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가락들이 닿을 때마다 간지럽다. 비록 쉬고 있는 건반들이 훨씬 더 많지만, 작고 짧아도 힘이 느껴지는 손가락들로 이 아이에게는 내가 꽤나 흥미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와 좀 더 친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집중하는 눈, 약간 내민 입술, 배운 대로 손목을 흔들지 않고 힘을 빼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기특하다. 처음엔 한 손으로 아이돌 노래나 쳐보며 관심을 보이더니 이제는 제대로 된 악보를 펼치고 연습한다. 제 엄마와 닮은 모습이다.
나는 31년 전에 볕이 잘 드는 어느 주택으로 오게 되었다. 아이는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는데 그런대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이의 엄마는 배운 지 몇 달 되지 않은 아이에게 피아노를 사주었다. 그때에도 나는 이미 다른 집에 있다가 나온 피아노였는데 나름대로 최고의 컨디션이었다. 어느 건반 하나 다리를 다친 이가 없고, 울림도 좋다. 그렇게 나는 아이의 집으로 오게 된 것이다.
아이는 나에 대해 단지 1년을 배우고 중학교에 가면서 학원 가기 싫다며 떼를 부렸다. 결국 엄마는 졌고, 아이는 나 대신 컴퓨터 게임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는 나를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았다. 매일같이 악보를 펼쳐 연습을 했다. 아이도 내가 싫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단지 학원보다 집이 더 좋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아이는 'Yanni'를 좋아했다. 바흐, 모차르트, 명곡집, 하농을 친 다음에는 꼭 Yanni의 악보집 한 권을 다 치고 마무리했다. 사정없이 틀리는데도, 아이가 나를 연주할 때마다 엄마는 부엌에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엄마는 어설픈 아이의 손끝에서 내가 만들어 내는 소리를 참 좋아하셨던 것 같다. 한참 연주되고 있자면 아이의 언니가, "야!! 시끄러워!! 그만 쳐, 쫌!!!"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잠시 멈칫했다가 엄마가 언니를 나무라는 소리에 다시 틀려가며 곡을 치곤 했다.
주로 조용히 연주를 했지만 아이는 가끔 일부러 크고 시끄러운 곡을 골라 쾅쾅거리며 연주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아이의 화남과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내게도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었니? 묻지만, 아이는 씩씩거리고 악보도 거세게 넘겨가며 나를 부서져라 치기만 했다. 한참 그러고 나면 어느새 아이도 안정을 찾아갔다. 내가 아이에게 평화를 갖다 주기도 하는구나, 뿌듯했다.
고등학교에 가면서 늦은 밤에나 집에 오는 아이는 평소에 더는 나를 연주할 수 없었다. 어느 날은 바이올린을 들고 왔다. 이제 바이올린을 배우나 보다. 대학에 가면서는 나보다는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나와 만나는 건 바이올린을 조율할 때 건반 한 개씩을 눌러보는 것이 다였다. 나는 그때 아이의 엄마처럼 가만히 사정없이 틀리는 아이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다. 넌 그냥 다 틀리는구나. ㅎㅎ~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한참을 보이지 않았다. 가끔 아이가 엄마 집에 올 때만 나를 연주했다. 반가웠다. 나를 아예 잊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더 한참 후에 나는 드디어 아이가 사는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거실의 큰 통창 밖으로 멋들어진 소나무들이 집 전체를 아늑하게 꾸며주고 있었다. 아이의 집에는 아이의 아이들이 있었다. 엄마가 된 아이는 자신의 아이에게 나에 대해 가르쳐주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의 OST나 아이가 연주해 달라는 동요를 연주하기도 했다. 전에 잘 치던 야니의 곡들도 다시 쳐보곤 했다. 나는, 정말 좋았다. 그동안 어디 갔었던 거니. 정말 반갑다, 아이야.
엄마가 된 나의 아이가 자신의 8살 된 아이에게 '짐노페디'의 오른손 위치를 알려주고 자신은 왼손을 담당하며 같이 연주를 한 적이 있었다. 아이의 아이는 그때 큰 감동을 느꼈던 것을 나는 안다. 엄마가 된 나의 아이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아이는 제 엄마가 없을 때에도 연습을 반복하며 혼자 즐거워했던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나를 조금 더 일찍 배운 큰 아이가 나를 연주하면, 제 엄마가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누구 하나 끝까지 제대로 하는 사람 없지만 다들 즐거워 보인다.
나의 작았던 아이, 또 그 아이의 작은 아이가 나와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내게도 큰 기쁨이다. 다행히 나의 아이가 꾸준히 나를 관리해 준 덕분에 나는 아직도 처음 아이의 집에 왔을 때처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이집 통창 앞 나무에 언젠가부터 못보던 새 한 마리가 짹짹거리며 자주 드나든다. 통창 밖으로 보이는 이 동네에는 학교도 있고 아파트도 있고 사람도, 새도 많다. 또 새들이 자주 드나들 수 있는 은행나무, 소나무, 벚꽃나무도 있다. 평화로운 딸과 엄마의 연주에, 짹짹이는 새의 노래는 참 잘 어울린다. 요즘 거실의 창 앞에 자주 와서 지저귀는 새의 노래는 특히나 그렇다. 노래를 잘하는 새인 것 같다.
"엄마, 나 체르니 들어간데~!! 피아노 시작한 지 7개월 됐는데 체르니 한다고 선생님이 잘한데!"
"오와~! 정말?!!!! 지~인짜 대단하네~!!! 매일 연습하더니 잘했어~ 고생했어!! 우리 딸~~!!"
아이는 내가 퇴근하자마자 기쁜 소식을 알린다. 매일같이 집에서도 연습하더니, 노력의 결과에 매우 뿌듯해한다.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던 10살 아이는 딱 하나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우리 집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던 내 피아노. 엄마가 죄다 틀려가며 피아노를 치는 모습일지라도 아이는 그 모습에 자연히 관심이 생긴 것 같다. 엄마가 잘 못 쳐서 더 잘 치고 싶다고 생각했을까?ㅎㅎ.
내가 12살 때 가정주부였던 엄마는 내게 피아노를 사주고 싶었다. 외벌이에 삼 남매를 키우며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엄마는 두 달 바짝 일을 하여 중고 피아노를 내게 안겨 주셨다. 지금의 중고 피아노 가격과 크게 차이가 없었던 걸 보면 중고였지만 상태가 매우 좋았던 것 같다. 중학교에 가면서 하교시간이 늦어지자 나는 학원을 다니기가 싫어졌다. 엄마는 평소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게 두는 편이었는데, 그때만큼은 나를 길게 설득하는 모습이었다. 나보다 엄마가 더 피아노를 좋아했던 것 같다. 나도 피아노가 싫은 건 아니어서 매일같이 연습은 이어갔다.
결혼을 하면서 가난해진 나는 신혼 때 좁은 집에 살 수밖에 없었다. 내 집에 내 피아노를 가져올 수가 없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성실함으로 살림이 조금씩 나아지자 나는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고, 결혼 후 7년 만에 비로소 내 피아노를 내 집으로 가지고 올 수가 있었다. 피아노는 나와 아이에게 좋은 취미이자 부드러운 솜베개가 되어 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잘은 못 하지만 참 즐겁다. 서로 완벽하지 않아 더 즐겁다. 즐거울 때도 치지만 화가 날 때도 피아노를 쳐보라고 아이들에게 권하기도 한다. 너희에게 솜베개가 되어줄 거야. 나도 그랬으니까,라고.
최근에 피아노를 칠 때면 창 밖에서 뭘 안다는 듯 지저귀는 새가 나타났다. 그다지 듣기 좋은 목소리는 아닌데 자주 온다. 노래에 자신 있는 새인 것 같다. 그래 같이 하자. 우리는 손가락으로, 너는 너의 성대로. 다 같이 즐거우면 됐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