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을 일이 없다. 목젖이 드러나도록 호탕하게 웃어본 적이 언제인가 싶다. 웃지 않고 살다 보니 웃음조차 생소한 것은 나만 느끼는 생각일까. 사회적 거리두기를 2년째 지속하면서 만남의 폭이 좁아지니 대화할 사람도 없고 전화 통화로는 웃음의 의미가 다르다. 웃음도 마주 보며 시원하게 웃어야 즐거움을 느끼고 행복하며 스트레스도 풀린다.
모 방송국에서는 개그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소제가 신선하지 못하고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여 시청률 하락이 원인이라고 한다. 시청자 입장에서 나는 폐지된 개그 프로그램이 아쉽기만 하다. 가끔은 억지로 따라 웃는 쓴웃음일지라도 잠시 복잡한 일상을 잊을 수 있어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유머는 흐른다는 또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상대가 웃길 때 반응하는 것도 유머에 속한다. 나는 감성은 풍부한테 감정은 건조한 편이다. 슬픈 일에 공감하여 울지 못하고 웃음도 냉소적이다. 누군가 곁에 있으면 눈치 보느라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드라마나 영화를 혼자 볼 때는 솔직한가, 그렇지도 않다. 소리 내어 웃지 않고 슬픈 장면인데도 울지 못한다. 그래서 반응이 솔직하고 적극적인 사람이 부럽기도 하고 좋다. 상황의 몰입이 늦고 감정 전달이 한 템포 느리다 보니 쌀쌀맞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 편이다.
고 개그맨 김형곤 씨는‘웃음의 날’을 제정하자고 한 적 있다.‘웃음의 날’은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이 있는 사람에게 꽃이나 책을 선물하면서 화해하고 웃어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일회성 캠페인으로 끝났다. 당시만 해도‘웃음’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여 관심 두지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는 지금, 웃음의 날을 다시 제정하자고 하면 반응이 어떨까.
웃음은 건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면역력이 증진되고 우울감이 감소한다. 폐활량도 좋아지고 소화기능도 향상된다고 한다. 다이어트 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억지로라도 웃어야 할 것 같다.
요즘 별안간 눈이 나빠진 것을 느낀다. 컴퓨터에서 작업할 때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노안이라 생각하며 견디는데 내 서류나 원고를 받는 상대에게 잦은 실수는 단점으로 굳어진다.
최근 일이다. 성인 대상 글쓰기 프로그램을 올해는 화상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다.‘제목 붙이기’란 주제로 수업하는 날, 독자는 제목을 보고 어떤 방향으로 이해하는지 궁금했다. 수필 전문지에 실린 작품의 제목을 임의로 뽑아 제목만 보고 읽고 싶은 것을 꼽으라고 했다. 의견이 분분했다.‘술숲’ 제목 때문이었다. 의아하고 궁금하다는 것이다. 술숲? 이란 말에 아뜩했다.‘솔숲’이라고 썼다고 생각했는데 활자는‘술숲’으로 되어 있었다. 내 실수로 술숲으로 변한 글이 으뜸으로 뽑혔다.
또 다른 실수는 작품을 읽으면서 확인되었다.‘長毋相忘’이‘長母相忘’으로 한자표기를 잘못해놓아서 버금으로 뽑힌 글은‘毋’를‘母’로 읽고 소개했다. 반복된 실수에도 한자 공부를 해서 의미 있고 오랜만에 재미있게 웃었다며 부끄러운 내 마음을 덮어주었다. 또 즐거운 수업 분위기를 위한 전략적 유머였다고까지 비유했다.
한동안 단톡방에서는 다양한 웃음 이모티콘을 주고받는 소리로 소란했다. 뒤센 미소는 진짜 기쁨과 행복으로부터 나타나는 웃음을 말한다. 실수를 덮어준 웃음과 이모티콘이 고마우면서도 무게감으로 그날도 나는 웃지 못했다.
그래도 실수의 눈(目)으로 본 글이 소재가 되어 웃음도 주고 글도 쓰고 있으니 참 고마운 일이다.‘長毋相忘’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보다 의미 있는 글이 있을까. 잊지 말고 서로 기억하기를, 내 마음의 답으로 보낸‘長毋相忘’이 母로 보내지 않았을까 불안하면서도 실수를 이해할 거라고 믿으니 노안은 답답한 것만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눈(目)이 마음이란 것을 다시 느낀 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