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로부터 시사회 초대 및 소정의 고료를 받았습니다.
세 가족의 만남을 보며 느낀 착잡하고도 씁쓸한 감정... 혀를 차다가도 공감되는 장면에서 '아' 하는 외마디를 내뱉기도 한 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를 시사회로 먼저 관람했다.
영화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 동북부를 배경으로 한 '파더'는 아버지 집을 방문하러 가는 중년 남매의 모습을 그린다. 남매도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다. 차 안에서 나누는 둘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버지는 금전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한 집 마당에는 낡아빠진 고물 트럭이 놓여있다. 집 안에는 오래된 가구들이 즐비하고, 어딘가에서 물도 새는 것 같다. 좋게 말해 '코지'한 집. 세 사람은 차를 마시며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하지만 쉽지 않다. 의무적으로 해대는 안부 묻기와 어색한 칭찬이 오가고, 세 사람은 적당히 시간을 때운 뒤 헤어진다.
오랫동안 미뤄온 숙제를 해치운 듯한 남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누나 에밀리는 아버지가 차고 있던 롤렉스 시계가 진짜라고 말하고, 두 사람은 아버지의 형편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걸 짐작한다. 그 동안 알고 있었던 아버지의 모습과는 다른 현실을 깨닫고 안심(?)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비춰진다. 자녀가 떠나자마자 수트를 쫙 빼입고 연인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은 후, 트럭 대신 감춰둔(?) 세단을 타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쓴웃음을 짓게 한다. 가족이란 얼마나 가깝고도 먼 관계인지 확인할 수 있는 에피소드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왜 아들에게 형편이 어렵다며 도움을 구하는 연락을 했을까? 관심 받고 싶어서였을까?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어찌됐든 각자 그런대로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적당한 비밀이 관계 유지의 필요 조건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연히 같은 톤의 상의를 입은 모습에서 '피는 못 속인다'는 소소한 재미도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야기 '마더'의 상황도 '파더'와 비슷하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자매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어머니의 집을 찾는다. 이 자매는 1부의 남매보다 더 안 친해보인다. 언니 티모시는 고물차를 끌고 오다 사고를 겪고, 동생 릴리스는 친구의 차를 타고 즐겁게 어머니의 집으로 향한다. 세 사람은 일년에 한 번 티타임을 가지는 정도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완벽하게 세팅된 테이블에서 어색한 대화와 미소만 오가는 분위기. 약속이라도 한듯 붉은색 의상을 맞춰 입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원해보이는 관계다. 겉핥기 식의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차만 홀짝이는 모습이 관객마저 숨막히게 만든다. 이 가족은 끝까지 어색한 감정선을 유지한다. 데려다주겠다는 언니의 제안을 거절하고 어머니에게 택시를 불러달라는 릴리스의 유일하게 정적을 깨는 포인트! 겉보기엔 릴리스가 철부지 같아보이지만, 정작 어머니는 티모시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 자유분방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둘째와 달리, 첫째의 삶은 '경직' 그 자체다. 타인의 눈치를 살피고 흐트러짐 없이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마냥 불편해보인다.
티모시의 모습은 이 가족의 형태를 고스란히 대변한다. 적당한 선(예의)를 지키려 서로의 눈치를 보는 풍경이 피곤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를 마음 속 깊이 위하고,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이 또한 가족의 한 형태라는 걸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 번째 '시스터 브라더'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부모를 잃은 쌍둥이 남매의 만남을 그린다. 남매는 차 안, 카페, 부모의 집을 오가며 깊은 대화를 나눈다. 앞선 두 이야기와 달리, 3화의 남매는 우애가 깊다. 두 사람은 부모의 유품을 정리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짜 면허증을 수십 개 만들었고, 혼인신고도 제대로 안했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남매가 기억하는 부모의 모습은 꽤나 또렷하다.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하는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1, 2부가 비슷한 가족의 초상을 보여줬다면 3부는 조금 다르다. 마치 1, 2부의 결말 같다. 1, 2부의 인물들이 3부의 상황에 처한다면 3부의 남매와 같은 대화를 나누지 않을까 싶다.
세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가족의 모습을 다루지만 관통하는 요소가 있다. 장소와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 마음을 훅 빼앗기고 만다. 세 이야기 모두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 장면에서 부모를 향한 솔직한 감정이 드러나는데, 내가 동생의 차를 타고 부모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 오버랩돼서 흥미로웠다.
모든 이야기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바로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과 하이앵글로 음료를 마시는(짐 자무쉬 감독의 시그니처, <커피와 담배>를 연상케 하는) 장면을 비추는 신이다. 이 장면들은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인 동시에, 과거의 한 때를 회상하게도 만든다. 이 장면들은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가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뤘다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1, 2부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Bob's your uncle(밥이 네 삼촌이다)'라는 대사! 이는 '간단하고 쉽게 해결되는 일'을 뜻하는 관용구다. 별 거 아닌 세상사처럼, 가족 관계 역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대개 가족 관계를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라 여기지만, 사실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네 가정을 한번 돌아보자. 물론 온 마음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다정함이 일상이 된 가정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집도 많을 거다. 혈연으로 엮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한 사이다. 친구나 연인은 택할 수 있지만 가족은 택할 수 없으니까.
짐 자무쉬 감독이 연출, 각본, 음악을 맡은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베니스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가족의 정의를 담담하지만 따듯한 시선으로 그린, 여운이 오래 가는 작품이다. 지금, 가족 간의 관계가 소원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꼭! 관람하길 추천한다.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