릅니다. 과거나 미래 어느 지점으로 순간이동하는 시간여행과는 달리, 테넷의 중요한 소재인 ‘인버전’은 현재로부터 과거로, 시간이 거꾸로 흐릅니다. 마치 영상을 역재생하는것처럼요. 순행하는 사람과 역행하는 사람이 한 씬에 동시에 등장하기도 하고, 인버전 기술을 통해 미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을 활용하여 그들이 협공하기도, 서로 맞붙기도 하기 때문에 영화가 매우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도 그래요... 이해하지 말고 느끼라고


아무래도 영화 한 두 번 보고서는 캐릭터들의 동선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영화를 즐기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큼직큼직한 사건들의 진행 순서만 머리에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스포 없이 간단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영화의 전반부까지 벌어지는 사건이 크게 A, B, C이 있습니다. 그리고 3에서 주인공들이 인버전되고, 역행으로 다시 C, B, A로 사건이 흘러가게 되지요. 영화의 처음에 나오는 사건 A 그리고 역행해서 마지막에 나오는 사건 A는 동시간대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에 캐릭터별 동선, 작전 진행 상황을 깔끔히 설명해주는 영상이 많으니 영화 관람 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사실 설명 영상을 보고 나서도 헷갈려요.)


그래도 이러한 복잡한 플롯이 주는 쾌감이 있습니다. 같은 사건을 역재생해서 보게 되는데, 거꾸로 해도 말이 되는 이야기인 것이지요. 사람들이 반대로 움직이고, 원인과 결과가 뒤집히는데 그것이 오히려 개연성이 되고, 순행으로만 보았을 때 의문이었던 지점을 아 이거였구나! 하며 해소해준다는 것이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고 짜릿하게 느껴졌습니다. 거꾸로 읽어도 똑 같은 문장을 보면 느끼는 쾌감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제목인 테넷(tenet)도 역시 뒤집어도 똑 같은 문자이지요… 영화의 내용과 형식과 제목이 조응하는 것… 너무 좋네요…


뒤집힌 액션은 연출적으로도 최고의 볼거리를 선사합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폭파된 건물이 원상복구되는 동시에 다시 폭발해 무너저내리는 장면 같은 것을 어느 영화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화려한 특수효과 없이도, 순재생과 역재생의 적절한 조합으로 훨씬 다채롭고 ‘시각적인 뽕’을 채울 수 있는 영화가 나올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3. 예상치 못한 감동이 물 밀 듯 떠밀려와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를 할 수밖에 없네요.




저를 테넷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 바로 닐과 주도자의 관계



주인공(주도자)는 영화 끝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을 구하는 주도자가 특별한 개인이 아닌 이름없는 영웅이라는 설정을 준 것 같은데요, 그 점이 너무 좋네요. 주도자는 이름과 개인사를 가진 존재라기보다는 무언가 상징적인, 메시아적인 구원자의 느낌이 듭니다. 동료를 아끼고 타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점은 그의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한다기보다는 신성한 신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러한 그를 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발붙이게 하는 것이… 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도자가 뭄바이에서 만난 요원 닐은 처음 본 순간부터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주도자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고, 테넷에서의 활동도 한두 해 해본 것이 아닌 느낌이 들지요. 여러 번의 작전을 함께하면서 둘은 점점 가까워지게 됩니다.


마지막 작전이 모두 끝나고 세상을 구하는 데 성공하자 주도자는 닐에게 그가 모든 것이 끝나면 말하려 했던 것을 묻습니다. 닐이 웃으며 말합니다. 닐을 고용한 것은 주도자이고, 주도자에게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에 그들은 가까운 친우가 될 거라는 것을. 주도자에게는 지금이 시작인 것이나 미래로부터 모든 것을 겪고 온 닐에게는 마지막이 될 거라는 것을 그리고 뒤돌아서 적진을 향해 시간을 돌리러 갑니다.


주도자가 마지막에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어디선가 나타난 인버전된 사람이 문을 열어주고 대신 총을 맞아 죽었기 때문이고, 그 사람이 바로 닐이었지요.


그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닐의 가방고리가 클로즈업되는데…

진실을 알게 된 주도자는 눈물을 글썽이는데…

닐은 너무나 환하게 웃는 얼굴로 떠나요. 당신 덕분에 내 삶이 행복했다는 듯이,

나는 미리 겪었지만 당신에게는 오지 않은 그 미래를 위해 당신을 구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듯이.



이 장면… 처음에는 충격에 머리 부여잡고 탄식하면서 봤고, 재관람 때는 마스크가 축축해지도록 울면서 봤습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나는 기꺼이 그것을 수행한다는 닐의 그 태도, 주도자는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으나 닐에 의해 점차 변화했습니다. 주도자는 닐을 떠나보내고 그가 가지고 있던 신념을 이후 만날 젊은 닐에게 전해주게 되겠지요. 그게 영화에서의 닐이라는 사람을 만들었고요.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닙니까… 시간여행물에서만 가능한 인과의 역설로 서로가 서로의 구원하는 이야기….


이게 로맨스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저 이런 관계 너무 너무 너무 좋아해요 서로 반대로 흐르는 시간 속의 접점이 서로를 변화시킨다고요.. 하 (그만하겠습니다)




4. 영화의 메시지:

미래가 결정된 세계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인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영화에 여러 번 등장하는 말이자 이 영화 전체를 함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하는 일 모든 것이 아무것도 의미가 없어 보여요. 폭탄이 터질 것을 알기에 폭탄이 터지도록 놔두고. 미래에서 받은 정보에 따라 일어날 일을 일어나게 만들고. 자유의지란 없는 것처럼. 세상을 변화시킬 힘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의 설정은 미래 사람들이 지구온난화와 자연파괴로 재난을 맞게 되자 인버전 기술을 활용하여 과거를 향해 복수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영화의 빌런인 ‘사토르’는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자신이 갖지 못할 세상이라면 파괴해 버리고 말겠다는 잘못된 신념으로 미래 사람들과 거래하고 있는데요, 사토르가 죽으면 그 즉시 미래에 알고리즘이 전송되어 그들이 과거를 파괴할 수 있게 됩니다. 알고리즘을 뺏어오지 않는 이상 사토르는 언젠가 죽을 것이고, 세상은 파괴되겠지요. 현재 시점에서 세상이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리즘을 뺏어오는 데 성공하는 것으로 미래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어차피 성공할 결말인 것이지요. 그들의 고군분투가 그저 정해진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길일 뿐인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들의 힘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현재 물리학계의 연구 가운데 시간은 존재하지 않고 그저 결정된 과거, 현재, 미래가 거기에 있을 뿐이라는 가설이 있습니다. 명확한 결론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실제로 그러할 높은 가능성이 있지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마치 우리가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고 행위할 수 있다고 믿을 자유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착각이라도요. 그렇다면 우리는 의미 없는 세상을 착각 속에 살아가는 것일까요?


놀란 감독은 이러한 세상에서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미래를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내가 직접 수행해서 일어날 일을 일어나게 만드는 것은 다르다고요.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볼 때도 우리는 분명 영화의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나의 현실에서 느끼기 위해서’ 다시 보는 것이지요.


이는 정해진 결말을 바꿀 수 없음에 체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의 자유 없이 운명에 떠밀리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는 길을 따라 직접 움직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자유의 또다른 모습은 아닐까요? 그 끝이 성공이라고 자만하지 않고, 절망이고 비극이라 할지라도 피하지 않고 담담히 용기있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어쩌면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요?



필자의 인생 영화 top5안에 드는 작품 중 ‘컨택트(원제:어라이벌)’가 있습니다. 여기서 이 영화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삶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 여러모로 생각할 점이 많다는 것에서 두 영화 모두를 사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좋았던 점 4가지 정도로 모두 요약할 수는 없었습니다. 진짜 하루종일 테넷 얘기만 할 수도 있지만 최대한 줄여본 것이… 이만큼이네요…



오타쿠 특

: 혼자서 벅차오름



다음 번에는 조금 더 정돈되고 덜 흥분한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저도 이럴 줄 몰랐어요.

아무에게나 봐주세요 영업할 수 있는 영화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제 취향이었던 걸로




이런 사람 보세요


- 시간여행물을 너무 좋아해서 웬만한 것 다 접수했더니 조금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 닥터후 좋아함

- 로버트 패틴슨 좋아함 (개인적으로 트와일라잇때보다 비주얼 좋았고 멋있었어요 나이들고 살짝 농후한 맛.. 스타일 찰떡)

- 놀란 감독 영화 좋아함 (그러면 이미 보셧겠지요…)

- 오타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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