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백수입니다
7월, 백수가 됐다.
미루고 미루다 오늘, 무려 한 달 만에 실업급여를 신청하려고 마음먹은 날이다. 지난밤 싱숭생숭한 기분에 단 1분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오전 7시, 잠을 포기하고 오래 정성 들인 목욕재계를 시작했다. 허전한 화장실에 의미 없이 떠드는 유튜브 소리와 물줄기가 서로 엉켰다. 고용센터 가는 길을 검색하면서 커피를 탔다. 머릿속으로는 많고 많은 컬렉션 중 어떤 텀블러를 가져가야 할지 고민하느라 바빴다. 어느새 9시, 하지만 급할 일 없는 백수는 느긋하게 짐을 챙기고 신발을 챙겨 신는다. 내가 열지 않은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퇴근하는 엄마는 딸이 백수가 된 걸 모른다. 엄마한테는 재택근무라고 거짓말을 했다. 난 잘난 딸이고 싶다.
고용센터는 멀었다.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가는 버스는 1시간 10분 걸렸고, 버스와 지하철을 총 세 번이나 갈아타는 최단 경로는 40분 걸렸다. 고민 끝에 급하지 않으니 여행하는 기분으로 1시간 10분짜리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온 버스를 타고 자연스럽게 지하철역에서 내렸다. 어? 왜? 어? 하는 중에 세 번을 다 갈아타고 40분 만에 고용센터에 도착했다. 난 백수인데 너무 열심히 왔다. 입구에서부터 대문짝만하게 실업급여 3층이라고 써 붙여져 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 '아 상담 예약이 있었나? 대기가 길면 어쩌지?' 고민했다. 대기인원 0명. 럭키.
"안녕하세요."
"신분증 주세요."
"아, 이걸로도 될까요?"
되는 걸 알지만 모르는 척 말하며 임시 신분증을 내밀었다. 맞다 잃어버려서 재발급 신청을 해둔 참이다. 시간 많은 나는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채우고 공무원 언니는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한테 쓸 데 있는 말을 해준다.
"당연하죠."
더 달라는 건 없었다. 영상도 미리 봐뒀고 구직 신청도 미리 해놨다. 이것저것 살피던 언니는 무심하게 말했다.
"권고사직이고"
"권고사직이요?"
"네 운영의 어려움으로 권고사직이네요."
"아 네.. 맞죠.."
맞는데 권고사직이라는 표현에 마음이 놀랐다. 아 이게 권고사직이구나. 나 권고사직이구나. 남 일인 줄 알았다. 취업난이 어쩌고 실업률이 어쩌고 경제가 어쩌고.. 나는 모르는 이야기였다. 곧 10년이 다 되어가는 직장 생활 중에 늘 역대급으로 힘들다는 취업시장에서 연봉도 쭉쭉 올려가며 3번의 이직에 성공했다. 그런데 권고사직? 처음으로 겪는 비자발적인 실업은 내 자존심을 갉아먹었다. 이번 실업을 기회로 더 멋진 내가 되어야겠다.
자존심이 상해서 이대로는 못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