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야무야 이별하고 싶은 마음

비 <안녕이란 말 대신> : 이별의 아픔이 버거울 때

by 나츠미


한창 보던 드라마의 마지막 화를 아껴두거나 끝내 보지 않는다 . 그렇게 보지 못한 채 쌓여 있는 드라마가 벌써 여러 편이다. 끝이라는 아쉬움이 마지막 화에 대한 궁금증을 이겨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한 드라마는 내게 깊은 감상을 남기지 못한 채 서서히 잊히고, 시간이 흐르면 결국 궁금증마저 희미해진다.

​반면 끝까지 본 드라마는 한동안 내 마음속에 짙은 여운을 남긴다. 드라마 속 인물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하고 삶을 배우기도 한다. 때로는 '주인공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상상하며 힘든 순간을 이겨내고, 마지막 화 이후의 삶을 멋대로 해피엔딩으로 그려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즐거웠던 시간이 '마지막'이라는 점을 찍어야 한다는 사실에, 최종화를 재생하려는 손가락은 늘 망설여지기 마련이다.


​인간관계에서의 이별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나는 이별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대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유야무야 헤어지고 싶을 때가 많다. 모두가 이미 느끼고 있는 끝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직접 입 밖으로 내뱉는 것과 침묵하는 것 사이에는 감정의 농도 차이가 크다. 가야 할 때임을 잘 알고 있기에, 그 슬픔을 굳이 선명하게 확인받기보다는 즐거웠던 기억을 간직한 채 내일도 볼 사람처럼 웃으며 인사하고 싶다.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게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마침표를 찍는 이별에서만 느껴지는 것들도 있다.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사방이 막힌 지하방에 혼자 남겨진 듯한, 감당하기 어려운 고독을 느끼지만 그만큼 감정은 명확해진다. 그 짙은 어둠 속에서는 지나간 모든 순간이 소중하게만 보인다. 그제야 고마웠던 일들, 미안했던 기억들이 물살을 타고 마음속으로 밀려온다. 세탁기 속에 던져져 사정없이 휘둘린 듯한 충격은 강렬한 깨달음이 되고, 세탁 강도를 '강'으로 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남는다. 그 얼룩들이 겹겹이 쌓여 결국 내 삶의 무늬가 되겠지만.


​그럼에도 오늘은 자꾸만 어떤 노래가 입가에 맴돈다. 예전에는 뜻도 모른 채 밝은 멜로디만 따라 불렀던 노래, 비의 <안녕이란 말 대신>이다.


​"네가 나의 곁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로 간다면, 내 곁에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품이 더 좋다면... 안녕이란 말 대신 작은 미소 하나만 주면 돼. 너를 너무 사랑하나 봐. 이별은 뛰어넘고 싶나 봐. 이별 장면이 없는 이별을 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