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헌신했던 전남친, 여친이 생겼다

전 두산베어스 감독 현 롯데자이언츠 감독

by 띵수

2023.10.16.



생각해 보면 난 연애를 꽤 많이 해봤다. 20대~현재 나의 연애에 대해 소회 해보면 사귀다가도 아니면 칼같이 잘라냈고, 연애가 나에게 해롭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차츰 정리했다. 어쩌면 생각보다 정없는 차가운 성격이 지금의 연애 커리어를 만드는 데 한 몫했다. (지금도 차갑지만... 그래도 내 사람들한테는 꽤 많이 좋아진 듯)


하지만 연애를 오래 해본 경험이 있어야 나름 '정상인' 취급을 받는 이 연애 시장에서 어쩌면 나의 커리어는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면접을 보러 갔는데 이직을 너무 많이한 이력으로 인해 "쉽게 질리는 타입인가 봐요?"라고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말이다. (실제 이야기임)


그렇지만 내 가치관은 존버보다는 너무 힘들다면 버티지 않는 쪽을 택하는 지라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나도 연애하면 꽤 최선을 다하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아무튼 연애를 많이 해보면서 느낀 거는 '와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구나'이다. 다양한 직업, 성격, 취향, 가치관 등을 접할 수 있어 시야가 넓어졌지만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는 안 좋게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지난 연애를 친한 동생에게 함께 돌아보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고, 그 친구가 나에게 해줬던 이야기가 있다.


"똥차 가면 벤츠 오는 거죠"


미안하지만 동생아 나는 그 말을 잘 안 믿는단다... 마치 벤츠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똥차였거나. 똥차 가고 벤츠올 줄 알았지만 리어카가 왔었거든.


벤츠인 줄 알았는데 똥차였고, 똥차가 가면 리어카가 올 수도 있다! 이 이론은 두산 베어스 감독의 역사와도 닮아있다.


2000년 초반부터 2010년대까지 두산 베어스 감독은 '김경문'이었다. OB 베어스의 포수로 활약했던 그는 선수들을 정말 맹훈련을 시키기로 유명했다. (선발 팔 갈아쓴 건 할말이 없다만ㅋ) 당시 학생이었어서 야구를 매일 보지는 못해 김경문의 야구 스타일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매해 가을야구를 갔지만, 결정적일 때마다 김경문의 소인배적인 판단으로 두산은 우승 트로피를 쟁취하지 못하는 아주 안타까운 팀이었다는 것. 번번이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한테 고배를 마셨다는 것. 그래도 그 시절, 두산하면 '발야구'라는 팀컬러를 자리 잡게한 일등 공신이었고 솔직히 강팀으로 만들어준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래. 나도 그래서 김경문 감독이 그래도 벤츠인 줄 알았지! 웬 걸? 2011년, 두산이 안팎으로 논란이 많았을 때 나락을 갔었고, 김경문 감독은 자진사퇴를 했다. 당시에 "어떤 팀에서도 오퍼 받은 적 없다"라고 호언장담했지만, NC 다이노스 감독으로 부임하셨고^^ 시즌 중에 두산 코치진들을 빼갔다. 두산팬 입장에서는 당연히 똥차였다고 생각하겠죠?


2011년 시즌을 말아먹고, 2012~2013년에는 OB 베어스의 투수였던 김진욱이 두산의 사령탑을 맡았다. 두산의 약점이었던 선발을 키운 1등 공신이었지만, 2012년도에 준플레이오프를 거하게 말아 드셔서 여론이 안 좋았었다. (진짜 열받아서 한 달 내내 화나있었음) 그래도 그 경험치가 쌓여서 13년도 무난?하게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손만 살짝 뻗으면 팬들이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우승에 다가갈 수 있었다. 심지어 팀전력도 나쁘지 않았는데, 없었던 게 있었지. 김진욱 감독의 한 끗. 그 뭐랄까.. 한 끗이.. 없었다. 당시 프런트는 승부사 기질이 없다고 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물론 그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붙었던 삼성 라이온즈 전력이 너무 막강했다)


프런트는 많이 실망했는지 김진욱 감독을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경질시켰다. 똥차를.. 재빨리 손절한 것이다. 그리고 취임한 감독이 송. 일. 수. 감. 독ㅋ(하 생각하기도 싫다) 송일수 감독은 나에겐, 그리고 두산팬들에게는 리어카였다.


2014년 정규시즌 끝나자마자 두산베어스 갤러리에 올라온 글.jpg 보면서 진짜 제발 송일수 감독이 짤리기를 기도했었던 기억이..


성적을 못 내서가 아니고 베어스의 색깔을 전부 지워버린 게 나에게는 제일 큰 충격이자 분노였다. 어쩌면 이따위로 야구를 할 수 있지 싶었다. 오죽했으면 야구에 미쳐있는 내가 2014년 6월 이후로 야구를 끊었다. 이때 야구를 끊으면서 아 나도 야구를 끊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를 처음으로 느꼈지 아마.


야구를 잊고 살 때, 내 심장이 다시.. 뛰게 했던 기사가 보도됐으니..


그렇다. OB 베어스의 포수였던 김태형이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 것이다. 이때는 송일수만 아니면 된다고 염불을 외치던 때. 난 오피셜이 뜨자마자 학교 복도에서 가방을 돌리며 세리머니를 했던 기억이 있다. (대학 친구들은 야구를 아무도 안 보는데 날 볼 때마다 미친 사람 같다고 했었다) 아무튼 너무 좋았던 나머지 그 당시에 캡처까지 해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김태형 감독이 사령탑이 되고 나서, 프런트도 우승을 위해 이를 갈았다. 당시 롯데 자이언츠의 에이스 투수였던 장원준 선수를 FA로 영입하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전력도 보강하고 감독도 교체하다니! 나는 두산 프런트에서 하도 강조했던 그 '승부사' 기질이 있는 감독일지가 매우 궁금했고, 2015 시즌의 두산을 기대했다.


아니나 다를까. 뚜껑을 열어보니 멀뚱멀뚱 아무 생각 없이 야구만 관전하는 오비 아재인 줄 알았더니! 승부걸 때는 승부 걸고, 말도 잘하고, 심리싸움도 잘하는 미친 팍스~~~~~~~~~~~~~맨이 자냐~~~~~~~~~끼양 (난 팍스가 좋아 마치 양의지처럼 낄낄) 물론 그때 두산 전력도 막강하긴 했다. 그 전력과 김태형의 야구가 시너지가 났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걸 직관 갔었다니 진짜 오열하면서 봤던 기억이ㅜㅜㅜㅜㅜㅜㅜ


그리고 그 결과 14년 만에 두산 베어스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이때 엄마와 야구장 직관을 갔는데 엄마와 나는 안고 울었다. 주위 사람들도 다 울고 있었다. 정말 지금 생각하면 뭉클하다. (쓰면서 울컥함)


그 이후로 김태형 감독과 두산 베어스는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역사를 세웠다. 물론 그 7년을 세세하게 돌아보면 다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마치 연애할 때 불타올랐다가 서로에게 소원해지고, 화도 내고 주도권 싸움도 하고 말이다. 김태형 감독은 두산팬들에게 벤츠였다.


그런데 2022년 시즌, 두산은 9등이라는 성적표를 냈다. 김태형 감독과는 지지고 볶고 할 거 다 하고 지칠 때로 지친 오래된 연인에 결말의 느낌이랄까. 더 이상 동기도 의미도 없는 그런 전력도 다 소모한... 이별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내가 김태형 감독 자체를 좋아하는 감독 빠순이는 아니다. 그저 그 시절 야구를 즐겁게 보는데 한 몫해줬던 감독이었는지라 좋은 기억이 많다 (물론 그 당시 납득 안 갔던 것은 시원하게 깠다)


추억은 보정되는 탓일까. 오늘 야구 친구들 단톡방에서 '[단독] 김태형 감독, 롯데 자이언츠 사령탑 간다'라는 기사 문구를 보고 가슴이 덜컥했다. 좋은 추억이 많았던 전 남자 친구가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걸 두 눈으로 본 느낌이랄까.. 하지만 추억은 또 다락방에 넣어두고 심심하면 올라가서 꺼내봐야겠지.


아무튼 롯데는 김태형 같은 감독이 필요할 테니 원만히 잘 계약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김태형 감독 역시 현장에서 다시 있고 싶을 테니, 여러모로 모두에게 이득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부디 제발 두산 선수빨이었네 마네 이런 소리만 안 듣게 잘했으면 좋겠다.


아무튼 김태형 감독님 늦었지만 7년간 고마웠습니다! 1년 뒤에 인사하는 건 뭔데? 이제 진짜 다른 팀 감독이 되었으니 놓아줘야겠군요. 감사했어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연애에서 싫어하는 건 스트레이트 볼넷이랑 루킹삼진이에요