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자, 고독!

진실로, 모여서 공허하느니 혼자서 충만한 게 낫다. 앤서니 스토는 <고독의 위로>에서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인간관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혼자서만 느낄 수 있는 충족감도 필요하다. 주변에 친구와 지인이 있고 또 자신에게 중요한 일에 열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독은 관계 맺기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독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혼자인 시간이 관계를 맺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고독에 침잠해봐야 진정한 환대를 그리워하게 되고, 상대를 진심으로 환대하게 된다.

그러므로 고독도 능력이다. 창의력만 있다고 창의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창의력에는 고독이 깔려야 한다. 사실 창의력이 있는 사람이 고독하기란 쉽지 않다. 창의력은 은근히 사람들을 모은다. 하지만 늘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창의력은 차츰 소비될 뿐이다. 자신을 홀로 둘 줄 알아야만 '뭔가'를 이룰 수 있다. 그러니 고독도 능력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소설가 토마스 드 퀸시도 그랬다. "자신의 인생을 고독으로 다채롭게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면 지성이라는 능력도 펼쳐보이지 못할 것"이라고.

- 책 <모든 순간의 인문학> p. 157, 158




그렇다. 홀로 있는, 타인의 부재 상태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 같다. 타인과 함께함에도 허전하고 쓸쓸하다고 느끼는 것은 외로움이다. 반면, 홀로 있어도 충만한 감정이 들고, 오히려 창의력을 발휘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늘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공존해야만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 중에는 홀로 남았을 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어찌됐든 사람은 홀로의 상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혼자의 시간을 즐길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특정한 활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어떠한 활동을 하는 것이 혼자의 시간을 충만하게 보내는 데에는 더 좋다.

드 퀸시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자신의 인생을 고독으로 다채롭게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면 지성이라는 능력도 펼쳐보이지 못할 것. 그렇다. 혼자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면, 타인과의 시간에서도, 공존함에도 불구하고 외로울 때는 관계의 아픔 때문에 더 자신을 옥죌 것이 분명하다. 홀로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법. 누구나 할 수 있다. 사실, 고독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시도도 안해봤을 뿐더러, 공존의 시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지 말자. 먼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한다면 지나친 눈치 때문에 마음 졸일 일도 없다. 여지껏 혼자의 시간을 즐기지 못했다면, 이제 조금씩이라도 시도해보자. 좋아하는 영화가 개봉했거나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면, 보다 그 속에 집중할 수 있도록 혼자 나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