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님과 괴수
"어느 교수님 밑에서 하실 건가요?"
얼마 전 한 계약직 연구원이 나를 찾아왔다. 박사 진학을 두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A 교수님이요. 입학하면 미국 무슨 대학 보내준다고 하셨어요."
"어? 미국에서 학위 받는다고요?"
"아니요, 그게 아니고 잠깐 견학 보내준다고..."
어이가 없었다. 그건 여행이지, 혼자 돈 주고 가면 되는 것 아닌가.
"그게 입학 조건인가요? 다른 건요?"
"한 달에 얼마 준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졸업하면 취업 자리도 알아봐 준다고."
인건비 액수도 매력적이지 않고 취업은 불확실한 미래의 이야기였다. 그 연구원은 학부 졸업 후 계약직으로 몇 년 일하며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박사를 해야 하나, 이대로 계약직을 전전해야 하나. 그런 상황에서 교수의 제안은 달콤하게 들렸을 것이다.
"다른 교수님도 알아보았는가요?"
"B 교수님도 있는데... 그분은 좀 빡세다고 소문났어요. 연구 많이 시키고, 논문도 빡세시고."
"그 교수님 제자들은 몇 년 만에 졸업하던가요?"
"대부분 4-5년이요."
"A 교수님 제자들은요?"
"글쎄요... 수료생이 좀 많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주변에서 들었던 '괴수' 같은 교수들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물건을 집어던지는 교수, 과제비를 유용하는 교수, 인건비를 개인 용도로 쓰는 교수, 졸업을 미끼로 금품을 요구하는 교수까지. 처음엔 '대학 교수가 그럴 리 없다'라고 생각하며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런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졸업을 미끼로 학생들을 소모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았다. 학생들은 교수가 무섭기 때문에, 그리고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깝기 때문에 억울함을 참는다. 이미 몇 년을 투자했는데 지금 와서 포기할 수 없다는 심리를 악용하여, 괴수는 학생을 끝없이 소모한다.
한 선배는 7년째 수료만 하고 있었다. "교수님이 안 내보내줘." 졸업 요건은 충족했다. 하지만 교수가 학위 논문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는 부족해. 한 편 더 써." 그렇게 기약 없이 논문만 쓰고 있었다. 그 선배는 이미 30대 중반이었다. 취업은 포기한 지 오래였다.
다른 분은 논문 제1저자를 빼앗겼다. 2년 동안 연구한 결과였다. 논문 초안까지 다 썼다. 그런데 교수가 갑자기 제1저자를 자기 이름으로 바꿨다. "내가 아이디어를 줬으니까 당연하지." 학생은 제2저자가 됐다. 학위 논문으로 쓸 수도 없게 됐다.
"왜 항의 안 하셨어요?"
"했지. 그랬더니 졸업 못 시킨다고 하더라."
그렇게 학생들은 참는다. 교수가 무섭다. 졸업 못 하면 그동안 시간이 아깝다. 이미 몇 년을 투자했는데 지금 포기할 수 없다.
그런데 왜 학생들은 괴수를 피하지 못할까? 교수를 너무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박사과정 때 내 인생 첫 논문을 썼다. 교수님께 메일을 드리고 일주일을 기다렸다. '수준이 낮다고 하면 어떡하지?' 두려웠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전화를 드렸다.
"교수님, 저번 주에 논문을 메일로 드렸는데요. 혹시 검토해 보셨는지 여쭈었습니다."
허무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 논문! 내가 요새 깜빡깜빡하네."
교수님은 깜빡하고 있었다. 너무나 허무했다. 마음 급했던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일주일을 소극적으로 기다리며 낭비한 셈이었다. 석사 때도 비슷했다. 긴 고민 끝에 장문의 메일을 드리면, 교수님의 답장은 "OK" 이런 식이었다. 그런 경험이 몇 번 있은 후, 나는 깨달았다.
'아! 너무 조심스럽게 행동하면 커뮤니케이션이 오히려 막힐 수도 있겠구나!'
그 뒤로는 최대한 간결하게 메일을 드리고, 급한 용무는 전화로 직접 확인했다. 그랬더니 일이 빨라졌다. 교수도 사람이다. 깜빡할 수 있다. 바쁠 수 있다. 이렇게 소극적으로 기다리면, 괴수인지 스승인지 구별도 못한다. 제대로 물어보고 확인해야 진짜 모습이 보인다.
연구소에 있으면 때때로 '대학교수'라는 타이틀을 이용해 눈살 찌푸려지는 행동을 하는 교수들 소식을 듣게 된다. 과제 브로커 역할을 하는 교수, 과제 수탁 후 수고비만 챙기고 나 몰라라 하는 교수, 회의비 카드로 매일 회식하는 교수, 심지어 학생들을 등쳐먹는 교수까지. 기업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끔 얼굴이 다 붉어질 때가 있다. 안타깝게도 알만한 교수님들이 그런 일에 연루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나의 지도교수님은 달랐다. 빡세긴 했다. 교수님께서는 대학원생에게 '직업이 공부'라고 강조하며, 학생들 교육에 대한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그 가르침 덕분에 나 역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건 성장을 위한 '건강한 힘듦'이었다. 어떤 학생들은 대학원을 졸업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했는지 모른 채 학위를 받는 경우를 본다. 그런 학생들을 볼 때마다 나는 참으로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훌륭하신 교수님들 제자들은 대부분 4-5년 만에 졸업했다. 졸업 후 진로도 좋았다. 대학 교수, 연구소, 대기업 등, 모두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었다. 빡세게 배운 만큼, 실력으로 인정받는 것 같았다.
그 계약직 연구원은 결국 B 교수님을 선택했다. "힘들겠지만, 제대로 배우고 싶어요."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그는 박사 3년 차다. 힘들다고 하소연하지만, 논문도 벌써 2편을 냈다. 내년이면 졸업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대학원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몇 가지만 확인해 보면 좋겠다. 그 교수의 제자들 특히 졸업생들에게 교수님 성향과 도덕성, 스타일 등을. 그리고 보통 몇 년 만에 졸업하고 졸업 후 어디로 가는지. 달콤한 말보다 졸업생들이 진실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