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을 것이 있어야 온다

by 조영의

어머님 산소에 꽃이 바뀌었다. 셋째 시누이가 한 일이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조화(弔花)는 딸의 마음이다. 벌초를 잘 했나 갔다 온 남편은 꽃이 노란색이라고만 했다. 추석이 다가오니 새 꽃으로 바꿨으려니 했는데 성묘가서 보니 생화다.

요즘 비가 오지 않아 꽃을 심고 엎은 흙은 갈라지고 꽃도 몇 송이 까맣게 말라갔다. 생수로 가져온 물을 꽃에 흠뻑 주고 나니 먹을 물이 부족했다. 올해 추석은 빨라서 오후는 여름과 같다. 잔디를 잘 깎아놓은 넓은 산에서 아이들은 뛰어 다니다 물을 찾고, 어른들은 그늘을 피해 앉았지만 물 생각이 간절하다. 모두 눈치만 보는데 어머님 산소 황토만 물을 머금어 더 붉고 빛난다. 꽃은 생기를 얻었으나 사람들은 마른침만 삼켰다.

남편의 심기는 그때부터 불편했다. 산 속에 꽃이 무슨 소용이냐며 눈치를 주면서도 어머님 산소이니 내놓고 말은 못하고 괜한 트집만 잡았다. 그래도 나는 속으로 꽃에 물 준 것이 잘했다 싶어 곁눈질로 살폈다. 소국인데 산소와 잘 어울린다. 꽃이 활짝 피면 벌도 나비도 놀러 올지 모른다. 햇빛도 쉬어가고 바람도 노래가 되겠지. 적막한 산속에 국화꽃은 아름답고 따뜻한 풍경이 되어 줄 것이다.

그 후 꽃에 물을 주러 산소에 간다. 남편은 생전에 잘 했어야지 국화가 뭐 그리 대단하냐며 마뜩찮아 하면서도 따라나서는 속마음을 나는 안다. 산소 주변에 밤나무가 있다. 키가 작고 평편한 곳이라 줍기가 수월하다. 처음에는 영글지 않아 몇 알만 주웠는데 밤송이가 열리면서 차츰 많아졌다. 가끔은 우둑우둑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기도 하고 산 냄새에 취해보는 여유도 갖는다. 우리 부부는 평소 잘 다투는 편이지만 밤을 줍는 시간은 한 마음이 된다. 가시에 찔릴까 서로 살펴주고 풀이 무성한 곳은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마음 써준다. 이젠 꽃의 물은 핑계가 되었고 밤 줍는 재미에만 집중한다.

바람이 땀을 씻어주며 지난다. 잠자리도 낮게 날고 풀도 순해져서 부드럽다. 여기저기 곤충들이 튀는 소리도 정겹다. 볕쬐기 좋은 계절이다. 어머님 산소에 앉아 쉬어본다.

생각해보면 어머님과 정겨운 시간은 많지 않았다. 맏며느리인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어머님은 만나면 서운한 감정부터 말문을 열었다. 가끔은 같은 말이 반복되기도 했는데 듣기 싫었다. 일부러 말머리를 돌리기도 하고 일을 찾아 일어서면 그런 내 행동까지 미움이 되었다.

암 진단을 받고 돌아가시기까지는 짧은 시간이었다. 영원한 이별 앞에 어머님과 나는 서로가 서로한테 용서가 되었다. 병실이지만 안방인양 편안한 대화를 나눴다. 마음을 열어놓으니 상처의 흔적도 사라졌다. 좀 더 일찍 서로를 이해하려고 했다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그리움이 밀려온다. 보고 싶어 눈길이 꽃에 머문다.

지금까지 산소는 의무처럼 왔다 가는 짧은 발걸음이었다. 그러나 얻을 것이 있으니 자주 찾게 되고, 생각이긴 하지만 지난 일에서 어긋났던 대화를 바꿔보면 상대방을 이해하게 된다. 마음도 후련해진다.

사는 모습도 같다. 얻을 것이 있으면 움직인다. 원하는 것을 사기 위해 긴 대기 줄의 기다림도 지루하지 않고, 고향으로 향하는 교통체증의 귀성길도 견딜 수 있다. 얻는 것이 주관적인 물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밤나무 아래서 얻은 생각도 나를 성숙시켰다. 오늘따라 밤나무가 더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