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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는 국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능동적 실천이다

국회도서관 월간 매거진 '월간 국회도서관' 2024년 4월호에 '글로벌 선거의 해'를 맞아 투표의식에 대한 글을 기고했습니다. 영화 <스윙보트>를 소개하며 '한 표의 중요성'에 대해 적어봤습니다. 국회도서관에서 혹시 매거진을 발견하신다면 저의 글에 관심 부탁드립니다. :)


※본 글은 '국회도서관'에 귀속되어 있습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투표권은 선거일 기준 18세 이상의 국민, 즉 2006년 4월 11일에 태어난 사람까지 갖고 있다.


투표는 국민으로서 합법적으로 행할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권리다. 민주주의 역사가 시작된 후로 유권자의 선택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정치적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발생하면서 참정을 외면하는 상황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그린 대표적인 영화가 2012년작 <스윙 보트(Swing Vote)>다. 마음이 흔들린다는 뜻의 ‘스윙보트’는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없는 부동층을 가리킨다. 이런 유권자를 ‘스윙보터(Swing Voter)’라 부르는데, 이들은 선거 당시의 정치상황이나 관심있는 정책, 사회 분위기 등에 휩쓸리듯 투표한다. 영화 속 주인공 ‘버드 존슨’은 뉴멕시코주의 작은 도시 텍시코에서 12살 딸 ‘몰리’와 살아가는 싱글 대디로, 퇴근 후 맥주를 마시는 게 유일한 낙인 사람이다. 버드에게 투표는 의미 없는 것이다. “투표는 중요한 사회적 약속이랬어”라 말하는 몰리에게 “투표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우리가 주인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지만 어차피 누구를 뽑아 놔도 보험료는 안 내려갈 거고 너 병 나면 아빠는 가서 피 팔아야 돼”라 말하는 관념을 갖고 있다. 버드는 참정의 의지도, 지지하는 정당도 없다.



그에 반해 몰리는 훌륭한 정치의식을 갖고 있다. “모든 문명 사회들은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속박에서 자유로, 자유에서 풍요로, 풍요에서 만족으로, 만족에서 무관심으로, 무관심에서 다시 속박으로. 이런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과거를 잊으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몰리의 과제 발표문이다. 자유와 풍요를 얻은 국가에서 귀속된 상당수의 국민들은 정치에 참여하기를 외면한다. 몰리의 대사는 정치에 관심을 쏟지 않으면 애써 얻어 누려왔던 것들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간은 공동체, 즉 사회와 국가에 귀속된 존재다. 동물도 공동체를 이룬다는 점에서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그들에게는 정치가 필요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정치가 필요하다. 많은 시간을 거쳐 인간은 진보와 발전을 거듭했고 훌륭한 옛것은 계승해 잇고 있다. 그러나 개와 개미의 세계는 스스로 진화한 역사가 없다. 단지 환경에 의한 물리적인 진화만 했을 뿐이다. 인간이 지금과 같이 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문화와 사회적 변화가 거듭했기 때문이다. 이 변화의 기저에는 개인의 행동에 대한 불확실성과 자유가 있다. 인간관계에서는 이미 결정된 것이란 없으며 모든 합의는 당사자들에 의해서만 해결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은 질서와 규율 없이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규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또 기존의 규율을 바탕으로 현대와 미래에 걸맞은 규율을 생각해야만 한다.


사회는 조직화되고 질서가 갖춰진 곳에서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과 필요성에 의해 탄생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인간은 기술을 이용해 물건을 생산하게 되는데 이는 분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여기에서의 분업은 인간에게 필요한 물품의 교환과 더불어 관계의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바른 관계를 형성할 줄 모르는 인간은 타인에게 끊임없이 피해를 준다. 이러한 혼란을 잠재우는 것이 규율과 정치이고, 그래서 공동의 삶을 조직하는 정치가를 선출해야 하는 것이다.


모두가 잘 사는 국가를 지향한다면 투표는 불가피하다. 장 자크 루소의 “모두의 이익 실현을 위한 공공의 의무가 시민들의 주된 관심사에서 멀어지기 시작하면 국가는 파멸의 길로 접어든다”는 말처럼 국가의 구성원이 규율을 지킨 것이 사회를 존속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법률과 규범의 중요성을 잊은 채 정치를 ‘권력’ 혹은 ‘특정 집단에게만 유리한 것’이라 치부한다. <스윙 보트>의 버드처럼 말이다.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법률과 규범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수 강자의 힘과 영향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의 잠재성을 꽃피우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윙 보트>는 버드와 같은 정치적 사고를 가진 이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영화는 ‘버드의 한 표가 대통령을 결정한다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한 표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황은 이렇다. 대선 결과가 무승부를 기록한 상황. 선거 시스템 오작동으로 버드의 표가 무효 처리되어 10일 뒤 버드 홀로 재투표를 해야 한다. 버드의 표를 얻기 위해 민주당과 공화당 각 후보는 ‘버드만을 위한 선거 캠페인’을 펼친다. 스타일의 차이는 있지만 두 후보 모두 버드의 취향과 관심사를 파악해 인간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뇌물공세와 마음에도 없는 아첨이 난무하지만, 후보자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승리를 위해서는 국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국민의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10일 동안 버드는 평생 경험하지 못한 초특급 대우와 온 국민의 주목을 받는 유명인사가 된다. 철없는 버드는 일장춘몽 같은 상황을 즐기는 데 취해 있지만, 투표 전날 토론회가 열린다는 것을 깨닫고 후보자들에게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고민에 빠진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어떤 기준으로 투표할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후보자들을 향한 질문을 정하기 위해 버드는 몰리와 함께 전국에서 도착한 편지들을 읽고 분석한다. 그리고는 토론회장에서 한 사람의 편지를 읽는다.


“저희는 딸 셋의 부부입니다. 서로 두 개씩 일해도 생활이 빠듯하기만 해요. 허리가 휘도록 일해도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고, 아이가 병이라도 나면 어쩌나 싶어 겁이 덜컥 납니다. 나라는 잘 사는데, 왜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기 힘든 걸까요?”


이어 이상적인 정치인의 모습을 말한다. “내일 뽑히게 될 대통령은 단순히 백악관의 빈자리를 채울 사람이 아니라 말이 아닌 행동을 보여줄 분이어야 합니다. 대통령은 그런 분이라고 배웠으니까요. 미국은 큰 생각을 가진 거인 같은 대통령이 필요합니다. 분별 있게 우리 앞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지혜롭게 미국과 세계를 평화로 이끌어 줄 대통령이요.”


<스윙 보트>는 정치에 무심하고 투표의 실효성에 시큰둥했던 버드의 성장과정을 보여준다. 처음 버드의 모습은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국민들이 스윙보터이거나 정치에 깊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버드의 대사처럼 자리만 꿰차는 것이 아닌 행동해야 하는 정치인을 바란다면, 우리 역시 국민다운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투표가 의무는 아니다. 하지만 더 나은 국가를 바란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성찰해야 한다.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경제 및 금전적인 문제의 이면에는 정치적 선택이 있다는 사실이다. 무지의 베일을 쓴 채 더 이상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질서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현상을 당연시하는 것은 정치를 죽이는 것과 같다. 사회현상은 비만 오게 해달라는 마음 속 기원이 아닌 국민의 결정과 합의에 의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버드의 한 표가 미국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처럼 나의 한 표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루소는 ‘정치란, 인간 세계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상이 붕괴되는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우리의 선택은 어떠한 의미도, 힘도 없을 것이다. 고찰과 논의, 인간의 행동으로 모든 것을 단번에 새롭게 바꿀 수는 없지만, 정치의 전제는 여러 가지 상황의 흐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고 바꿀 수 있다’는 것에 근원을 둔다. 따라서 ‘내 한 표쯤이야’라는 생각이 아닌 ‘내가 원하는 길을 위한 능동적인 실천’이라는 생각으로 투표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국회의원에 투표해야 할까. 루소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가 아니며 따라서 국민을 대표할 수 없다. 국회의원은 단지 법이 정한 바를 실현하는 국민의 대리인일 뿐이다”라 말했다. 국민을 대신해 일하고, 국가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정치인을 택해야 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의식 있는 국민’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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