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ENFP야!"
초등학교 2학년 딸이 웃으며 말한다.
"그래? 근데 너 밖에 나가는 거 싫어하잖아."
"응, 싫어. 그렇지만 나는 집에서 활발하거든! 그래서 E야."
MBTI 검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질문지를 뽑아서 해보라고 했다.
질문지를 읽어보고 “아빠 이게 무슨 말이야?”라고 연신 물어보던 딸이었다. 문항이 어려웠냐고 물으니 거의 이해 못 했단다. 그런데 결과가 ENFP가 나왔다. 딸이 원하는 이미지와 비슷하게 나왔나 보다.
'유튜브에서 봤는데 ENFP가 제일 좋대.'
특히 N(직관)과 F(감정)가 유튜브에 많이 노출되니 좋게 느껴진 거 같다.
와이프와 나는 MBTI 검사를 하면 둘 다 ISTJ다.
특히 와이프는 전형적인 I(내향)인데, 외부 사람들은 다들 와이프를 E(외향)로 안다. 밖에서는 활달하고 말 잘하고 친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고 집에 오면 매우 힘들어한다.
"오늘 너무 힘들었어. 사람들 너무 많이 만났어."
학교에서 돌아온 와이프는 소파에 누워 천장만 바라본다. 그래서 나가기 싫어한다. 약속 잡자는 연락이 오면 한숨부터 나온다.
학생들은 우리 반 선생님이 활발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그 선생님이 집에 와서 완전히 방전된다는 걸 모른다.
하루는 TV에서 '금쪽같은 내 새끼'를 봤다.
오은영 선생님이 금쪽이 부모에게 말했다.
"부모님의 폭력적 언행과 강압적 성향이 아이에게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우리 부부는 동시에 말했다.
"저게 뭘 부모가 잘못한 거야. 쟤는 더 혼나야 되겠는데? 저 상황에서 부모가 어떻게 하란 말이야? 금쪽이가 완전 부모를 알로 보고 이용하는 거 같은데? 지가 하기 싫은데 저렇게 지 맘대로 하니까 된다는 걸 알아버린 거 같은데?"
옆에서 보던 딸이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쌉 T야."
쌉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확실히 T인 거 같다. 와이프도.
와이프는 학교 교사다.
내가 들은 바로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단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아마 학생에게 크게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그들 인생에 큰 터치를 안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반대로 학생에게 지나치게 신경 쓰고 헌신적인 선생님들은 학생과 트러블도 많고 본인도 매우 힘들어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런 선생님들도 와이프에게 상담을 요청하거나 친하게 지낸다. 와이프는 조언은 해주지만 크게 공감은 못 하는 것 같다.
"그냥...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을 텐데..."
채용 공고를 보면 가끔 생각한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인재를 찾습니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춘 분."
그런데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I라던데.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과학자들 대부분도 I라고 한다.
우리는 I들의 성과를 보며 살지만, E가 되라고 요구받는 것 같다.
오늘도 학교에서 돌아온 와이프가 소파에 누워있다.
학생들에게 E로 평가받는 선생님이 오늘도 완전히 방전된 상태다.
"삼겹살 먹으러 갈레?"
내 물음에 딸은 말한다.
"싫어. 오늘은 집에서 쉬고 싶어."
자칭 ENFP인 딸이 외출을 거절하고 엄마 옆에 누웠다.
두 E가 나란히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