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부모님을 만날 수 있는 횟수, 80번

깨달음은 흐려지고, 결심은 옅어진다

by 딸깍공방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시간을 다르게 보게 됐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나는 몇 살이지. 대학에 가면, 결혼하면. 부모가 되면 자연스럽게 앞을 세게 된다. 그런데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시선이 어느 순간 반대쪽으로 돌아간다. 이 아이가 스무 살이 될 때, 우리 부모님은 그때 몇 살이시지.


부모님은 제천에 사신다. 서울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멀다고 하기엔 애매하고 가깝다고 하기엔 자주 갈 수 없는 거리.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손주를 보러 자주 오시는 편이긴 한데, 자주라고 해봤자 두 달에 한 번 정도다. 보통 분기에 한 번 만난다고 하면 1년에 네 번 뵐 수 있을 거다.


1년에 4번이면 넉넉한 숫자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걸 곱셈으로 바꿔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모님이 앞으로 20년을 더 건강하시다고 치자. 아주 긍정적으로 잡아서. 20년 곱하기 4번이면, 80번이다. 앞으로 부모님을 만날 수 있는 횟수가 80번. 순간 숫자가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80번이면 적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반대 방향으로도 계산을 해봤다.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18년. 그동안은 거의 매일 부모님 얼굴을 봤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기 계셨고, 밥 먹을 때도 계셨고, 자기 전에도 계셨다. 18년 곱하기 365일이면 대략 6,500번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난 뒤로는 대학, 취업, 결혼. 만남의 빈도가 한없이 떨어졌다. 계산해보면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의 90%는 고등학교 졸업 전에 이미 끝나 있었다.


02-image02.png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런 생각 자체를 안 했다. 부모님은 늘 거기 계셨고, 명절에 가면 늘 반겨주셨고, 전화하면 늘 받으셨다. 그게 언젠가 끝난다는 걸 모른 건 아니다. 알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아기를 안고 앞을 내다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뒤도 보이기 시작했고, 뒤에 남아있는 시간이 너무 적었다.


문제는 이렇게 깨달아도 잊는다는 거다. 소중한 걸 잊는다. 매번 그렇다. 한 번 먹먹해하고, 잠깐 전화 한 통 하고, 다음 날이면 또 일상이다. 아기 돌보고, 일하고, 지치고, 자고. 두 달쯤 지나서 부모님이 오시면 그제야 "아, 오랜만이다" 하고 반긴다. 잠시 뿐이다. 소중하다는 걸 기억하는 시간은.


그리고 어렵게 찾아오신 부모님 앞에서 나는 뭘 하냐면, 잔소리를 한다. "왜 이렇게 짜게 드세요." "병원은 다녀오셨어요?" "그건 왜 또 사셨어." 80번 남은 만남 중 하나를 쓰면서 나는 나무라고 툴툴댄다. 소중한 줄 알면서. 매번 만나고 나서 후회하면서. 또 그런다.


잊지 않는 장치가 필요했다. 깨달음이라는 건 그냥 두면 흐려지고, 결심이라는 건 시간이 지나면 옅어진다. 한 번 계산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매일 눈에 보여야 했다. 부모님 나이를 넣고, 만나는 빈도를 넣으면, 남은 만남 횟수가 숫자로 뜬다. 단순한 산수다. 하지만 그 단순한 산수의 결과가 화면에 찍히는 순간, 그냥 숫자가 아니게 된다.


다음에 부모님이 오시면 툴툴대지 말아야지, 하고 또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 또 그럴 거다. "왜 이렇게 짜게 드세요" 하고 또 할 거다. 하지만 숫자를 보고 나면 전화를 한 번 더 하게 되고, 잔소리 끝에 "건강하세요"를 한 번 더 붙이게 된다. 깨달음을 잊지 않는 것과, 한 번 깨닫고 흘려보내는 것 사이의 차이는 아마 그 한 번의 전화일 거다.



부모님과의 남은 만남 횟수, 직접 계산해볼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일상에서 아이템을 발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